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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서태지 MP3기계까지 팔아야 하나


 

삼성전자에서 서태지 MP3 플레이어를 판매한다고 한다. 일만대 한정 제작이다. 모두 일련번호가 메겨지는데 1번은 서태지가 직접 갖게 된다고 한다. 11월 29일에 100번까지 판매하는 행사를 했는데 10대 1의 경쟁률이었다고 한다. 판매가격은 32만 2000원이었다.

서태지의 10만원짜리 기념앨범은 1분 만에 매진됐다. 서태지도 나오지 않는 기념공연은 10분만에 매진됐다. MP3 플레이어 판매행사는 10대 1 경쟁률. 가히 열풍이다.


기념앨범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기념공연은 좀 애매했다. MP3 플레이어까지 나오니까 이건 아니다 싶어진다. 아니 할 말로 ‘돈독이 올랐나?’ 서태지의 비상이 화려할수록 연간 600~700억 원대로 추락한 우리 음반시장이 초라해진다.


기획사에서 만든 아이돌 그룹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는 것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다만 그들이 시상식에서 음악상까지 받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을 뿐이다. 서태지가 음악적 존경을 받는 것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현금화하는 것은 좀 아쉽게 느껴진다.


물론 서태지는 공인이 아니다. 상업적 이익을 목표로 하는 대중예술인일 뿐이다. 자신이 가진 자산을 이용해 어떻게 이익을 추구하던 서태지 마음이다. 하지만 서태지에겐 그 이상을 기대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문화대통령’ 칭호를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태지는 방송사에 대한 아티스트 권력을 확립한 사람이다. 하지만 서태지가 뒤흔들어놓은 권력관계는 기획사들이 기민하게 접수했다. 그들은 서태지의 방식으로 상품을 포장해 시장에 내놓았다. HOT가 서태지의 음반판매고를 이어받았고 그 끝은  락커 문희준이었다. 문희준이 군대에 간 후엔 더 이상 음악성을 포장할 필요조차 없어졌다. 버라이어티 예능의 시대가 도래했으니까.


혁명과 열정은 신화가 됐고 그 자리를 메운 건 추억과 상품이다. 그리고 물신숭배. 서태지는 음악으로 향유되지 않는다. 그는 전설적인 스타로 숭배되며 이미지로 소비될 뿐이다.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꿈인 ‘원 소스 멀티 유스(OSMU)‘가 서태지라는 상품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원 소스는 서태지다. 그것이 멀티 유스로 변주되면 그때마다 팬집단이 지갑을 연다. 이때 지갑을 여는 집단은 정해져 있고, 매스컴의 호들갑에 의해 서태지를 숭배하게 된 신참자들이 가끔 끼어든다.


만약 서태지 신드롬과 음악 사이에 연관이 있다면, 지금 벌어지는 서태지 열광의 10분의 1이라도 락음악에 투여됐었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락씬은 궤멸지경이다. 이것이 서태지 음반이 팔리고 공연표가 매진되는 것과 음악 사이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서태지 소비와 슈퍼주니어 소비의 구조는 같다. 추억이라는 점에서 보면 남진, 나훈아, 미사리 카페촌과 서태지 소비 구도는 같다. 이미지와 추억이 현금과 교환되는 것이다.


이래서는 문화대통령 칭호가 부끄럽다. 난 서태지를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에 대해 일반적인 가수들에게는 갖지 않는 기대를 갖게 된다. 그것은 그가 획득한 상징권력을 조금만 더 공공적으로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태지가 한국 음악계에 개입해줬으면 좋겠다. 서태지는 그전에도 한국 인디 음악계을 키우겠다는 포부를 펼친 바 있다. 실제로 그 덕분에 넬, 피아 등이 성공할 수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크래쉬도 서태지 덕분에 떴다. 그 어느 가수도 하지 못했던 업적이다. 하지만 이번 컴백 신드롬엔 오로지 스타성과 상품논리만 보인다.


기념앨범 작업과 기념공연에 인디밴드들을 조직적으로 참여시켰더라면 좀 더 문화대통령다웠을 것이다. 서태지 싸인이 들어간 MP3 플레이어도 좋지만, 서태지 싸인과 사진과 목소리가 들어간 락밴드 음반 10종을 박스세트로 내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MP3 플레이어에 락음반 박스세트까지 합쳐 총 32만 원에 팔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때 가격에서 MP3 플레이어 몫을 좀 줄이고)


당연히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 서태지는 그가 한국에서 음악활동을 한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 대중음악사에 충분히 공헌한 사람이다. 밴드들도 지원한 바 있다.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든 그의 자유다. 그래도 난 그가 데뷔했을 때부터의 강력한 팬으로서 그에서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 게다가 언론은 여전히 그를 문화대통령으로 부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