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렇게 흘러갈 뻔했다. 버닝썬 룸 불법촬영 영상이 나타났다고 하자 버닝썬 동영상을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정준영 불법촬영 대화방 메시지가 공개되자 이번엔 정준영 동영상이 인기 검색어가 됐다.
사람들은 ‘피해자가 누구냐?’를 물었고 한 매체에선 피해자를 연상할 수 있는 정보를 보도하기도 했다. 여러 여자 연예인이 피해자로 지목 되면서 인터넷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또 다른 매체에선 과거 ‘OOO 동영상’ 사건을 다시 꺼내들어 당시 뉴스 화면까지 내보내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정준영 불법촬영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고 동영상이 퍼지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흐름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피해자 찾기와 동영상 찾기에 골몰하는 대신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피해자를 찾고, 동영상을 보는 것이 2차 가해가 된다는 것이다.
한 누리꾼이 만든 포스터도 널리 퍼져나갔다.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추측하는 모든 사진, 동영상 유포 = 2차 가해. 지금 당신이 멈춰야 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피해자를 추측할 수 있는 정보를 보도한 매체는 결국 해당 기사를 내렸다.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졌다는 이야기도 아직 없다. 새로운 흐름이다.
2016년에 이런 분위기였다면 어땠을까? 정준영 불법촬영 사건 2016년 조사 당시, 경찰과 검찰이 모두 매우 이상하게 대응했는데 그들에게 그런 빌미를 준 것 중의 하나가 피해자의 탄원서였다. 당시 피해 여성이 자신의 신원이 드러날까봐 매우 두려워했고 그래서 정준영을 두둔하는 탄원서를 냈다는 것이다. 이 탄원서가 정준영의 사건이 덮인 이유 중의 하나가 됐다.
만약 지금처럼 피해자를 보호하는 흐름이 당시에도 있었다면, 그래서 피해 여성이 안심하고 정준영의 엄벌을 요구할 수 있었다면, 그러면 정준영의 악행이 2016년에 드러났을지도 모른다.
정준영의 다른 피해 여성도 자신이 불법촬영 당했다는 것을 인지한 후 경찰신고가 아닌 정준영에게 사정하는 길을 택했다. 유포하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이들의 입을 막았고 결국 정준영이 오늘날까지 세상을 활보하게 된 것이다.
정준영은 이른바 황금폰 이후에 썼던 휴대폰을 완전 삭제해 제출했다고 한다. 완전 삭제한 것을 보면 과거 황금폰 쓰던 시절 이후에도 범죄행각을 이어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만약 진작 피해자들이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었다면 또 다른 범죄와 피해자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불법촬영 피해자를 호기심의 대상 정도로 대했던 우리 사회가 이번 사건에서 비로소 바뀌고 있다. 그래서 ‘정준영 사건’이 됐다. 그동안 연예인이 불법촬영당한 사건은 대부분 피해자의 이름으로 명명됐다. ‘000 동영상’ 사건으로 말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이름으로 사건 이름이 붙여졌다. 역사적인 전환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사건을 호기심 차원에서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정준영 피해 여성중의 일부는 취재기자에게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해달라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정준영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성범죄 피해자가 2차 피해 공포에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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