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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로드넘버원, 김하늘은 왜 항상 철조망 안에 있나

 

정말 이상하다. <로드넘버원>이 욕을 안 먹는다. 물론 욕을 전혀 안 먹는 건 아니다. 극 초반에 액션씬이 늘어진다고 욕을 좀 먹었었다. 3각 관계 멜로의 과잉이나 노출 정사씬을 문제 삼는 매체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에 대해선 전혀 욕을 안 먹는다. 정말 이상하다.


12회까지의 <로드넘버원>은 기가 찰 수준의 반공물이었다. 21세기의 작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런 작품이 나온 것 자체도 어이없고, 이런 작품이 전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현실도 이상하다.


지금까지 <로드넘버원>은 ‘빨갱이’를 적 혹은 악당을 넘어 괴물로까지 그리고 있다. KBS <전우>가 보수성을 의심받았었는데, <로드넘버원>의 황당한 보수성에 비하면 <전우>는 양반이다.


<로드넘버원>은 <전우>에 비해 화면이 아름답고 만듦새도 세련됐다. 마치 트렌디 멜로물을 보는 느낌이다. ‘소간지’에게서는 여전히 빛이 난다. 이런 느낌들이 작품의 보수성을 가리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껍질을 벗기고 보면, 지금까지의 <로드넘버원>은 21세기판 <똘이장군>에 다름 아니다.



- 빨갱이는 민폐, 찌질이, 사이코패스? -


<로드넘버원>에는 초반부터 3대 ‘찌질이’ 캐릭터가 등장했었다. 남측의 윤계상, 손창민, 그리고 남로당원인 김하늘의 오빠다. 이중에서 남측의 두 찌질이는 10회를 넘어서면서 정상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그들은 찌질이 캐릭터였던 당시에도 최소한의 인간성을 잃지 않았었다. 예를 들어 윤계상은 북한군 포로 학살을 반대하는 인도주의적 면모를 보여줬었다. 견위치명하는 용기도 이 남측 찌질이 캐릭터들이 잃지 않은 미덕이었다. 이들이 남측에서 최악의 인물들이었고, 이들과 영웅(소지섭, 최민수)이 벌이는 인간적인 드라마가 12회까지 남측의 이야기였다.


반면에 ‘남한 내부의 빨갱이’인 남로당원 김하늘의 오빠는 인간 이하의 찌질이로 그려졌다. 일단 그는 악당보다도 질이 안 좋은 민폐 캐릭터다. 그가 자꾸만 발목을 잡는 바람에 김하늘의 사랑이 어긋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욱사마’이기도 하다. 툭하면 화를 낸다. 이런 것도 찌질이 캐릭터의 특징이다. 용기도 없다. 국군이 북진을 개시하자 그는 당지도부를 따라 평양을 탈출하려 한다. 출세와 개인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비루한 개릭터다.


인도주의나 측은지심이라고는 깨알만큼도 없는 사이코패스형 캐릭터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영웅 캐릭터와 찌질이 캐릭터를 가르는 기본적인 기준 중의 하나가 인간에 대한 태도다. 영웅은 인간을 목적으로 생각하고 찌질이는 인간을 수단으로 생각한다. 이번 주 <로드넘버원>에서는 남로당원의 사이코패스적 찌질한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났다.


김하늘이 부상당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의 위험까지 무릅쓰는 걸 남로당원인 오빠가 말리는 대목에서였다.


김하늘 “애가 위독하잖아!”

남로당원 “길바닥에서 주워온 애가 니 목숨보다 중요해?”

김하늘 “사람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남로당원 “그래! 대의를 위해 작은 것들은 희생을 필요로 할 때도 있는 거야.”


눈앞에서 아이가 죽어가는 데도 냉정하게 득실을 따지는 저 사이코패스적 태도. 이것은 드라마에서 최악의 인물에게 부여하는 성격이다. 김하늘은 결국 오빠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오빠가 갈수록 무서워. 이 끔찍한 전쟁보다 오빠가 더 무서워졌어.”


무서운 전쟁의 참화보다 (남한의) 빨갱이가 더 끔찍한 존재라는 얘기다. 구도가 정말로 시대착오적인 드라마다. 이런 드라마가 욕을 안 먹는 현실이 무섭다.


남로당원 오빠는 골고루 황당하게 그려진다. 그는 어렸을 때 소지섭이 종이라는 이유로 그의 손을 낫으로 찍어버린 사악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커서는 남로당원이 돼서 인민해방투쟁을 하더니, 다시 소지섭에게는 “인민이 아무리 평등하다고 해도 난 너 같은 종놈은 싫어!”라고 말한다. 도대체 캐릭터의 앞뒤가 없다. 조금만 상식이 있어도 봉건적 차별의식과 남로당의 인민해방투사가 서로 안 맞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로드넘버원>은 빨갱이를 최악의 인물로 그리기 위해 최소한의 논리성마저도 마구 뭉개고 있다.



- 김하늘은 언제나 철조망 안에 -


남로당원뿐만 아니라 북측을 통째로 괴상하게 그린다. 그건 이 작품 속에서 천사 캐릭터인 김하늘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알 수 있다. 북한으로 간 김하늘은 병원에서 일한다.(그녀는 의사) 그런데 <로드넘버원>은 병원에 있는 그녀를 언제나 철조망을 앞에 걸고 보여줬다. 마치 수용소에 갇혀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북한을 하나의 거대한 수용소로 형상화하는 것은 1980년대식 방법이다. <로드넘버원>은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앞뒤가 안 맞는 건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병원이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고, 남로당의 혁명영웅인 오빠와 함께 온 의사 김하늘이 북한 간부의 차가운 억압을 받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북한의 불쌍한 인민인 아이를 만나는데 문에서 만나지 않고 굳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몰래 만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논리성이고 뭐고 북측을 무조건 암울하게 그린 것이다.


북한 자체가 거대한 사이코패스적 공간으로 그려진다. 북측 인사들은 모두 감정이 없다. 인도주의도 당연히 없다. 아이가 굶어죽어가는데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오직 김하늘뿐이다. 김하늘은 아이를 보살펴주는데, 어이없게도 북측 간부의 눈치를 보며 그래야 한다. 굶주린 인민을 무시하는 인민군 장교라는 설정이 말이 되나? 북한 사람들은 무조건 괴물이라는 식이다.


남한 출신으로 북한군에 부역한 청년들은 배은망덕한 비겁자로 그려진다. 최민수, 소지섭, 윤계상 등이 인도주의적 은혜를 베풀어 포로 청년을 풀어주지만 그는 최민수를 저격하는 것으로 은혜를 원수로 갚고, 죽는 순간까지 동향 선배에게 ‘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북측 인물들은 몽땅 차가운 기계이고, 남측 출신 빨갱이는 그보다 더 악질인 괴물로 그려진 드라마인 것이다. <전우>에서조차 북한군이 ‘인간’으로 나온다. 지금까지 방영된 <로드넘버원>은 놀랄 만큼 보수적이다. 2000년대 들어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 보수성을 보여준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정말 이상하다. 왜 욕을 안 먹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