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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4일에 방영된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코너에선 이례적으로 출연자들이 의견을 개진했다. 박영진이 메르스 사태에 대한 보건당국의 부실대처문제와 대한민국 정부의 아쉬운 위기대처 능력에 대해 묻자 유민상이 ‘이번 건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정부의 대처가 빨랐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이것이 놀라운 것은 ‘민상토론’ 코너의 컨셉이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 답답한 진행‘ 에 있었기 때문이다. 박영진이 정치현안에 대해 물어보면 유민상과 김대성이 당황해하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쩔쩔 매는 것이 지금까지의 코너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분명한 의견이 나온 것이다.
박영진이 낙타고기를 주의하라는 정부의 메르스 대책을 제시하자 유민상이 ‘낙타고기를 어디서 먹으란 얘기야’라고 하기도 했다. 또 박영진이 ‘다음 중 컨트롤 타워는?‘이라며 1 중앙 메르스 관리 대책 본부, 2 민관 합동 종합 대응 테스크 포스, 3 범정부 메르스 대책 지원 본부, 4 중앙 안전 관리 위원회 등 보기를 제시하자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왔다. 이것은 컨트롤 타워가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는 상황을 꼬집은 것으로 읽힌다.
또, 박영진이 박근혜 대통령과 박원순 시장의 티셔츠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하자 김대성이 ‘저는 서울 사는 D씨로 하겠습니다’라며 ‘요즘에 뻔히 아는 건데 알파벳 이니셜로 하는 게 유행이야’라고 하기도 했다. 이것은 정부가 삼성서울병원을 밝히지 않고 계속 D병원이라고 한 것에 대한 풍자로 읽힌다.
송준근은 그동안 문제 정치인을 고발하겠다며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사진을 내세우는 역할을 맡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누가 봐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임이 확실한 사진을 제시하며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모범 국민 D씨’라고 소개했다. 문형표 장관의 마스크 쓴 모습과 뻔한 것까지도 끝까지 감추려는 정부의 비밀주의를 동시에 풍자한 것이다.
원래 ‘민상토론’이 풍자하는 대상은 정치인이나 권력자가 아니었다. 권력자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를 꺼리는 우리자신의 모습, 특히 정치발언을 두려워하는 연예인이 풍자대상이었다. 그래서 박영진이 정치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 개그맨들이 말을 못하고 쩔쩔 매는 모습이 웃음포인트였던 것이다.
<개그콘서트>는 원래 풍자 코미디로 독보적인 아성을 쌓았었다. 하지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든가 ‘사마귀 유치원’ 같은 내용들이 정치인들의 견제를 받으면서 어느 사이엔가 풍자가 사라져갔다.
‘민상토론’은 오랜만에 나타난 풍자 코너였는데 이마저도 권력층을 대놓고 풍자하지는 못하고, 권력층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연예인을 풍자하면서 시사적인 내용은 박영진이 유민상의 발언을 확대해석해 말을 갖다 붙인다는 설정으로 슬쩍슬쩍 비추는 정도로 끼워 넣었었다.
그러다 모처럼 이번에 시사풍자적인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럴 정도로 메르스 사태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크다는 뜻이다. 이번에 정부가 보여준 무능에 대한 불신도 극에 달했다. 여당 대표가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공언할 정도이니 분노와 불신에 여야의 구분도 없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개그콘서트>도 모처럼 정부를 콕 찍어 풍자했을 것이다.
이렇게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일이 터지고 여야할 것 없이 국민정서가 들끓을 때에만 매우 이례적으로 권력층 풍자에 나설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거침없이 풍자하는 <개그콘서트>를 보고 싶다. 정치를 거론하는 박영진의 질문에 말 한 마디 못하고 쩔쩔 매는 모습이 아니라, 당당하게 할 말을 하는 통쾌한 풍자개그를 보고 싶은 것이다.
개그맨들이 그렇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으려면 권력층의 관용이 선행돼야 한다. 어떤 풍자를 해도 나중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개그맨들의 입이 열릴 것이다.
부디 이번 ‘민상토론’의 이례적인 권력층 풍자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유민상이 이제는 쩔쩔 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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