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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정형돈은 사도세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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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돈이 불안장애로 방송을 잠정 중단했다. 그는 원래부터 불안장애 약을 복용해왔는데 최근 들어 증세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한다. 때론 녹화현장에서 호흡을 곤란해할 정도로 힙들어했고, 감정기복도 크게 나타났다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찌를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는 고백도 했었다.

 

정형돈은 <무한도전> 초기에 안 웃기는 멤버로 통했다. 그에겐 웃기는 것 빼고는 뭐든지 다 잘 한다는 자막이 으레 달렸는데, 그것은 결국 예능인으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질책이었다. 인터넷에선 재미없다는 댓글이 넘쳐났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댓글이었지만 정형돈에겐 모두 송곳을 찌르는 것처럼 꽂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과거에 운이 좋아서 잘 풀렸는데 밑천이 드러날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네티즌은 흔히 <무한도전> 멤버들이 프로그램 잘 만나서 유재석에 묻어간다는 말들을 한다. 운이 좋아서 잘 풀렸을 뿐이지 독자적인 생존능력은 없다는 말이다. 이런 말들 하나하나가 정형돈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남부러울 것 없을 것 같은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비롯한 불안장애 증상을 자주 호소한다. 남들이 보기엔 이미 안정적인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연예인들은 대부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언제 프로그램 하차가 통보되거나,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대중이 등을 돌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형돈은 무한도전이 다음 주라도 없어질 수 있겠구나. 그리고 무한도전이 없어지면 나도 없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하늘에서 계속 좋은 걸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나는 복을 미리 당겨서 쓴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유통기한을 걱정하기도 했다.

 

이런 불안 속에 연예인들은 매 순간 대중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그래야 잘리지 않으니까. 특히 예능인들에게 그런 경향이 강하다. 프로그램 중에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그들은 도마 위에 오른다. 한 마디라로 재미없는 말을 하면 바로 싸늘한 시선이 날아든다. 매 순간 웃길 것을 기대 받는 것만큼 부담스러운 것이 없다.

 

 

안 그래도 이런 중압감에 짓눌린 사람을 대중은 도끼눈으로 쳐다봤다. 대중의 시선은 냉혹한 평가자의 그것이었다. ‘어디 네가 얼마나 잘 하는지 보자며 차갑게 노려보다가 한 번이라도 기대에 못 미치면 인터넷에 저주를 쏟아냈다.

 

정형돈은 그런 대중이 아버지 같다고 했다. ‘사람들이 무섭다 ... 시청자가 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평소에는 인자하지만 가끔 무섭고 그래서 긴장을 한다자애로운 것 같지만 실수라도 하면 엄하게 야단치는 아버지 같다는 것이다.

 

영화 <사도>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사도세자의 마음이 어떻게 황폐해져가는 지를 그린 작품이었다. 영화 속에서 영조의 싸늘한 시선과 노기 어린 질책이 사도세자의 광증을 발현시켰다.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성군의 자질을 보일 것을 요구했고, 그런 기대 속에서 어린 사도세자는 질식하고 말았다.

 

<무한도전>에서부터 정형돈은 그런 시선을 받아왔다. 최근 들어 정형돈이 <냉장고를 부탁해> 등을 성공시키며 예능 대세로 자리잡아가자 대중의 기대가 더욱 커졌다. 성군을 바라는 영조의 눈빛처럼 되어갔던 것이다. 더욱 커진 기대와 거기에 부응 못할 때 쏟아질 냉혹한 질책이 정형돈을 숨 막히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연예인은 미래불안 때문에 밀려오는 일을 거절하지 못한다. 언제 떨려날지 모르니까 일단 주어진 일은 다 하고 보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최근 대세가 된 정형돈은 밀려드는 섭외에 다 응했고, 그 때문에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 더욱 많아졌으며, 불안을 가라앉힐 휴식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것이 결국 그의 심신을 무너뜨렸을 것이다.

 

연예인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문제다. 그들은 대중 앞에 선 매 순간 시험대에 오른 신세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 중압감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우리는 너무 냉정하고 엄격했던 것이 아닐까? 조금만 실수하거나 웃기지 않으면 인터넷에 쏟아내는 저주의 말들은 결국 연예인을 영조 앞의 사도세자로 만든다. 오죽하면 정형돈이 사람들이 나를 찌를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고 했을까.

 

물론 감상을 표현하는 것은 시청자의 자유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대상이 감정을 가진 살아있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아도 중압감에 짓눌린 존재라는 걸 감안한다면 우리의 표현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사도세자를 평가하는 영조의 시선보다는 따뜻하게 봐준다면, 예능인들도 더욱 웃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