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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하이킥, 신세경의 돈이 날 울렸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시트콤을 보다 눈물을 흘릴 줄이야. 그동안 <지붕 뚫고 하이킥>이나 김병욱 PD의 작품들에 대해 말하면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는 표현을 인용했었다. 그건 그만큼 <지붕 뚫고 하이킥>이 시트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아픔에 천착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쓴 수사였지 정말로 눈물이 난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지난 주에 <지붕 뚫고 하이킥>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깼다. 그리고 난 지난 주에 이 작품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저 감동받은 수준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눈물이 흘러 내렸던 것이다. 시트콤을 보다가!


<지붕 뚫고 하이킥>이 처음 시작됐을 때 이순재 집안의 지나친 부유함 때문에 우려가 제기됐었다. 운전기사까지 따로 두고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집안의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김병욱 PD의 작품은 우리 현실에 기반한 것들이고, 그것은 우리의 심리와 우리 사회의 아픔을 표현함으로서 공감을 불러일으켰었다. 한편 최근 현실에서 벗어나 허공에서 부유하는 듯한 작품들은 온갖 과장과 웃긴 설정에도 불구하고 모두 참패했었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 기대했던 건 현실에 기반한, 인간이 있는 웃음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사멸해가는 시트콤을 부활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됐다. 그런데 주인공 집안이 아무 걱정 없이 사는 부잣집이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작하자마자 우려가 제기됐던 것이다.



하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시골에서 무일푼으로 올라와 이순재 집안에 얹혀살며 식모살이를 하는 세경이 자매를 부각시킴으로서 자칫 허공으로 날아갈 수도 있었던 작품을 지상에 안착시킨 것이다. 해리에게 구박받는 신애의 설움도 작품을 안정시켰다.


김자옥의 집이 부각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그녀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찌질-궁상 88만원세대들이 역시 작품을 받쳤기 때문이다. 특히 학벌차별의 설움에 몸을 던지고, 급체를 하고, 정신까지 잃는 지방대 설움녀 황정음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 황정음은 밥이든 술이든 먹을 기회만 생기면 가공할 식탐을 발휘하다 떡실신하며 코믹퀸에 등극했다.


예쁘고 밝은 황정음이 사실은 학벌 콤플렉스에 시달린다는 식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은 사람 내면에 있는 아픔을 탐구한다. 그 아픔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실에 기반한 것들이다. 바로 이점이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진정한 힘이다.


황정음은 아픔을 가진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화사하고 과장된 웃음을 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찍 떴다. 반면에 신세경은 화사하지도 않고 과장된 웃음도 없는, 오직 착함과 아픔만 가지고 있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황정음보다 늦게 부각됐다. 하지만 더 큰 울림을 준다.


캐릭터의 특성상 황정음의 상처는 과장되고 웃기는 형태로 표현된다. 황정음이 자기 학생증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다 몸을 던져 막는 것이나, 버스에 낙서를 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반면에 신세경의 상처는 정말로 아프게 표현된다.



바로 지난 주에 세경이 자매와 아버지의 상봉 에피소드가 그랬다. 지훈이 예의 훈남모드를 발휘해 세경에게 사준 휴대폰을 해리가 저 짜증나는 ‘내 거야’ 모드로 가로채는 바람에 세경이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하여튼 해리만 보면 분통이 터진다.


그러다가 지훈의 도움으로 세경은 결국 아버지의 전화를 확인했고 세 모녀는 눈물의 상봉을 했다. 시트콤에 감동이란 말을 쓰는 것은 참 어색한데, 이들의 아픔은 확실히 마음을 치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한 세경이의 돈. 그 돈을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그 돈은 남의 집에 얹혀살며 밥과 청소는 물론 온갖 심부름까지 다 하고 달랑 몇 십만 원 받은 것으로 저축도 하고 동생 학교비용까지 다 대면서 거기서 쪼개 아버지에게 찔러드린 세경이의 마음이었다. 그 돈을 보며 세경이 아버지가 눈물을 흘릴 때 내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시트콤을 보다가 울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시트콤이지만 정극 드라마가 무색할 정도로 탄탄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과 사회를 섬세하게 탐구한 내공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온갖 스타들을 동원해 만든 미니시리즈들이 판판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던 올해 <지붕 뚫고 하이킥>의 분전은 확실히 돋보인다. 나를 웃겼다 울렸다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괴물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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