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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로드넘버원, 낯뜨거운 최민수 전사 설정

 

<로드넘버원> 7회에선 중대장인 최민수가 전사했다. 그런데 그 설정이 최악이었다. 시대착오도 이런 시대착오가 없었다. 꼭 그래야 했을까?


최민수의 중대는 국군 최초로 낙동강을 넘어 북진을 개시한다. 한 마을에 진입했을 때 북한군 패잔병을 발견하게 된다. <로드넘버원>에는 남북한에 각각 대표적인 ‘찌질이’ 캐릭터들이 나온다. 남한에선 윤계상과 손창민이고 북한에선 김하늘의 오빠다. 남한의 찌질이인 손창민이 불문곡직하고 북한군 포로를 죽이려고 길길이 날뛴다.


그때 중대장 최민수가 죽이는 걸 막는다. 아직 어린애들이라는 인도주의적인 대사도 하면서. 주인공인 소지섭도 당연히 살육에 반대한다. 심지어는 찌질이 캐릭터인 윤계상조차도 포로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나선다.


이때 중대원 중에 북한군을 아는 병사가 나타난다. 그는 손창민에게 그 북한군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국군은 북한군 처리를 놓고 혼란에 빠지고 그 틈을 타 북한군 한 명이 도주한다.


최민수는 바로 그 병사의 손에 죽었다. 국군이 적들을 인도주의적으로 대하며 인간적인 논란에 빠진 덕분에 살아난 북한군 병사가 은혜도 모르고 최민수를 죽인 것이다. 최민수가 남한의 휴머니즘을 대표하여 북한의 냉혹함에 목숨을 잃은 구도다.


이건 거의 80년대 반공영화 수준의 설정이다. 2000년대에 이런 구태의연한 설정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낯 뜨거운 시대착오다.


7회 마지막에 방영된 예고편에서 그 북한군 병사의 울부짖는 모습이 잠깐 나온 것으로 보아 그 병사에게도 뭔가 인간적인 사연을 만들어줄 지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로드넘버원>이라는 작품 전체에 깔린 시대착오적 구도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 간호사 때리는 사이코패스 북한군 -

<로드넘버원>은 남한을 인간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반해 북한을 철저히 비인간적으로 그린다. 7회에선 북한군에 대한 처우 때문에 인도주의적 논란을 벌이다 결국 중대장이 사망하는 남한군의 모습과 냉혹한 북한군 야전병원의 모습이 대비됐다.


북한군은 포로의 목숨은 돌볼 필요가 없다며 김하늘을 핍박하고 고문했다. 김하늘에게 겁을 주기 위해 간호사를 때리는 북한군 장교는 거의 사이코패스처럼 그려졌다. 흡사 <똘이장군>을 보는 듯했다.


지금 <로드넘버원>에서 그려지는 시점은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한 방에 치고 내려왔다가 국군이 막 반격을 시작하는 대목이다. 이때까지는 북한군이 승리자였고, 국군은 악에 받친 처지였다. 그런 전황에서 과연 이 드라마가 그리는 것처럼 국군이 북한군에 비해 여유를 가질 수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임진왜란 때도 왜군이 야수가 된 것은 최초 진군 때가 아닌, 조선군의 반격 이후 전황이 어려워졌을 때부터라는 얘기가 있다. 북한이나 남한이나 똑같은 인간이고, 조선사람인데 유독 북한군만 유리한 전황에서도 그렇게 악귀처럼 굴었을까? 이건 내가 한국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못했으니 그렇다 치고.


북한의 대표적 찌질이인 김하늘 오빠의 묘사도 황당하다. 김하늘의 오빠는 봉건적인 신분의식에 젖어, 자기 동생을 넘본다는 이유로 소지섭의 손을 낫으로 찍어버리는 흉악무도한 사람이다. 커서도 소지섭에게 차갑게 대한다. 그런데 그가 사회주의자 빨치산이다.


이건 앞뒤가 안 맞아도 심하게 안 맞는다. 사회주의자는 봉건적 차별을 무엇보다도 증오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빨치산은 철저히 하층민중의 입장에 서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주에게 흉악하게 행동하는 것은 말이 되지만, 소지섭에게 그러는 것은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설정이었다.


논리성이고 뭐고 다 떠나서 북한편을 무조건 나쁘게 그리는 설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런 묻지마식 막가파 ‘빨갱이’ 묘사는 1990년대에 이미 자취를 감췄다고 믿었는데 2010년에 다시 볼 줄은 몰랐다. <로드넘버원>에서 북한군들은 대체로 감정 없는 기계처럼 보인다.



- 여전히 냉전시대? -

일반적으로 <전우>의 보수성을 걱정했었는데, <로드넘버원>의 묘사가 더욱 시대착오적이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전우>에선 그래도 북한군들이 ‘인간’으로 묘사된다.


요즘 하도 유치한 오해가 난무해 굳이 덧붙이자면, 난 북한을 옹호하는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미국의 세계대전후 국제전략을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그들의 한국전쟁 참전을 다행으로 여긴다. 지금 현재는 민족사의 정통성이 북한이 아닌 남한에 있다고 믿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을 우리와 다른 별종으로, 과거 반공물 같이 악마처럼 그리는 것은 좋게 봐줄 수가 없다. 그것은 증오와 불필요한 긴장을 초래할 뿐이다. 남북대결이 우리 사회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제는 평화와 화합의 시대라는 것이 21세기에 도달한 합의였다.


<로드넘버원>은 너무나 낯 뜨거운 냉전시대 방식의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과 같은 구도가 이어진다면 최악의 반공물로 기억될 것이다. 모처럼 존재감을 보여준 최민수의 연기와, 광휘가 뿜어져 나오는 ‘소간지’의 눈빛이 아까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