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가짜 들통난 올림픽개막식 실이 더 많다

 

중국이 국력을 기울여 제작한 올림픽개막식이 오히려 중국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고 있다. 중화제국주의의 대두가 염려되는 이때 중국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기상만을 반복적으로 과시하는 컨셉부터가 문제였다. 이번 개막식은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우린 잘났어. 우린 대단해. 우린 잘났어. 우린 대단해. 우린 잘났어. 우린 대단해.’


중국이 대단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다.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중국에게 필요한 건 겸손과 포용, 공존의 이미지다. 십수억의 국민이 콧대를 치켜세우고 다른 나라 사람에게 큰 소리 치는 모습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중화패권주의는 이미 수천년간 전 세계인을 능멸해왔다.(중화주의에 의하면 중국 이외의 나라는 기본적으로 오랑캐임. 오로지 중국만이 천명을 받았음.)


중국이 곧 세계최강대국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전망을 많은 관측가들이 제시하고 있다. 그런 나라가 포용의 미덕을 보여주지 못하고 과시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면 당연히 타자의 반발심을 부른다.


올림픽개막식에서 자기자랑을 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하는 일이긴 하다. 작은 나라가 하는 자기자랑은 전 지구적 문화다양성 차원에서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패권국가의 자기자랑은 절제될 필요가 있다.


물론 중국이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중국은 아직 국위를 재건하지 못했다. 중화주의 속의 국격과 현실 속의 국격 사이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최근에 비로소 경제발전의 과실이 나타나면서 중국인들의 상처받은 자존심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은 그런 국위의 회복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는 동시에 스스로도 확인하고 자축하는 자리다.


하지만 성화봉송호위 폭력사태에서도 나타났듯이 중국인들의 올림픽집착은 지나치게 우악스럽다. 한마디로 과하다. 그 집착이 한편으론 ‘올림픽방해무리’들에 대한 집단적 적개심으로, 또 한편으론 ‘완벽하고 위대한 올림픽 행사 꾸미기‘로 발현되고 있다.


SBS의 올림픽개막식 사전 보도 파문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SBS가 잘못한 건 맞다. 하지만 그것이 국가적 공격의 대상이 될 일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감히 우리의 올림픽개막식에 흠집을 남겨?’라는 분노의 표출이었다. 그것은 성화봉송에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는 사람들에게 타국에서조차 폭력을 행사했던 그 감정과 같은 맥락이다.


- 집착은 짝퉁으로 -


얼마 전에 베이징올림픽개막식 폭죽쇼의 일부가 컴퓨터그래픽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스포츠정신을 위배한 것과 같다. 운동경기는 순도 100%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진행된다. 조작이 밝혀지면 맹렬한 비난을 받을 것이다. 화려한 개막식이 경탄을 자아내는 것은 그것이 100% 사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컴퓨터조작이었다면? 작은 조작이라도 경기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듯이 행사 전체의 감동을 훼손할 것이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중국 사람들이 너무 마음만 앞서는구나, 아편전쟁 이후 워낙 억눌려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런 생각이었다고나 할까.


사단이 또 벌어졌다. 올림픽개막식에서 중국국기가 입장할 때 ‘가창조국’을 불러 중국인의 영웅으로 떠오른 9살 소녀 린먀오커양이 사실은 입만 벙긋거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부 언론은 이를 립싱크라고 전했는데, 진실은 립싱크보다 조금 더 잔혹하다.


립싱크라고 하면 자기가 스튜디오에서 직접 녹음한 노래를 틀어놓고 무대 위에서 부르는 시늉만 하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번 개막식에선 그런 게 아니라 아예 부르는 사람이 달랐다고 한다. 노래의 주인공은 7살 소녀 양페이이양이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양페이이양이 못 생겼기 때문이란다. 중국의 위대함을 과시해야 할 완벽한 개막식에 누를 끼치는 외모였던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는 중국의 위대함과 부합했다. 천상의 목소리라는 말도 있다. 대신에 린먀오커양은 얼굴은 위대함과 부합했는데 목소리가 누를 끼쳤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조합이다. 예쁜 목소리와 예쁜 얼굴의 짝퉁 조합. 현실에선 존재하는 않는 조작이다.


한국 영화 <미녀는 괴로워>와 같은 상황인데, 상업자본이 이런 일을 저질러도 비난 받는다. 하물며 국가가, 전 세계인이 보는 올림픽개막식에서? 상상초월이다.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을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그 바람을 조작으로 풀면 안 된다는 건 상식이다.


또, 7살 어린아이를 얼굴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장막 뒤에서 노래 부르게 하는 것이 중국의 위대함에 어울릴까? 번듯한 사람들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호사를 누리고 열등한 사람들은 그림자 속에 가려진 번영. 이것은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번영의 구조다. 포용의 정신이 있다면 완벽한 외모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당당히 노래 부를 수 있는 개방적인 쇼를 구성했을 것이다.


자아도취로 가득 찬 위대함, 조작된 완벽함은 감동을 자아낼 수 없다. 운동경기는 부족함이든 실수든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안타깝고 감동적인 것이다. 개막식이 그런 것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것은 중국의 진정한 위대함과 배치된다. 억지로 완벽해질 때 주위사람들은 그 우악스러움에 공포를 느낄 순 있지만, 마음속에서 존경을 보내진 않을 것이다. 전략적이지 않은 행동이다.


동아시아 3국 연합이 절실한 이때 한국, 중국, 일본 모두 폐쇄적이고 좁은 민족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3국은 날로 더 멀어져간다. 이번 올림픽에서 중국인들의 한국 견제는 노골적이라고 한다. 바다 건너 서양강대국에게만 좋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올림픽개막식이 좀 더 진실되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