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연예인지망생공화국 잔혹사



 100만 연예인지망생 시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불황이라는 가수 지망생만 10만에 달하고, 연습생은 5만에 달할 거라는 말도 있다. 시류에 맞춰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연극, 영화, 방송연예 관련 학과만 백수십여 개라고 한다. 얼마 전 <개그콘서트>에선 요즘 청소년들 열에 아홉이 연예인을 꿈꾼다고 꼬집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연예인지망생 공화국이다.


 심지어는 부모들까지 자식 연예인 만들기에 나선다. 억대의 돈을 뿌리는 부모가 한둘이 아닐 거라고들 한다. 회원이 10만에 달하는 연예인지망생 카페도 생겼다. 2007년도에 리서치업체 엠브레인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연예인은 교사, 공무원, 회사원에 이어 장래 희망 직업 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연예인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수만 명 중에 한두 명? 우리 아이들이 밤하늘의 별을 따겠다는 허망한 꿈을 좇고 있다.


 대형 연예기획사 오디션에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몰린다. 길거리 스카우터들이 활동한다는 지역을 작심하고 배회하는 청소년들도 상당히 많다고 한다. 온갖 연예기획사들이 난립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냉혹하기 그지없는 극단적인 복불복, 승자독식 체제다.


 대표적인 승자독식 구조는 도박장이다. 도박장은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나비처럼 몰려드는 곳이다. 도박은 절대 다수에겐 단 한 푼도 돌아가지 않는 대신에 승자에게 모든 과실을 몰아주는 구조다. 경마장 주위에 가면 죽음의 회색빛이 느껴진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재미로 하는 복불복 게임과 인생을 걸고 달려드는 복불복 게임은 전혀 다른 것이다. 후자는 처참하다. 이런 복불복 게임이 만연한 사회는 병든 사회다. 그런 형식의 게임인 도박은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너무나 파괴적이어서 나라가 금하거나 규제한다.


 하지만 규제망 밖에서 아이들이 인생을 건 복불복 게임에 달려들고 있다. 그것이 연예인되기 경쟁이다. 청소년 시기는 긴긴 인생을 살 준비를 해야 할 때다. 그런 시기에 헛된 꿈에 젖어 어설픈 춤, 노래, 연기 연습에 몰두하다가 인생낙오자가 될 수 있다.


 연예인이 돼도 그렇다. 연예판 자체가 또 하나의 복불복 세계다. 인기를 독식하는 스타는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연예인들의 삶은 화려한 인생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 중에도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있다.


 연예인의 70% 이상이 기초 생계비에 못 미치는 소득을 올린다는 말이 있다. 연기자 노조가 방송사와 대립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돈 잘 버는 연기자들을 탓했었다. 그러나 연기자들은 삭발까지 하면서 자신들의 열악한 처지를 호소했다. 일부 스타를 제외하곤 평균 소득이 일반 노동자 소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복불복 승자독식이 또 없다.


 일정에 쫓겨 스케줄을 소화하다 사고사를 당한 개그맨들의 삶이 소개됐을 때, 유명 개그맨조차 생활이 결코 화려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수들은 또 어떤가? 당대 최고의 가수조차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웃음을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가수가 앨범을 낼 돈을 구하지 못해 쩔쩔 맨다는 말들이 오간다.


 이런데도 우리 아이들이 스타가 되겠다는 허망한 꿈에 인생을 던지고 있다. 한 연예인 지망생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집안 재산을 탕진한 사건이 알려지기도 했다. 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몸에 칼을 대다 후유증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사기에 걸려 인생을 낭비하거나, 심지어는 성폭행을 당하기까지 한다. 그런 위험들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 아이들은 달려들고, 사회는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그저 대중문화산업의 부흥을 통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란 장밋빛전망들만 소개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건 대박이다. 배용준, 비 등 움직이는 벤쳐기업이라는 대박사례들이 허망한 꿈을 좇는 부나비들을 양산한다. 도박장이 사람을 빨아들이는 원리와 같다. 윤태영, 류시원, 이서진 등 귀공자들이 연예인을 하면서 연예인의 사회적 지위도 대폭 상승했다. 적어도 이젠 연예인이라고 천대 받는 시대는 아니다. 이런 변화는 부모들의 열망을 부추겼다. 서울대 나온 김태희 같은 스타들이 연예인의 지위를 또 높였다.


 거기다 10대 아이돌들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아이들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됐다. ‘옛날엔 사법고시 패스하면 집안의 경사였지만 지금은 자식 연예인 만들면 집안이 일어선다’는 식의 망상을 품는 부모들도 늘어났다. ‘스타고시’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탐욕에서 돈 냄새를 맡고 난립한 연예기획사만 2,00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아예 돈을 받고 연예능력을 가르치며 키워주겠다는 학원형 기획사까지 등장했다. 수요는 장사꾼들을 불러들이고 장사꾼들은 다시 수요를 만든다.


 매체는 연예계의 화려한 모습만을 반복적으로 비추며 아이들의 망상을 확대재생산한다. 매체가 망상을 키우고, 아이들은 달려들고, 부모들은 방조하고, 연예기획사가 그 연예골드러시를 부추기면서 점점 판이 커지고 있다. 인생을 건 도박판이다. 패자에겐 ‘국물’도 없기에 이보다 살벌한 도박판은 없다. 도박판이 성행한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도 없다.


 한 방송사는 요즘 어린이들의 희망직업 1위가 연예인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사회병리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문화가 문화가 아닌 도박판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도입부에 소개한 장래 희망직업 여론조사에서 1, 2위는 교사와 공무원이었다. 교사, 공무원이 상징하는 것은 ‘안전’이다. 연예인이 상징하는 것은 ‘신데렐라 스타덤 일확천금’이다. 국민이 안전과 일확천금 두 가지에만 쏠리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진정 문화적인 사회는 모자이크같은 모습이다. 100명이 있으면 100개의 소질이, 1,000명이 있으면 1,000개의 인생이, 10,000명이 있으면 10,000개의 꿈이 어우러지는 거대한 모자이크. 이런 사회가 건강하고, 이런 건강함 속에서 문화는 싹튼다. 안전으로 웅크리는 사람들과 도박장으로 몰리는 부나비들의 사회 속에서 문화는 자랄 수 없다.


 한국사회는 안전과 미래와 다양한 꿈을 말살한다.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다양한 꿈을 살리면서 여유 있는 인생을 살 길은 이 나라에서 사실상 봉쇄됐다. 입시경쟁은 꿈을 말살하고 사회양극화는 삶의 질을 말살했다. 미래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의 흑인들은 연예스타와 스포츠스타를 꿈꾸고, 중남미에선 축구스타나 미스월드를 꿈꾼다. 연예인 열풍은 한국의 중남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징후다.


 답이 없는 상황이다. 문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혁돼야만 바뀔 수 있다. 여기까지 가면 정치적인 문제다. 정치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일단 대중의 망상을 부추기는 매체의 태도부터 고쳐져야 한다. 사이비 연예기획사의 난립은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허망한 꿈을 좇게 만드는 어른들의 태도가 변해야 한다. 학교, 부모부터 바뀌지 않으면 연예인지망생공화국 잔혹사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