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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강수정 잡은 박미선? 아줌마, 아나운서를 물리치다

 그들이 돌아왔다. 무대 중앙에서 사라졌던 ‘아줌마‘들이 예능의 한 복판을 접수하고 있다. 이름하여 ’줌마테이너‘다. 그들만 돌아온 게 아니다. 많이들 돌아오고 있다. 윤종신 등 ’예능늦둥이’가 물꼬를 트고, 성대현 등 과거의 아이돌이 ‘아저씨돌’이 되어 나타날 때 여성편에선 줌마테이너가 떴다.


 이중에서 줌마테이너의 부흥이 가장 극적이다. 남성보단 여성에게 ‘나이’라는 덫이 더욱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남자야 사실 웬만큼 나이를 먹어도 주류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다. 여성 진행자를 계속 젊은 여자 아나운서로 바꾸며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는 남성 앵커나 남성 MC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한국사회에서 ‘나이’는 특히 여성에겐 호환마마 이상의 두려움이다. 그 불구덩이를 헤치고 ‘그들’이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젊고 예쁜 ‘아나테이너’들을 물리치고서 말이다. 이건 쾌거다. 아나테이너들은 단지 그들이 ‘젊고’, ‘예쁘고’, ‘지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방송과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환대를 받았었다. 그러나 일순간에 몰락했다. 유명 아나테이너 네 명이 출연한 <지피지기>는 조기종영 되는 비운을 맞았다. 아나테이너들이 앉아 있던 스튜디오는 적막했다. 그들은 그렇게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줌마테이너’가 앉은 자리는 소란스럽다. 그들은 어디서건 통쾌하게 좌판을 펼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의 입담엔 거칠 것이 없다. 시청자들은 깎은 듯한 아나테이너보다 시끌벅적한 줌마테이너에 열광했다. 줌마테이너만이 ‘막말’을 장착한 남자 MC 군단에 대적할 수 있었다.


 줌마테이너의 대표주자는 단연 박미선이다. 그녀는 지금 생애 두 번째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박미선은 <명랑히어로>에선 그 독하다는 <라디오스타> 4인방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해피투게더>에선 유재석-박명수 콤비와 입을 맞추고 있다. 박명수는 <지피지기>에선 아나테이너들과 함께 지리멸렬하게 퇴장했었다. 그러나 유재석-박미선과 함께 하는 <해피투게더>에선 입지를 탄탄히 다지고 있다. 아나테이너와 박미선이 극명히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경실, 조혜련이다. 이들은 예능계의 블루칩이다. 이들이 앉아있으면 기본적인 재미가 보장된다. 조혜련은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도 특별무대를 선보여 동료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 삼인방은 부활한 전통적 강호에 해당한다. 요즘엔 의외의 복병도 나타났다. 이승신, 임예진, 한성주 등 <세바퀴> 출연자들이다. 이들은 동년배 ‘아줌마’들의 환호를 받는다. 김구라조차도 이 줌마테이너들이 펼친 판 위에선 몸을 사린다. 이런 줌마테이너 현상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1. 능력


 첫째는 당연히 능력이다. 이들의 부흥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아나테이너처럼 대대적으로 밀어주지도 않았다. 순전히 본인들 능력이다. 박미선, 이경실, 조혜련 삼인방의 경우는 원래부터 능력이 출중했었다. 이들은 이경규와 대적해도 기가 눌리지 않을 정도다. 이들의 준비된 능력이 변화된 시대에 맞춰 빛을 발했다.


 과거엔 여성을 ‘꽃’으로만 여기는 풍조가 있었다. 개그계에서도 여성은 수동적, 보조적 존재였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여성에겐 여전히 외모와 나이라는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이들은 일찍부터 그런 벽을 넘어 주체로서 프로그램을 이끌었었다. 그들이 나이를 먹어서도 결국 자신들의 능력으로 유리천장을 뚫은 것이다.

2. 주류 연령대 상승


 요즘 대중문화 주류의 나이대가 올라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프로그램에 나이 40이 된 아저씨가 수시로 등장하는 세상이 됐다. 예능계의 남성들이 다 젊었다면 이들의 부활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남성들의 연령이 올라가자 여성들에게도 공간이 열렸다. 이들은 현재 중심을 이루고 있는 30대 후반의 MC들과 생동감 넘치는 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


 과거엔 20대가 연예계의 꽃이었으나, 지금은 30대가 중심이 되어 40대에게도 기회의 땅이 펼쳐진 것이다. 무작정 젊기만 한 것보다 축적된 연륜을 더 중시하게 됐다. 한국 대중문화가 성숙했기 때문이다. 세대차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 대중문화가 원숙해지면서 앞으로 더 높은 연령대의 스타가 등장할 것이다. 미국은 50대 대중연예인의 노래나 코미디를 젊은 사람들도 즐긴다. 줌마테이너 현상은 우리도 그렇게 진화한다는 징후다.

3. 아줌마 파워


 아줌마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시청률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드라마가 그렇다. 고생을 겪으며 산 줌마테이너들은 아줌마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다. 결혼과 생활에 대한 이들의 솔직한 말은 아줌마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결과는 시청률이고 그것이 다시 캐스팅으로 이어진다. 아나테이너는 젊은이들에게 자극도, 아줌마들에게 공감도 주지 못했다. 줌마테이너들은 자극과 공감을 동시에 장착했다.


4. 리얼 독설 막말 시대


 꾸민 예능의 시대는 갔다. ‘독설’과 ‘막말’로 ‘리얼’하게 들이대는 것이 먹히는 시대다. 들이대는 건 아줌마들의 강점분야다. 트렌드가 맞아떨어졌다. 예쁜 여자의 우아한 꾸밈말이 아닌 산전수전 다 겪은 아줌마의 속 시원한 쾌담에 시청자는 열광한다. 과거 젊은 사람들은 20대 스타의 토크를 즐겼으나, 지금은 20대조차도 20대 스타의 밋밋한 토크에 만족하지 못한다. 20대 배우가 나와 어중간하게 말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30~40대 출연자를 원한다. 그들이 방송 스튜디오에서 물 만난 듯이 속 시원한 토크를 구사할 때 시청자도 ‘빵 빵’ 터지는 시대다. 20대 출연자라도 신봉선 정도는 들이대줘야 합격점이다.

- 복위한 황제 대접 받은 최양락 -


 아쉬운 건 아무리 줌마테이너 전성시대라고는 해도 여전히 판을 선도하는 건 남성들만의 몫이라는 점이다. 여성 중 1인자는 남성 중 1인자에 비해 언제나 뒤처진다. 그러므로 연예대상은 남성 중 1인자의 것이다. 강호동과 유재석이 대상을 독식할 때 박미선은 최우수상에 만족해야 했다. 이건 연기상과는 다른 예능계만의 특징이다.


 드라마의 배우에 비해 MC는 지휘자, 리더의 성격이 강하다. 전통적으로 이것은 남성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여성은 남성 리더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이 먹은 여성의 약진이 주목 받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절대 강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줌마테이너 중에 1인자가 나올 때까지 그들의 질주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그들 중에 1인자가 나오는 날이 예능계에서 유리천장이 철거되는 날이 될 것이다.


 박미선은 ‘정글 같은 예능계에서 나이 먹어가는 여자로서 버티기 힘들고 속상했다’며 ‘방송을 그만 둘 생각도 했었다’고 했다. 그런 때에 비하면야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줌마테이너들이 최양락 등의 복귀를 열어줬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최양락에게만 집중됐다. 줌마테이너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줌마테이너,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