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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추리의 여왕, 뽕끼 깔린 한국형 장르물

 

KBS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은 주부가 경찰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간다는 내용이다. 최강희가 추리 능력자 가정주부인 설옥으로, 권상우가 하완승형사로 등장한다. 하완승은 경찰의 직감을 우선으로 하는 열혈 형사인데, 처음엔 주부의 능력을 무시하지만 이내 설옥을 인정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사건을 풀어나가는 장르물인데 최근 전반적으로 무거웠던 장르물 분위기에 비해 경쾌하다. 권력형 사건이나 대형 강력사건이 아닌 동네의 자잘한 사건들이 초중반에 다뤄졌고, 두 남녀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면서 일을 풀어나가는 모습이 곁들여졌다. 소소한 일상의 추리가 주는 재미 속에서 주인공들의 관계가 은근히 로맨틱한 달달함까지 느끼게 하는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신파적인 설정을 깔았다.

 

설옥은 가정주부 중에서도 무려 시집살이(!)를 하는 가정주부다. 잔소리를 일삼는 시어머니로도 모자라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시누이까지 모시고 산다. 남편은 하늘같은 검사님으로, 시어머니의 자랑이다. 당연히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남편을 떠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고난의 시집살이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설옥은 남편 고시공부 뒷받침하느라 대학도 못 간 처지이기 때문에, 남편의 성공에 지분이 있지만 시댁에선 그런 공을 인정 안 한다. 그저 검사 남편의 은혜를 받은 고졸 며느리일 뿐이다.

옛날 신파 드라마 같은 설정인 것이다.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며느리 설움 이야기가 한 바탕 펼쳐질 것만 같다. 요즘 미니시리즈에선 이런 설정을 보기 힘들다. 현실에서도 이렇게까지 시집살이를 하는 젊은 며느리는 별로 없다. 그런데도 추리의 여왕이 신파적 며느리 설정을 한 건, 바로 주부들의 감정이입을 노린 전략일 것이다.

 

모든 주부는 며느리에 감정이입하게 마련이다. 심지어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드라마를 볼 때는 자신을 며느리와 동일시한다. 한국의 가부장적인 구조 속에서 여성들에겐 기본적으로 피해자 정서가 있다. 며느리 설움은 그래서 한국 여성들에게 보편적인 공감을 준다. 1970년대에 아씨가 국민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다. ‘아씨는 지체 높은 집안으로 시집 간 며느리가 남편의 외도 속에서도 시부모를 섬기는 내용이었다. 인내와 순종으로 끝없는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아씨에게서 주부들은 자기자신의 모습을 봤다.

추리의 여왕에선 설옥이 시누이의 목숨을 구해주는 등 시댁 가족을 위해 헌신하면서도 전혀 존중 받지 못한 채 집안일에 매달릴 것을 요구받는다. ‘아씨처럼 지체 높은 남편이 바람피는 것 같은 설정도 중간에 등장했다. 하지만 눈물콧물 짜는 전통 신파는 아니고, 경쾌한 분위기에 범죄 수사를 더한 개량형이다.

가요계에서 한국적인 음색을 뽕끼라고 하는데, ‘추리의 여왕은 드라마판 뽕끼를 깔았다고 할 수 있다. 현대적인 분위기 같으면서도 은근히 며느리 설움 아줌마 설움 코드가 깔린 것이다. 그렇게 일체감을 형성한 다음, 고졸 아줌마로 무시당하던 설옥이 가장 지적이라는 프로파일러로 인정받는 모습을 통해 주부들이 대리만족하도록 이끈다. ‘그래, 내가 비록 집안일에 매인 아줌마이지만 기회만 있다면 나도 인정을 받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추리의 여왕은 주부 로망 판타지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형 장르물의 또다른 형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