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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선덕여왕 알천랑 포스 최고였다

 

<선덕여왕> 10회의 공식적인 주인공은 덕만이었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알천랑이었다. 일단 덕만의 얘기부터 해보자. 덕만이가 성인이 된 후 등장했던 9회는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덕만의 캐릭터가 ‘밉상’이었기 때문이다.


9회에서 덕만은 사고뭉치였다. 능력은 없는데 자존심만 강해서 대책없이 사고만 치고 다녔다. 자신의 부대가 견책 받는 상황에서, 게다가 전시인데도 그 알량한 자기 자존심 때문에 막사에서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진짜 칼을 쓰는 부대끼리의 승부에 단지 화가 난다는 이유로 부대원들을 선동해 뛰어들려 하기도 했다. 실력이 없는데도!


이것은 지도자로서 빵점인 캐릭터다. 청나라를 세운 누르하치는 개인적으로 모욕당한 일 때문에 부하들이 모두 전쟁을 주장했어도, 자기 개인의 모욕 때문에 전쟁까지 할 수는 없다며 부하들을 물리쳤다.


이렇게 개인의 감정을 누르고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성인이 된 덕만은 자기감정에만 충실하면서 툭하면 화를 내는 ‘욱사마’가 돼있었다. 욱사마 캐릭터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리더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 주인공으로서도 욱사마는 실격이다. 소녀 덕만의 캐릭터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때 덕만은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욱’해도 욱사마가 아니다. 해결능력도 없이 자기감정만 앞세우며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욱사마다. 민폐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할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욱사마는 드라마 주인공으로서도 실격이다. 이러면 드라마의 앞날에 먹구름이 낀다.


<선덕여왕>은 아주 빠르게 바로 다음 회인 10회에 덕만을 욱사마에서 책임있는 지도자로 성장시켰다. 김유신이 없는 자리에서 덕만이 본능적으로 부대를 지휘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불굴의 의지를 선보였다. 이러면 더 이상 욱사마가 아니게 된다.


단지 이상한 건 어렸을 때부터 김유신이 독기를 가지고 조련한 휘하 낭도들이 어쩌다 그렇게 오합지졸에 욱사마 집합소처럼 됐는가 하는 점이다. 아무리 덕만의 성장을 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덕만의 캐릭터는 아주 빠르게 성인 등장 후 2회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행이다.



- 최고였던 알천랑 포스 -


알천랑은 김유신·덕만 일당을 구박하는 얄미운 화랑으로 등장했다. 얼굴에서도 이렇다 할 강렬한 느낌이 없었다. 전형적인 ‘지나가는 악당‘이다.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주인공을 구박하는 비루한 악당이 나온다. 이런 자들은 항상 대의에 몸을 사리며 사리엔 눈을 반짝인다. 이들은 화랑이니 국방이 바로 대의라고 할 수 있겠다.


목숨을 던져 국가를 지키고 휘하를 용맹하게 지휘하는 것이 이들이 지켜야 할 대의였다. 전형적인 지나가는 악당이라면 이런 대의에 무심해야 한다. 덕만 부대를 위험으로 내몰고 자신은 뒷전에 있어야 한다. 그런 악당의 비루함을 밟고 올라 주인공이 찬란히 빛을 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알천랑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그는 용맹했다. 그는 앞장서서 부하들을 이끌었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승리를 쟁취했다. 덕분에 <선덕여왕> 10회의 진정한 주인공이 오합지졸 욱사마이다가 막판에야 각성한 덕만도 아니고, 답답한 햄릿형 김유신도 아닌, 단호함과 용맹함의 알천랑이 된 것이다.


바로 어제까지 비호감 무존재 캐릭터였던 알천랑이 단 한 회만으로 주인공 이상의 시선을 받게 됐다. 이것은 책임감 있는 리더가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절감케 했다.


10회에서 알천랑은 시각적으로도 발군이었다. 얼굴에 위장색을 칠하고 손짓으로 절도 있게 부하들을 지휘하는 모습엔 강렬한 매력이 있었다. 알천랑이 기습을 성공으로 이끌고 승리의 나팔을 부는 장면은 야성미의 극치였다. 그 순간 알천랑의 포스가 화면을 압도했다. 알천랑 자체도 매력적이었고, 그런 야성미를 느끼게 해준 작품도 매력적이었다.



보통 드라마에서 악당들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다가 정작 위험으로부터 몸을 뺀다. 반면에 <선덕여왕>의 화랑들은 누구의 편이든 간에 외적의 침입에 맞서 목숨을 건다. 이것은 등장인물들을 위대하게 보이도록 하며 극에 힘을 불어넣는다.


한국인은 이런 구도에 반응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겪는 불만 때문이다. 우리 현실에서 귀족들은 위험에서 몸을 빼기가 일수다. 병역비리논란이 그래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 <무릎팍도사>는 안철수 편으로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이것은 역으로 한국사회에 얼마나 공공적 윤리의식을 갖춘 경제인의 존재가 희박한지를 보여줬다. 비호감 무존재의 알천랑이 순간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한국사회에 얼마나 책임감 있고 나라를 위해 용맹한 귀족이 희소한지를 느끼게 했다.


<선덕여왕>에서 촌뜨기 김유신 부대를 멸시하는 서라벌 화랑들은 처음엔 부모나 잘 만난 귀족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라에 위기가 닥치자 그들은 용맹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리고 그 상징적인 인물이 알천랑이었다.


그로 인한 매력은 강렬했다. 그 책임감! 그 용맹함! 알천랑의 활약이 기대된다. 역사에 따르면 알천랑은 선덕여왕 사후까지 사는 사람이니 드라마에서도 더 활약할 것 같다. 알천랑뿐만 아니라 당시 화랑들의 전반적인 견위치명, 멸사봉공의 포스가 더 부각되는 <선덕여왕>이길 바란다. 미실의 마성과 화랑의 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