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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추노, 하시은이 육박해오다

 

이번 주 <추노> 11, 12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하시은의 열연을 들 수 있겠다. 조연으로서 지난 주에 성동일이 가장 빛났다면 이번 주엔 단연 하시은이다. 그 외에도 무용 같은 액션, 실내에서 아름다운 이다해 등도 인상 깊은 이미지였다.


- 무용인가 액션인가 -


<추노> 11회는 볼거리 풀세트를 보여줬다. 선정성(제작진은 조선 민초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마치 야사집에 나올 것 같은 걸쭉한 해학, 그리고 액션까지, 감각적 쾌감을 주는 이미지들이 총집합했다. 그중에서 가장 볼 만했던 건 액션이었다.


11회에는 두 개의 공들인 액션이 등장했다. 하나는 장혁 패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또 하나는 장혁이 말을 탈취하러 역참을 습격했을 때였다.


장혁 패거리가 처음 만나는 순간의 액션은 마치 옛날 성룡 영화를 보는 듯했다. 요즘의 헐리우드로 간 성룡 말고, 과거 홍콩에서 <프로젝트 A> 등을 찍을 당시의 재기 넘치는 성룡 말이다. 그만큼 경쾌하고 속도감 있는 액션이었다.


특히 김지석의 가벼운 몸놀림은 마치 무용을 보는 듯했다. <추노>는 롱테이크 기법을 이용해 김지석의 몸놀림이 주는 시각적 쾌감을 적절히 부각시켰다. 마치 무용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액션은 역참 습격씬에도 이어졌다.


장혁이 빙 둘러싼 포졸들을 일시에 뒤로 날려버리는 장면은 흡사 뮤지컬의 안무 같은 느낌이었다. 과거 홍콩 신무협의 액션을 북경 경극의 안무에 비했었다. 그럴 만큼 무협과 무용은 묘하게 겹치는 구석이 있다. 이번에 <추노>의 액션이 그렇게 아름답고 경쾌한 무용 같은 감흥을 준 것이다.


이 정도 공들인 액션을 계속해서 보여준다면, 작품이 설사 극적으로 웬만큼 허술하다 해도 적극 지지할 용의가 있다. 물론 <추노>는 극적으로 허술하지도 않으며, 수많은 조연들이 연기의 끝장을 보여주고 있어 볼 때마다 눈이 호강한다.


 

- 들판보다 실내가 어울리는 이다해 -


12회에 모처럼 이다해가 빛났다. 민폐 없이, 억지설정 없이, 선정성 없이, 그녀의 아름다움만으로 자체발광했던 한 회였다.


그동안 그녀의 캐릭터는 한양에서 제주까지 들판을 헤맸으나 티 하나 묻지 않는 신부화장, 선녀복장 등 억지설정으로 빈축을 샀다. 오지호의 발목을 잡는 민폐적 성격도 그녀로의 몰입을 방해했다. 선정성도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12회에 안정된 집안에서 편안한 분위기가 형성되니, 그녀의 신부화장과 선녀복장이 전혀 튀지 않았다. 더 이상 민폐도 아니었고, 억지설정도 아니었다. 여태까지의 붕 떠있는 느낌과 달리, 오지호와 청혼을 둘러싼 실랑이를 하며 감정선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서 모처럼 그녀에게 몰입될 수 있었다.


이다해 캐릭터의 분위기는 확실히 이렇게 여유 있는 환경에서 빛을 발하는 설정이다. 이런 캐릭터를 산으로 들로 산지사방 끌고 다녔으니 캐릭터와 환경의 부조화가 클 수밖에 없었다. 대갓집 안에 우아하게 있을 때 어울리는 캐릭터를 살과 피가 튀는 추격의 들판에 내동댕이쳤으니, 초현대식 복장으로 조선 저자를 활보하는 것만큼이나 튀었던 것이다. 그런 설정 덕분에 욕만 잔뜩 먹은 이다해가 안쓰럽다.



- 하시은이 가장 눈부셨다 -


서두에 말했듯이, 이번 주에 가장 눈부셨던 건 무어니무어니 해도 뇌성마비 연기의 하시은이었다. 하시은은 극 중 최악의 냉혈한인 좌의정의 딸이다. 그리고 뇌성마비 환자다. 좌의정은 그녀를 출신이 한미하여 만만한 이종혁에게 시집보낸다. 그로 인해 이종혁은 좌의정의 수족이 된다. 이것이 이종혁의 비극성이다. 미천한 출신과 오지호에 대한 콤플렉스, 좌의정에 대한 분노로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려 간다.


한편, 이종혁은 부인인 하시은을 증오한다. 그녀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좌의정에게 매인 신세가 되었으니까. 이것이 하시은 캐릭터의 비극성이다. 그녀는 중증 질환으로 인한 비극과 남편의 증오를 감당해야 하는 비극을 이중으로 그려내야 한다. 즉 안면근육을 섬세하게 움직일 수 없는 뇌성마비 질환을 표현하며 동시에 섬세한 정서까지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하시은은 진짜 뇌성마비 환자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안타까운 정서를 훌륭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이종혁의 증오를 받으면서 그를 염려하고, 또 그를 위해 아버지에게 매달리는 모습. 이종혁이 감옥에서 풀려 난 후 ‘아버지와 맞서지 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애원할 때의 안타까움. 이종혁이 정신을 잃고 누워있을 때 그를 다그치는 아버지 좌의정을 밀어내며 소리치고 울부짖을 때 그녀는 극중 인물에 완전히 몰입한 배우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줬다.


12회에서, 그녀에게 이종혁은 ‘그대 목소리 듣기 싫소’라며 무참한 말을 던진다. <추노>는 그 말을 던진 이종혁이 방을 나간 후 홀로 앉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 하시은을 부각시켰다. 이때 하시은 캐릭터의 절절한 정서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하시은이란 배우가 육박해왔다.


위에 지적한 것처럼 지난 주엔 성동일의 열연, 이번 주엔 하시은의 열연이다. <추노>는 조연들의 은하수인가보다. 별처럼 빛나는 조연들이 한 명 한 명 빛을 발하고 있다. 가히 별들의 전쟁, 연기의 절창이다. 무용처럼 아름다운 액션에 신들린 연기의 향연까지. <추노>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