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게더’는 지난 3일에 ‘미쿡에서 왔어요’ 특집을 방영했다. 윤상, 이현우, 존박, 에릭남, 스테파니 리 등 미국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출연한 방송이었다. 해외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박명수의 자리엔 데프콘이 일일MC로 등장했다.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를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던 프로그램은 중반부에 출연자들의 외모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모델인 스테파니 리가 우월한 비율을 가졌고 얼굴이 작다며, 그보다 얼굴이 큰 데프콘을 비교했다.
프로그램은 데프콘과 스테파니 리를 나란히 서도록 유도하여 데프콘의 얼굴을 희화화했다. 그리고 그래픽 처리까지 해가며 두 사람의 비율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스테파니 리는 9등신, 데프콘은 5.5등신이라고 프로그램은 주장했다. 출연자들은 데프콘을 비웃었고 프로그램은 데프콘 얼굴 옆에 ‘등신’이라는 단어를 넣어 조롱했다. 데프콘이 큰바위 얼굴이라며 러시모어산 조각과 데프콘을 합성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데프콘을 비웃자 데프콘은 조세호에게 ‘네가 웃을 때가 아니다’라고 했고, 프로그램은 조세호 얼굴에 ‘올망졸망 도긴개긴’이라는 자막을 넣었다. 곧이어 존박의 큰 얼굴도 희화화됐다.
미국 출신 출연자들은 미국에선 얼굴 크기나 키 등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었는데, 한국에서 유독 그런 분위기가 나타나 문화충격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출연자의 외모희화화는 후반부까지 이어졌다. 조세호 밑에 ‘키작고 깝신대는 아이’라는 자막을 넣는가 하면, 스테파니 리와 대비해 ‘다른 신체 조건, 다른 종족, 외계생명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외모의 차이를 직설적으로 묘사하며 웃을 수는 있다. 하지만 방송에서 지나치게 특정 조건의 외모를 희화화하고 조롱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국사회가 이미 외모지상주의, 외모차별이 과도하여 성형왕국이 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이 그런 풍조를 부추기는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얼굴 크기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방송의 고질병이다. 출연자가 등장하면 시디로 얼굴을 가리는 장면을 직접 보여주고 감탄하는 설정이 종종 나온다. 강호동은 주먹으로 출연자 얼굴을 가리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작은 얼굴 강박을 만들고, 얼굴 크기에 따른 차별과 자괴감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양악수술을 비롯한 ‘뼈를 깎는’ 수술을 받는 것은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양악수술은 성형수술도 아니고, 대단히 위험한 것이어서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얼굴 크기를 줄인다는 인식 때문에 사람들은 목숨 걸고 수술대에 눕는다.
이번에 <해피투게더>는 실제보다 작은 얼굴을 더 과장하기도 했다. 데프콘은 머리를 세운 부분까지 얼굴로 쳐서 인위적으로 5.5등신을 만들었고, 스테파니 리는 머리 상단 부위를 깎아내고 하이힐 부분까지 다 계산해서 억지로 9등신을 만들었다. 즉 얼굴 큰 사람을 아주 이상하고 우습게 여겨지도록 과장하면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작은 얼굴 9등신 몸매라는 판타지를 구성한 것이다.
방송이 이렇게 비현실적인 억지 판타지를 내세우면 사람들은 그런 판타지를 이상형으로 내면화하며, 그런 판타지와 자기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즉, 멀쩡한 사람이 스튜디오에 있지도 않았던, 가짜로 만들어진 9등신 몸매의 작은 얼굴을 진짜라고 믿고 동경하며 자기 자신을 비정상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구조에서 대중문화는 시청자의 자존감을 공격하고, 자기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불만족, 불행감을 조장한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형태로 내 몸을 다듬어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작은 얼굴 강박이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다. 얼굴이 크다고 수치심을 느낄, 혹은 얼굴이 크다고 사람을 조롱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억지 방송이 반복되는 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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