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미운 우리 새끼’가 금요일 밤에서 일요일 밤으로 방영시간을 옮긴 후 대박을 터뜨렸다. 개편 직전에 10%였던 시청률이 3주 연속 18%를 돌파하며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심지어 개편 4주차인 지난 주말엔 2부 시청률 21.3%로 마의 20%선을 넘었고, 순간 최고는 29.3%까지 치솟았다.
‘미운 우리 새끼’는 혼자 사는 남자 연예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거기에, 각 출연자의 어머니들이 둘러앉아 자식들의 생활 동영상을 지켜본다는 설정이 더해졌다. 어머니들이 아들의 궁상맞은 모습에 안타까워하거나, 어이없는 행동에 ‘쯧쯧쯔 쟤가 왜 저래’하며 혀를 차는 광경에 시청자들이 빠져들었다.
미혼 1인가구가 폭증하는 시대다. 그런 자식에 안타까워하는 부모들도 당연히 늘어간다. 요즘은 또 ‘키덜트’ 시대라서, 나이를 먹었어도 아이 같은 취미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없이 친구들이나 만나서 애들처럼 노는 모습이 부모에겐 걱정이다. 다 키워 줬는데도 제 앞가림 못하는 ‘미운 새끼’를 둔 사람들. 프로그램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그런데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연예인 생활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 순간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그들의 화려함과 나의 삶이 대비되기 때문이다. ‘미운 우리 새끼’는 출연자들을 궁상맞고 짠한 독거남으로 그리는데 사실 그들은 비싼 집에 넉넉한 취미생활까지 즐기는 부유층이다. 그래서 시청자 입장에선 감정이입이 어느 선을 넘기가 어려웠다.
이 선을 넘긴 신의 한 수가 바로 개편과 함께 투입된 이상민이다. 이상민은 한때 90년대 최고 댄스그룹인 룰라의 리더였고, 요즘으로 치면 박진영 부럽지 않은 기획사 대표이기도 했다. 청담동 땅을 사라는 조언에, ‘사업에 투자하면 현금이 쏟아지는데 땅은 사서 뭐하냐‘고 할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여자 스타와 결혼도 했다. 그야말로 화려한 청춘이었다.
그랬던 그가 망했다. 사업부도에, 개인재산도 모두 넘어가고, 빚이 70여억 원에 달했다. 불미스런 일로 연예활동도 정지됐다. 이혼까지 했다. 공황장애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졌다.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 방송을 재개한 그는 요즘 버는 족족 빚을 갚으며 산다. 모든 수입을 일단 채권자에게 입금한 후 약간의 생활비를 돌려받는 것이다. 프로그램이 억지로 불쌍하게 그리지 않아도, ‘리얼’로 힘든 처지.
그가 포장 이사 비용을 아끼려 손수 이삿짐을 싸고, 임대료를 줄이려 채권자 아파트의 일부분에 세입자로 들어가 직접 바닥 공사를 하며 돈 아꼈다고 좋아할 때 시청률이 치솟았다. 순간 최고 29.3%를 찍은 장면은 바로 이상민과 채권자의 만남이었다. 채권자 앞에서, 빚을 갚으며 살아온 12년 세월을 회고할 때 이상민의 어머니와 시청자가 함께 눈물지었다. 몇 천 원짜리 신발을 신으면서 한정판 명품 신발을 자랑하고, 최고의 맛을 추구한다며 라면에 한우를 넣는 등 궁상 속에서도 허세를 떠는 ‘웃픈’ 모습은 시청자에게 웃음도 준다. 공감, 눈물, 웃음 등 모든 재미 코드를 장착한 것이다.
부모 걱정시키는 생후 525개월 ‘미운 새끼’ 끝판왕으로, 궁상왕에 등극한 이상민. 바로 그를 보며 시청자들이 팍팍한 세상살이 속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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