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트렌드 ‘보다 강하게! 보다 강하게!’


1. 예능


 ‘강한’ 예능의 시대다. 예능이 지금처럼 주목받은 적은 없었다. 과거엔 연말 가요대상이나 연기대상이 관심의 중심이었다. 연예대상은 일종의 이벤트같은 성격이었다. 지금은 연예대상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2008년에 MBC연기대상의 의외성만 아니었다면, 강호동과 유재석의 연예대상 쟁투가 독보적인 이슈의 초점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린 지금 ‘예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예능의 중심엔 이젠 누구나 아는 단어가 된 ‘리얼 버라이어티’가 있다.


2. 드라마


 물론 드라마 왕국의 해는 아직 지지 않았다. 예능에 맞서는 드라마의 무기는 ‘통속극’이다. 막장 드라마는 이젠 ‘명품’ 소리까지 들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줌마를 위한 정통 막장극과, ‘에덴의 동쪽’이라는 한류 통속극이 인기를 끄는 와중에 2009년은 ‘꽃보다 남자’라는 하이틴 막장극으로 문을 열었다. 한국인은 지금 리얼 예능과 통속 막장극에 열광하고 있다.

3. 영화


 영화는 지리멸렬하다. 복고바람에 편승했던 영화들의 성적표는 암울했다. 명절 연휴에 한국 영화를 보기 힘든 초유의 시기를 맞고 있다. 2008년 1월부터 11월까지의 누적 관객수는 2007년에 비해 약 660만 명, 2006년에 비해선 약 1,500만 명이 감소했다. 흥행영화의 기준이 100만 관객으로 줄었다. 수백만 관객몰이가 우습던 호시절은 꿈같은 과거가 됐다. 그나마 화제가 되는 작품은 <쌍화점>같은 ‘살색’ 영화다.

4. 가요


 대중음악은 예능과 제휴하며 근근이 명맥을 잇는다. 예능에서 부각된 가수와 노래들이 히트하는 구조가 성립됐다. ‘싱어테이너’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가수라는 직업의 정체성 자체가 허물어지는 세태다. 한편으론 기획사의 아이돌이 맹렬히 약진하고 있다. 아이돌들의 무기는 쉽고 강한 음악, ‘후크송’이다. 귀에 쏙 감기는 후렴구나 제목이 반복되는 후크송은 음반시장이 몰락한 시대에 디지털음원용으로 적합했다. 위축됐던 발라드는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강렬한 표현으로 살아나고 있다.

5. 케이블, 공연


 강하고, 자극적인 그 무엇을 원하는 세태를 틈새매체인 케이블TV는 놓치지 않았다. 공중파의 ‘리얼’을 더 자극적으로 포장해 남자 가수와 여고생들이 동거하는 설정의 케이블판 리얼 버라이어티를 내놓는 식이다. 공연분야에선 정통 연극보다 더 강한 자극을 주는 뮤지컬이 인기를 끈다. TV스타가 공중파 예능을 통해 홍보한 연극은 떴지만 공연의 대세는 뮤지컬이다.


-보다 강하게! 보다 강하게! -


 이상을 종합하면 2009년에 한국인은 ‘아무 생각 없이 세상시름을 잊을 수 있는 자극’을 원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인은 지금 ‘보다 강하게! 보다 강하게!’를 외치고 있다. 가장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포맷이 바로 예능이다. 그리고 통속극이다. 그에 비하면 영화는 뭔가 무겁다. 노래는 아이돌의 가벼운 운율이 적당하다. 공중파의 자극이 시원치 않으면 케이블TV를 보면 된다. 돈을 좀 써서 화려한 판타지의 세계로 도피하고 싶을 땐 뮤지컬이 기다린다.


 불황은 이런 경향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제작사 입장에선 당장 돈이 될 확실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대중은 자극을 원한다. 명품이라고 칭송 받았던 <그들이 사는 세상>은 침몰했는데 그 뒤를 이은 하이틴 막장극 <꽃보다 남자>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모두들 이런 것을 만들려 할 것이다. 보다 강한 자극은 결국 보다 노골적인 상업성으로 이어진다. 한국 대중문화는 점점 더 화려해지고, 강렬해지면 동시에 부박해지고 있다. 누가 더 강렬하게 말초신경을 자극하나 하는 경쟁, 이것이 요즘 트렌드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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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언가 생각을 요구하는 드라마를 보면 현실과 다르지 않은 답답함과 어지러움에 보기 귀찮다-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며칠전 동생과 영화를 보고 나서도 지금의 나도 복잡해 죽겠는데, 생각 많이 하게 하는 영화를 왜 봤지? 라는 생각도 했고요. 저도 현재 막장 드라마라 불리우는 드라마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 역시 보면서 현실도피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론은 현실도피인 것 같습니다. 비교적 멀쩡히 살고 있지만, 가끔 이 세상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드라마든, 말도 안되는 리얼버라이어티든, 도망치고 싶으니까요. 새삼 슬퍼지면서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