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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지붕뚫고하이킥, 놀라운 성공의 비밀

 

 <지붕 뚫고 하이킥>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이대로라면 다시 시트콤의 봄날을 열 것 같다. 이 작품이 시작되기 전까지 시트콤의 처지는 지리멸렬 그 자체였다.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에 ‘하이킥’을 날려주는 시트콤이 없었다. <크크섬의 비밀>이 마니아의 사랑을 받았지만 일반 대중에겐 외면 받았을 뿐이다. 과연 <거침없이 하이킥>은 한국 시트콤의 절정이자, 다시 올 수 없는 마지막 봄날이었단 말인가?


 상황은 어려워보였다.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괴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과거의 예능 프로그램이 순간의 자극을 주는 이벤트적 설정이나 토크 위주였다면, 리얼 버라이어티는 캐릭터들이 엮어내는 이야기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1박2일>은 매순간 자극을 주지도 않고, 스타 게스트를 초대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기들끼리 여행하면서 게임도 하고 밥도 먹는 모습을 계속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 뻔한 프로그램을 질리지도 않고 본다. <1박2일>의 캐릭터들에게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딩, 앞잡이, 허당, 돼랑이 등의 캐릭터들은 매회 서로 충돌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시청자는 그 캐릭터들에게 감정이 이입됐기 때문에 그들의 여행 체험이 내 것 같고, 그들이 푸짐한 음식을 먹을 땐 함께 만족감을 느낀다. 일단 캐릭터들이 심장 안으로 들어가면, 그 다음엔 그들이 엮어내는 어떤 이야기에도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시트콤도 그렇다. 미니시리즈가 하나의 줄거리로 구성된 이야기 중심인데 반해, 시트콤은 캐릭터 중심인 것이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좌충우돌 충돌로 빚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의 이어짐이라는 측면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와 시트콤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패밀리가 떴다>의 대본 논란은 리얼 버라이어티와 시트콤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불분명한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런 리얼 버라이어티가 극성기를 맞고 있으니 시트콤의 입지가 어려워보였던 것이다.



 시청자들은 생생하고 활기찬 것을 원하고 있었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그렇고, 공개코미디의 인기가 그렇다. 정적인 느낌을 주는 스튜디오 코미디와 드라마 형식으로 구성된 코미디는 냉정한 외면을 받았다. 물론 드라마에는 드라마만의 장점이 있다. 드라마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이야기’를 가장 잘 펼칠 수 있는 장르 아닌가. 시트콤은 그런 이야기와 희극적 과장을 결합한 장르다. 아무리 리얼 버라이어티와 공개코미디가 눈길을 끄는 세태라 하더라도 드라마가 설 땅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극 드라마마저 시트콤의 입지를 위협했다는 점이다. 옛날엔 과장되거나 어설픈 설정은 시트콤에서나 가능했다. 요즘엔 정극에서 그런 것이 나온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천사의 유혹>에선 의사도 포기한 혼수상태 환자가 휴대용 저주파 치료기에 의해 깨어난다는 황당한 설정이 버젓이 등장했다. 룸살롱에서 재벌 회장의 기업 비밀을 빼내는 설정도 시트콤 같았다. <밥줘>에선 악녀가 귀신을 보고 죽는다는 설정이 나왔고, <꽃보다 남자>와 <아가씨를 부탁해>에선 터무니없이 과장된 부잣집 풍경이 등장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의 결정판은 구은재를 민소희로 바꾼 ‘점 하나’일 것이다. 변우민이 집 나가서 ‘개고생’하는 장면들도 정극과 시트콤의 경계를 깼다. 정극 드라마가 이렇게 막 나가자 시트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 성공의 비밀은 사람 -


 <지붕 뚫고 하이킥>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받았다. 특별히 기대를 받은 것은 이것이 저 유명한 김병욱 PD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순풍산부인과>와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국민 시트콤의 계보를 잇고 있는 스타 연출자다. 혹시 그라면 시트콤을 다시 살려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그마저도 안 되면 시트콤의 부관참시라는 우려가 교차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지붕 뚫고 하이킥>은 우려를 보기 좋게 ‘하이킥’으로 날려버리고, ‘역시 김병욱!’이란 찬탄을 터뜨리게 만들고 있다. 김병욱 PD는 다큐멘터리 애호가다. 그런 연출자답게 그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인간탐구를 펼쳐 보인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욕망, 부끄러움, 추억 등을 정확하게 집어내 과장되게, 그리고 극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다. 드러내놓고 말하기 힘든 치사한 감정이라든가, 쓸쓸함, 아픔들도 웃음 속에 녹아들어있다. 그래서 혹자는 그의 시트콤을 보고 있노라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바로 이것이 마니아 시트콤으로 끝난 <크크섬의 비밀>과 <지붕 뚫고 하이킥>의 다른 점이다. 전자엔 과장된 설정은 있었지만 인간과 아픔이 없었다. 과장만 있는 캐릭터에 시청자는 몰입할 수 없었다. 결국 문제는 ‘사람’인 것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모두 저마다의 애환을 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트콤으로 풀어가고 있다. 예컨대 부잣집 사위인 꽃중년 정보석이 사실은 설움 속에서 살고 있다는 식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을 정확히 잡아내 캐릭터로 발전시키고, 우리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이야기들을 경쾌하게 그려나간다면 시트콤은 자신만의 입지를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이야기에서 약하고, 정극 드라마는 경쾌함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방귀 순재에서 시작된 캐릭터들은 허당 보사마, 필살 애교 황정음 등으로 이어지며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시골에서 올라온 자매는 주인공 가족의 과도한 부유함이 주는 공허함으로부터 작품을 구원하고 있다. 캐릭터들이 완전히 자리 잡은 후엔 본격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러브라인이 시작되면 폭발력이 상당할 것 같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시원한 ‘하이킥’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