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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박찬호 울지마라, 할 만큼 했다

 

박찬호 울지 마라, 할 만큼 했다


 박찬호가 미국에서 화려하게 승승장구했을 때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인간 박찬호’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2007년에 이런 기사가 떴었다.


‘박찬호의 올림픽 선택’에 경의!

[유코피아 2007-11-23]


이 기사가 내 주의를 끌었다. 미국 스포츠전문 사이트인 <스카우트닷컴>이 ‘박찬호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본선진출을 노리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멤버로 아시아 지역예선에 출전하기 위해 LA 다저스와의 계약포기를 선언’했다고 보도했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작년에 있었던 야구 올림픽 금메달의 신화가 그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인 칼럼니스트는 박찬호가 자신의 꿈을 넘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선택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자기 한 몸의 가격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미국 프로스포츠 비즈니스계의 관점에서 보면 박찬호의 선택은 특이했을 것이다.


당시 34세의 박찬호는 다저스와의 계약에 임하면서 2007시즌 후 몇 가지 옵션(한국, 일본 행 내지는 은퇴)을 두고 고심을 거듭했다고 한다. 박찬호의 입지는 그때 매우 불안했다. 그는 한물 간 스타였다. 다저스 구단은 박찬호가 올림픽 예선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대표팀을 떠나 즉시 팀과 계약할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찬호는 계약에 실패하더라도 국가대표팀의 부름에 응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결과적으로 다저스와의 계약에도 성공했음)


2006년 WBC에서도 그는 선발에 명예를 건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대표팀의 마운드를 지켰다. 세이브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이미 그의 미국내 입지는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박찬호는 2008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대표팀 주장까지 맡았다. 그리고 대만과의 경기에 중간계투로 등판, 승리를 지켰다. 이때 박찬호가 기록한 최고시속은 147㎞. 전성기 때(156㎞)보다 훨씬 뒤처지는 기록이었다. 당사자로서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자기의 쇠락에 불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태극마크의 책임을 선택했다.


그가 2000년대 들어 태극마크를 달고 기록한 국제대회 방어율은 ‘0’이다. 개인적으로 병역면제가 걸려 있었고, 전성기였던 98 아시안게임보다 그 이후의 성적이 더 좋다.


이건 정신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미국 리그가 시작됐을 때 컨디션이 최고조에 이르도록 조절하지 않고, 대표팀 경기에 사력을 다한 것이다. 그에겐 그것이 ‘태극마크’의 의미였다.


그가 잘 나갈 때 국가대표팀으로 나서서 역시 또 잘한 것이었다면, 난 그저 ‘잘했나보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만리타향 미국에서 한물 간 운동선수로서 고독하게 싸우는 와중에 국가대표의 책임을 다했다. 상처 입고 쇠잔해가는 영웅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다하는 모습이랄까.


그 모습이 마음을 울렸다. 요즘 우린 ‘애국심’을 우습게 여기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이건 ‘애국주의’, ‘파시즘’, ‘국가주의’라고 비웃을 일이 아니다. 박찬호에겐 순박하게 고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의 행보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최근 <1박2일>에서 박찬호의 마이너리그 시절 고생담이 나왔다. 박찬호 자신이 그 프로그램을 보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리 잡았던 미국에서의 입지다. 그것이 흔들리는 데도 박찬호는 ‘조국의 부름’을 선택했다. 박찬호의 유명한 경기장 폭력 사건도 알고 보니 인종차별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박찬호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그는 어깨에 ‘조국’을 이고 살았던 것이다. 미국에서.


박찬호에 또 마음이 울린 것은 이 뉴스에서였다.


박찬호 "마이너리그에서 다시 한번 시작"

[연합뉴스 2008-03-31]


영웅이었다. 대스타였다. 이룰 것은 다 이뤘다. 이미지 구기지 않고 은퇴해도 된다. 한국에 돌아와 대접 받으며 살아도 된다. 그러나 그는 마이너리그를 선택했다. 천생 야구인이었던 것이다. 스타가 아니어도, 영웅이 아니어도 좋으니 마운드에서 공만 던지면 된다는. 한국인으로서, 야구선수로서 그는 묵묵히 앞만 보고 자신의 길을 갔다. 당시 보도된 마이너리그에서의 박찬호의 모습은 쓸쓸해보였다.


이때 박찬호를 응원하는 글을 쓰려 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못 쓰고 말았다. 오늘 인터넷에 그가 서럽게 우는 사진이 뜬 것을 보며 그 일이 생각났다. 미뤄뒀던 글을 지금 쓰고 있다.

오늘 박찬호는 태극마크의 책임과 미국에서의 입지 사이에서 미국의 팀을 선택하며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박찬호가 그간 대표팀에 임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그의 심정이 어떤 것일지 짐작이 간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 더 이상 선수생활을 못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는 천생 야구인이었다. 그는 마운드에 서야 했다. 그래서 이번엔 태극마크를 저버렸다. 그리고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죄송하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책임을 내려놓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박찬호 선수, 울지 마라. 당신은 당신이 할 일을 다 했다. 이젠 ‘고국’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도 된다. ‘한국인 박찬호’를 넘어서 ‘야구인 박찬호’로서 홀가분하게 살아도 된다. 마운드에서 두 팔을 치켜들고 당당하게 환호하는 박찬호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