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당선자라고 했었다.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당선인이라고 한다. 2008년부터 생긴 변화다. 17대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당선자 측 인수위원회가 당선자가 아닌 당선인으로 불러달라고 언론에 주문했다.
당연히 논란이 일었다. 이에 헌법재판소가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특검법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선고하면서, 당선인이 아닌 당선자가 맞다고 확인한 것이다.
헌법 제67조는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에 의해 선출하며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68조 2항에도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할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되어있다. 이런 헌법 조항에 근거해 당선자라고 부르는 게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인수위는 법률 조항을 들어 반박했다. 공직선거법 제187조는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효투표의 다수를 얻은 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하고, 이를 국회의장에게 통지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했다.
국회법 제46조의3엔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실시를 요청하는 경우에 의장은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여 그 인사청문을 실시하기 위한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둔다’라고 되어있다.
또, 대통령직인수에관한법률 제2조엔 ‘대통령 당선인이라 함은 헌법 제67조 및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187조의 규정에 의하여 당선인으로 결정된 자’라고 되어있다.
이런 조항에 근거해 당선인이 맞다는 것이다. 헌법과 일반 법률이 서로 다른 표현을 쓰는 것인데, 이 둘 중에선 당연히 헌법이 우선이다. 하지만 이명박 인수위는 당선인을 밀어붙였고, 선관위 유권해석을 통해 결국 당선인 호칭을 관철시켰다.
일단 당선인으로 호칭이 바뀌자, 이것이 대선을 넘어 선거 일반 영역으로까지 확장됐다. 그래서 총선 당선자들도 당선인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사실 당선자든 당선인이든 호칭이야 편한대로 부르면 그만이다. 이 별것 아닌 이슈가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나서서 인위적으로 그 호칭을 바꿨기 때문이다.
‘감히 대통령이 되실 분에게 놈 자(者)자를 쓰다니 불경하다’는 인식이 깔려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말은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면서 사실은 국민에게 대통령을 섬기라고 주문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이때부터 권위주의적 기조가 강화됐고 박근혜 대통령 때는 심지어 방송 뉴스 앵커가 대통령 동정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에게 존댓말을 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권위주의의 흐름은 촛불집회로 파산 선고를 받았다. 그러니 이젠 당선자라는 호칭을 되찾아야 한다. 당선인이라는 단어 자체엔 문제가 없지만, 국민보다 정치인을 더 높이려 했던 역사적 배경이 그 단어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후보와의 연속성이 깨지는 문제도 있다. 후보일 땐 후보자인데 당선되면 당선인으로 튀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요구한다고 고분고분 단어를 바꿔준 언론들, 특히 나중엔 존댓말까지 써댔던 방송사들이 반성하는 의미에서라도 호칭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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