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 영상 칼럼

찬란한유산 문채원 죽상을 멈추라

 

모처럼 문채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주말에 문채원이 <찬란한 유산>에서 그 엄마역인 김미숙과 함께 ‘2인조 사기단’을 결성하여 전율을 일으킬 만큼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원색적인 욕설과 함께 문채원의 뺨을 때려주러 가고 싶다는 글까지 게시판에 등장했다. 이 정도까지 원망의 표적이 된 것은 문채원에겐 희소식이다. 예비 국민드라마 소리를 듣는 <찬란한 유산>에서 문채원의 존재감은 유독 미미했었기 때문이다.


문채원이 있건 말건 대중의 관심은 김미숙에게만 향했었다. 유독 여성 배우가 조로하는 한국사회에서 젊은 딸을 놔두고 엄마역의 여배우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만큼 문채원의 캐릭터는 ‘맹탕’이었던 것이다.


대략 한 달 전 정도에 삼각관계의 주역인 한효주, 이승기, 문채원의 캐릭터에 변화가 있었다. 그때부터 한효주의 캐릭터에 능동성이 생겨났다. 그리고 1차원적인 나쁜 남자였던 이승기가 한효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가며 복합적인 캐릭터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락가락 어정쩡하던 문채원이 악녀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이것들은 모두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작품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별 반응이 없었던 한효주가 부상하기 시작했으며, 연기자 이승기에 대한 논란이 사라졌다. 문채원의 악녀변신도 그녀의 캐릭터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일이었다. 물론 극의 대립구도도 더 흥미진진해진다.


한효주와 이승기는 계속해서 힘을 유지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문채원의 승미 캐릭터는 악녀 변신 후에도 여전히 어정쩡하고 수동적이었다. 바로 이것이 <화려한 유산>의 인기가 점증하는데도 유독 문채원의 존재감만 제자리걸음했던 결정적인 이유였다.


- 밋밋한 죽상은 안 된다 -


<찬란한 유산>의 문채원을 보면 ‘죽상’의 계보를 잇고 있는 것 같다. <그저 바라보다가> 초반부의 김아중에 이은 죽상 시즌2다. 당시 김아중은 수동적이고 우울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그저 바라보다가>는 중반에 김아중의 캐릭터를 바꿨다. 그녀를 밝고 적극적인 캐릭터로 진화시킨 것이다. 죽상을 버린 것은 <그저 바라보다가>의 시청률이 반등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될 만큼 효과적이었다. (또 다른 계기는 황정민 캐릭터가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성격으로 변했던 것.)


그 <그저 바라보다가> 초반부 김아중의 죽상을 하필 문채원이 잇고 있는 것이다. 김아중의 죽상은 작품을 잠수시킬 뻔했었다. <찬란한 유산>에선 문채원의 비중이 김아중에 비할 바가 아니다. 김아중은 투톱 중 하나였는데, <찬란한 유산>의 투톱은 한효주, 이승기이고 거기에 반효정, 김미숙, 배수빈 등이 받치는 가운데 문채원이 옆에 껴있다. 그러므로 문채원이 죽상을 하건 말건 작품이 난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채원 본인을 잠수시키는 데는 충분하다.


문채원은 김미숙과 짝을 이뤄 투톱인 한효주, 이승기 반대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채원의 존재감은 잠수를 타고 말았다. 김미숙 원맨쇼 옆에 어중간하게 얹혀있는 것이다.


수동적인 죽상은 보는 이를 답답하게만 할 뿐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캐릭터, 거기에 단호함까지 갖춘 캐릭터가 욕을 먹을 때 먹더라도 존재감을 쟁취할 수 있다. 지난 토요일에 이인조 사기단의 일원으로 컴잉아웃했을 때 문채원의 존재감이 급진전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 어정쩡한 답답이에서 벗어나라 -


하지만 이승기의 집에서 경악할 만한 악행을 저지르고 집으로 돌아온 문채원은 다시 답답한 죽상으로 돌아갔다. 멀쩡히 나쁜 짓을 잘해놓고 갑자기 엄마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모든 게 다 엄마탓이라는 식으로 발뺌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죽상하고 앉아서 눈물을 흘렸다. 이건 짜증을 유발하는 캐릭터다.


시청자의 증오는 당당하고 주체적이고 충실한 악녀인 김미숙이 다 차지하고, 문채원은 ‘어정쩡 답답이’로 그늘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걸 엄마탓으로 돌리고 죽상이나 하는 수동적이고 찌질한 비주체 캐릭터는 주목 받기 힘드니까.


문채원이 엄마한테 매몰차게 대하는 걸로 자신의 착함을 주장할 때, 김미숙은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했다. 그 단호함에 시청자는 증오와 동시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문채원이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면 답답한 죽상을 거두고 주체적인 악녀로 변해야 한다. 엄마의 부록인 캐릭터로는 강렬한 인상을 줄 수 없다. 부록은 부록일 뿐이니까. 남탓이나 해대는 캐릭터는 현실에서도 드라마 속에서도 답답할 뿐이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무존재감에서 탈출하기 힘들 것이다. 문채원의 캐릭터엔 변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