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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간호사 성적희화화라도 금지할 수 없다



한국사회는 가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이번에도 놀랐다. 얼마 전 썼던 ‘간호사는 성적 대상으로 희화화하면 안 되나’라는 글에 많은 분들이 반대 의견을 주셨다. 내 글의 내용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반론에 쏟아진 것에 충격 받았다.


내가 썼던 글의 핵심은 그 글 하단부에 있던 이 문장에 요약되어 있다.


‘간호사 이미지의 성적 소비를 비난할 순 있지만 금지할 순 없다.‘


이 사건은 이익단체의 압력에 의한 영상물 삭제 사건이다. 또, 네티즌 대중의 압력도 있었다.


내 글에 반대한 분들의 주장은 대체로 간호사를 성적 대상화하거나 희화화하면 안 된다는 윤리적 당위의 내용이었다. 기본적으로는 나도 동의한다. 그것은 저 위에 인용한 문장 전반부에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지할 수 있는가? 이미 표현된 것을 삭제해야 할 만큼?


이 사건에선 두 개의 가치가 충돌한다.


(1) 간호사를 성적 대상으로 희화화해선 안 된다.

(2) 어떤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1)을 무시하고 (2)번만 주장하면 마초가 되고,

(2)번을 무시하고 (1)번만 주장하면 파쇼가 된다.


마초는 혐오스럽고 파쇼는 숨막히도록 끔찍하다.


도덕률에 입각한 표현금지는 우리에게 생소한 규제가 아니다. 조선 성리학자들은 성적 표현을 철저히 규제했다. 60~70년대 독재도 도덕적으로 문란한 표현을 용납하지 않았었다. 당시 영상물엔 건전한 사람들만 건강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런 사회를 일컬어 ‘파쇼’라 한다.


그렇다면 민주공화국에선 표현의 자유라 해서 모든 것을 옹호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자본주의 체제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고, 특히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것에 대해선 비판해야 한다.


문제는 비판할 자유와 표현할 자유가 공존할 수 있느냐다. 과거에 나는 한 드라마가 여자의 속살을 보여줬을 때, 그것이 상식적인 선을 넘지 않은 표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난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역할과 관련된 이익단체의 압력에 의해 그 장면이 삭제됐다면 난 그것에 반대했을 것이다.


마음껏 비판할 수 있지만 가위손을 드는 순간 문제가 달라진다. 사회가 문화적으로 성숙되면서 자연스럽게 창작자들의 의식이 고양돼 창작물의 수준이 높아진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창작자들이 외부의 ‘힘’이 두려워 창작에 소극적이 된다면, 심지어 ‘삭제’까지 횡행한다면 그것은 문화적 퇴보다.


‘힘’의 주체가 국가권력이든, 민간단체든, 대중여론이든 상관없다. 창작은 ‘힘’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이것은 무조건이다. 다른 이가 보기에 그것이 예술적으로 ‘쓰레기’ 수준이라 해도 그렇다. 보호받을 수 없는 선은 법이 정한다. 법 이외의 힘이 표현을 제한하는 건 원칙적으로 안 된다. 특히 이익집단은 더욱 안 된다. 그것이 공화국이다.


누군가는 표현하고 누군가는 비판하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한쪽의 힘이 너무 강해져 반대쪽을 압살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우리나라는 특히, 창작의 자유가 희박한 나라다. 얼마 전에 이하늘도 방송에 나와 가사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한정돼 있다는 푸념을 한 적이 있다.


과거엔 국가권력과 관계된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지만, 요즘엔 힘 있는 민간 집단을 우습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온에어에서의 카메라감독, 이산에서의 노론문중, 언론, 재벌, 이번엔 이효리 뮤직비디오에서의 간호협회까지. 표현의 영역을 넓혀가지는 못할망정 점점 줄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어느 직종도 희화화해선 안 되지만, 동시에 어느 직종이라도 희화화 될 수 있어야 한다. 전자의 가치를 주장하는 사람과 후자의 행위를 하는 사람은 공존해야 한다.


나에게도 가치관이 있다. 내 가치관에 비추어보면 자본주의 세상엔 불온한 표현물들 천지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을 비판할 뿐 금지할 것을 주장하진 않는다. 같은 논리로 간호사를 희화화해선 안 된다는 윤리적 당위가 옳다 해도, 그것이 영상물 삭제, 표현의 금지를 정당화할 순 없다.


원칙적으로 윤리적 당위에 대한 확신이 아무리 분명하다 해도, 표현물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좀 더 관대할 필요가 있다. 그런 관대함이 없었던 사회가 조선시대나 서양의 중세다.


CF나 뮤직비디오는 감각적 상업물로 그 안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표현들 천지다. 사회의 차별구조가 적나라하게 반영되며, 대중의 욕망이 노골적으로 투영된다. 예컨대 부엌에 앉아 ‘여자라서 행복해요’ 뭐 이런 것들. 이런 내용을 분석하고 고발하는 것은 시민사회 공론장의 의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가위손까지 들려 해선 안 된다.


이효리 뮤직비디오 사건에선 이익단체와 ‘삭제’가 등장했다. 그러므로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비판’과 ‘금지’를 혼동해선 안 된다. 윤리적 정당성, 표현의 부당함이 아무리 분명해도 힘에 의한 삭제를 정당화할 순 없다는 원칙, 이것은 지켜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