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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전인화 뛰어넘는 악녀 김혜옥

 

이번 주에는 두 중견배우의 활약이 빛났다. 바로 <제빵왕 김탁구>의 전광렬과 <나쁜남자>의 김혜옥이었다.


<제빵왕 김탁구>에서 전광렬은 ‘배우의 힘’을 보여줬다. 전광렬과 김탁구가 재회할 것이고, 재회한 다음 어떤 식으로 감정을 발산할 것인지 거의 예측하고 봤는데도 부지불식간에 눈물이 괴었다. 전광렬의 ‘폭풍열연’ 때문에 상황에 빨려 들어간 것이다.


전광렬은 어디에서나 작품을 지탱하는 괴력을 보여준다. <왕과나> 당시에도 주연들의 존재감이 전멸하는 가운데 전광렬이 홀로 작품을 지탱했었다. <태양을 삼켜라> 때도 주연 이상으로 작품을 받쳤다. 그야말로 ‘미친 연기력’이다.


이번 주에 전광렬은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고, 그에 따라 찬사를 받았다. 당연한 일이다. 안타까운 건 <나쁜남자>의 김혜옥이다. <나쁜남자>가 끝난 후 극에서의 비중이 미미했던 정소민까지 주목을 받았지만 김혜옥은 주목 받지 못했다. 이건 부당하다.


김혜옥은 <나쁜남자>에서 전광렬 이상으로 중견배우의 힘을 보여줬다. 스타일과잉이랄까? 멋있는 이미지의 연속으로 허공에서 부유하는 듯한 드라마를 땅에 뿌리박게 한 것이 김혜옥의 힘이었다.



- 전인화보다 더 나쁜 여자 -


요즘 최고의 나쁜 여자로 손꼽히는 건 전인화다. 전인화는 부자의 본처로 남편이 바람 펴서 나은 천한 소생 자식을 증오하는 역할이다. 이런 역할은 대단히 전형적이다. 통속 멜로 구도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악역이다.


최근 이런 악역의 트리오로는 <자이언트>의 이덕화 부인, <제빵왕 김탁구>의 전인화, <나쁜남자>의 김혜옥을 들 수 있다.


이중에서 <자이언트>의 이덕화 부인이 가장 존재감이 없다. 연기력을 따지기 전에 캐릭터 자체에서부터 생명력이 없고 깊이도 없다. 과장되게 천박하고 이기적인 ‘싸모님’의 캐릭터를 무리 없는 수준에서 보여주고 있다.


전인화는 그에 비하면 훨씬 강렬하다. 표독하고 앙칼지며 음흉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싸모님’의 포스를 보여준다. 그에 따라 최고의 악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맞는 말일 수도 있었다. 만약 김혜옥이 없었다면 말이다.


<나쁜남자>의 ‘나쁜 싸모님’인 김혜옥의 캐릭터는 훨씬 소름 끼친다. 전인화가 시종일관 악랄하다면, 김혜옥은 교양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문득문득 나타나는 그녀의 맨얼굴이 더욱 섬뜩했다.


정말로 현실에 있을 법한 ‘싸모님’의 모습이기도 했다. 미술관을 하며 교양을 과시하고 따뜻한 웃음과 관대함으로 아랫사람들을 대하지만 사실은 그 속에 속물근성과 신분차별의식이 가득한 부르조아의 맨얼굴이랄까?


현실성과 캐릭터의 깊이가 단연 뛰어났고 그것을 배우 김혜옥이 생생하게 표현해냈다. <나쁜남자>가 진행되는 내내 ‘최고의 악녀는 김혜옥’이라는 감탄이 내 입 안에서 맴돌았었다.



- 김혜옥의 재발견 -


통속 멜로 구도에서 ‘싸모님’은 기득권 계층의 위선, 허위, 이중성, 배타성 등을 보여주며 불쌍한 주인공을 차별하고, 구박하고, 증오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이 역할 덕분에 주인공이 겪는 고난이 처참해지고 보는 이의 마음을 잡아끄는 비극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빵왕 김탁구>에서는 전인화와 윤시윤의 관계가 작품의 중심축이고, <나쁜남자>에서는 김혜옥과 김남길의 관계가 또 다른 중심축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전인화가 유진에게 막 대하고, 김혜옥이 한가인에게 막 대하는 것도 같은 구조)


다만 <나쁜남자>는 중반부에 선남선녀들 간의 삼각멜로를 더 부각시켰기 때문에 김혜옥의 중요성이 간과됐다. 그래서 전인화는 악녀로 뜨고 김혜옥은 뜨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김혜옥은 최종보스 ‘싸모님’으로서 확실히 작품을 지탱해냈다. 김혜옥이 섬뜩한 ‘싸모님’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면 <나쁜남자>는 긴장감이 사라진 화보모음집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이번 주에 <나쁜남자>에서는 김혜옥의 음모가 완전히 밝혀지며 그 악마성이 폭로됐다. 거대한 파멸. 전광렬의 폭풍열연에 비견될 김혜옥의 열연이 터질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물론 김혜옥의 연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나쁜남자>는 중견배우 김혜옥의 재발견과 함께 끝을 맺었다. 그녀가 주목 받지 못한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