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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남자의자격, 천상의 소리 배다해 서늘한 충격

 

요즘 일요일 예능 중에선 <남자의 자격>이 단연 돋보인다. 새로 시작된 <런닝맨>이나 <영웅호걸> 등이 워낙 자극이 강한 설정이라 상대적으로 <남자의 자격>의 편안함이 부각되는 측면도 있다.


비슷한 편안함을 주는 것으론 <1박2일>도 있다. 하지만 <1박2일>은 김C가 빠진 시점 이후 뭔가 밋밋해진 감이 있다. 멤버들 간의 화학작용이 과거처럼 살아나진 않는다. 그렇지만 가족과 함께 흐믓하게 볼 수 있는 편안한 전개는 이번 주에도 여전했다.


<남자의 자격>은 마냥 편안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1박2일>보다 좀 더 힘이 느껴져 더욱 돋보인다. 그리고 <남자의 자격>은 종종 사람을 몰입시키는 테마를 잡아낸다. 그것이 이 아저씨들의 이야기에 흥미가 이어지는 이유다.


이번에 합창단 테마도 상당한 흥미를 유발했다. 만약 연예인들이 나와 웃기기만 했다면 이렇게까지 흥미롭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의 자격>은 그렇게 웃기기보다 그저 정직하고 진지하게 오디션을 치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이건 참 ‘비예능적’인 방식이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남자의 자격>이 평소에 풍기던 진솔한 인간미의 느낌과 어울렸다. 무조건 웃기려고 유명 연예인들이 좌충우돌하는 것보다, 이렇게 진솔한 느낌이 바탕에 깔리면서 거기에 적당한 웃음이 부가될 때 프로그램에의 몰입도가 극대화된다.



- 매력적인 오디션 -


오디션을 보러 온 사람들의 적당한 쇼맨십과 긴장된 모습이 교차되는 것이 마치 <슈퍼스타K> 같았다. <슈퍼스타K>는 정말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노래 부르는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훌륭한 예능이라는 점을 일깨워준 바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합창단이라든가 노래를 해보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그 꿈을 이루지 못했던 사람,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고 있지만 한번쯤 합창단 활동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부들부들 떨며 도전하는 모습은 꿈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사회인들의 ‘로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남자의 자격>은 이렇게 현실에 지쳐가는 소시민들의 꿈을 표현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만약 <남자의 자격>이 남자의 강함을 표현하는 마초적 성격이거나, 화려하고 웃기는 연예인들의 경연장이었다면 지금처럼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덜 웃기고 어설퍼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욱 무력한 소시민들의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고, 그들의 꿈을 자극하며, 판타지와 위안 때로는 용기를 주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남자의 자격>은 돋보인다.


이번에 합창단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 멀쩡한 어른들이 그렇게 손가락까지 덜덜 떨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유명 아나운서나 프로 연주자, 개그맨들도 잔뜩 긴장해서 오디션에 임했다. 그것은 그들을 우리와 같은 소시민처럼 보이게 만들었고, 동질감과 감정이입의 바탕을 만들었다.



- 천상의 소리 배다해 서늘한 충격 -


이번 <남자의 자격> 오디션이 또 좋았던 건, 가창력 있는 신인가수와 뮤지컬 배우들에게 기회를 주려 애썼다는 점이었다. 요즘 발에 차이는 게 아이돌이다. 아이돌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들이 한국 가요계를 점령하는 것이 민망한 노릇인 건 분명한 사실이고, 기획사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여타 가수들이 무대에서 쫓겨나는 것도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남자의 자격>은 그 흔한 아이돌 스타 하나 없이 무려 2회에 걸쳐 오디션 특집을 수행하며 ‘노래를 하는’ 진짜 가수들에게 조명을 비춰줬다. 이것은 노래의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가수란 바로 노래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했다.


신인가수 바닐라루시의 배다해가 등장했을 때 이런 느낌은 극에 달했다. 그녀는 처음에 수수하게 등장했고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그녀가 노래를 하는 순간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게 가수다. 겉으로 보기엔 일반인과 별로 다를 것도 없어 보이고, 말주변도 없는 사람이 노래를 하는 순간 광휘가 쏟아지며 사람들을 경악에 빠뜨리는 마법 같은 재능의 소유자들. 음악 프로그램에선 이런 가수들이 주로 활동해야 하고 아이돌은 보조적으로 나오는 것이 맞다.


우리 대중음악계는 주객이 전도됐다. 외모에서 이목을 확 끌고, 화려한 예능감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다가 막상 노래를 시작하면 ‘애걔?’하게 만드는 가수들이 무대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도 가수 관련 이슈란 것이 주로 속옷 착용 논란, 노출 논란, 표절 논란 등이었고 압도적인 가창력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심지어 최근 수위를 다투고 있는 노래에선 가수가 노래를 거의 안 하고 춤만 춘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배다해의 목소리는 서늘한 충격이었다. 방송생활을 그렇게 오래 한 김국진이 ‘저렇게 노래 부르는 친구들이 더러 있군요’라고 놀랄 정도였다. 그동안 수많은 가수들을 봤을 텐데 얼마나 제대로 된 노래를 못 들었으면 그렇게 놀란단 말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가요계 풍토다. 그런 풍토이기 때문에 <남자의 자격>이 노래 그 자체에 조명을 비춘 것이 의미 있었고, 그 속에서 신인가수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