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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트롯신, 베트남에서 남진 내세우는 무신경

 

트롯신이 떴다는 해외에 케이-트롯을 알리겠다며 시작됐다. 국내 트로트 가수들이 해외에 나가 즉석 공연을 펼치는 내용인데, 첫 번째 방문국이 베트남이었다. 설운도, 주현미, 장윤정, 진성, 김연자 등이 먼저 시작해 남진이 합류했다. 

여기서 남진을 내세우는 방식이 문제였다. 남진은 월남전에 참전했었다. 이 프로그램은 남진이 월남전 참전용사라는 것을 강조해 남진과 베트남 사이에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공연할 때도 남진이 50여년 만에 베트남에 다시 왔다는 것을 자막으로 전했다. 제작진은 과거 베트남에 왔었던 남진이 반세기만에 돌아와 옛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드라마틱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놀라운 무신경이다. 남진에 반세기 전에 베트남에 관광을 간 것이 아니다. 군대의 일원으로 간 것이었다. 그때 한국군이 가서 싸웠던 북베트남이 지금의 베트남이다. 베트남 입장에선 외국 군대가 자국에 침범해온 사건인데, 그 군대의 일원이었다며 현지에서 강조한 것이다. 

우리 입장에선 다른 나라를 침략한 것이 아니라 우방을 지켜주러 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쟁에서 우리가 지켰던 우방, 즉 남베트남이 지고 말았다. 만약 남베트남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면 거기에서 남진에 50여 년 전 참전 사실을 알리는 건 미담이다. 현지에서 크게 환영받을 것이다. 해외의 6.25 참전 용사들을 우리가 환대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북한도 우리를 도운 참전용사들을 환영할까? 어떤 중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내가 과거에 중공군으로 서울을 점령했었다고 하면 우리는 환영할까?

 

남한의 동맹군이 북한에 가서 북과 싸운 전력을 내세우는 일은 없다. 그런데 트롯신이 떴다는 남베트남의 동맹군이었던 남진을 북베트남에 데리고 가서 클라스가 남다른 이력 - 월남전 참전 용사라며 전쟁의 기억을 여러 차례 소환한 것이다. 

놀라운 건 트롯신이 떴다가 일종의 홍보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케이-트롯을 해외에 알리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세상에 어떤 홍보가 홍보 대상하고 싸웠던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며 과거의 기억을 굳이 소환한단 말인가? 그래서 놀라운 무신경이다. 

한국 문화는 요즘 날로 국제화하고 있다. 한국 예능프로그램들도 즉시 자막처리가 돼서 해외로 퍼져나간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많이 보는데, 프로그램이 촬영된 현지에선 더욱 많이 찾아본다. 프로그램이 계속 남진의 50여 년 전 베트남 방문을 강조했으니 베트남 시청자들이 50여 년 전 기록을 찾아봤을 것이다. 무시당하거나 우롱당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해외 시장 확장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국제적 공감 능력부터 길러야 한다. 우리 편할 대로만 표현할 것이 아니라 각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까하는 부분을 헤아리면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역사적 소양이 있어야 한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최근에 르완다 편을 내보낸 직후에 벨기에 편을 편성해 비판 받았다. 벨기에는 르완다를 식민 지배했던 나라인데, 많고 많은 나라 중에 왜 하필 두 나라를 붙여서 편성했느냐는 것이다. 이 역시 역사적 소양 미비가 초래한 사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이제 세계적 문화 수출국이다. 강력한 소프트파워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으면 이젠 제작진의 국제적 공감 능력은 필수다. 이 부분을 놓치면 곳곳에서 반한류 역풍이 나타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