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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문제 관료가 나향욱 한 명뿐일까?

 

교육부가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 공고화파문의 주인공인 나향욱 교육기획정책관의 파면요청을 결정했다. 현명한 결정이다. 교육부는 가치를 다루는 곳이다. 공화국의 헌법적 가치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시민을 길러내는 일을 관장하는 곳이 바로 교육부다. 그런 곳의 관료가 반헌법적 반공화국적 가치관을 가졌다면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 된다.

 

또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아무리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더라도 교육을 통해 개천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공화국 교육의 정신이다. 그런데 나 국장은 이미 양극화가 많이 벌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차라리 신분제 같은 체제로 가는 게 낫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효율성을 따지는 경제부처도 아니고 교육부 관료가 그래선 절대로 안 된다. 교육부는 양극화 현실을 보며 더욱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결의를 다져야 하는 부처다. 교육부가 지켜야 할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이었다.

 

나 국장의 반성과 사죄에도 의혹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반성의 시작이다. 그런데 그는 국회에 출석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신분제 공고화 운운하지 않았고, ‘개돼지발언은 영화 <내부자들> 대사를 인용한 것으로 본심이 아니라고 했다. 이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그의 개돼지발언은 <내부자들> 속의 맥락과 달랐다. <내부자들>에선 쉽게 잊는 국민의 냄비기질을 빗댄 대사였는데, 나 국장은 신분제적 맥락으로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건 영화의 의미가 아닌, 나 국장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 중에 영화 대사를 일부 첨가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정말로 신분제 공고화 운운하지 않았다면 그의 말을 전한 매체가 악질적인 음해성 보도를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 국장이 자신의 해명을 믿는다면 해당 매체에 초강경 대응을 해야 맞다. 그러지 않고 위축된 자세로 해명과 사죄를 했다는 건 그 자체로 해명의 신빙성이 떨어뜨리는 일이다. 심지어 문제의 사건이 있은 후 나 국장이 함께 대화한 기자들이 근무하는 매체에 사과방문을 하기도 했다고 하니, 더욱 해명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 국장의 반성과 사죄가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진짜 문제는 국민의 실망과 불신이 나 국장 한 명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자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무심코 그런 발언을 했다는 건, 평소에 나 국장이 엘리트주의적 확신을 가졌던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는다. 그런데 그는 교육부 관료 사회에서 승승장구하며 커리어를 이어왔다. 그렇다면 교육부에 모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단 말인가? 서민을 무시하는 엘리트주의가 교육부의 기본 문화일까? 그래서 지금까지 교육정책이 파행이었나? 이런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제의 발언이 있었던 자리에 교육부의 다른 관료들도 있었다. 문제점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사태 초기에 진상파악 운운하며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이번 일은 너무나 중대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대처법은 둘 중의 하나밖에 없었다. 진실이면 중징계, 거짓 보도면 해당 매체에 강력 대처다. 교육부는 초기에 둘 다 하지 않았다. 이러니까 초록은 동색으로 서로 덮어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시대착오적 엘리트 의식을 가진 고위 관료가 나 국장 한 명뿐일까? 나 국장이 순진(?)해서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말했을 뿐, 많은 고위 관료가 국민을 아래로 내려다보면서 생각을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이 만연하면 사회적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부부터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서 국민의 불신을 씻어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닌 공직사회 전체에 대한 경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