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가 결국 대형 멀티플렉스 상영불가로 결정이 났다. CGV, 메가박스에 이어 롯데시네마까지 보이콧에 동참하면서 국내 스크린의 90% 이상이 ‘옥자’를 거부하게 된 것이다.
‘옥자’의 제작사인 미국 넷플릭스가 극장 개봉과 인터넷 상영을 동시에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기존 영화들은 극장 개봉 후에 IPTV 등 다른 창구로 넘어갔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넘어가면서 각각의 창구가 운영되고, 콘텐츠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그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게 극장주들의 주장이다.
넷플릭스의 태도도 문제다. 개봉일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것이다. 1년 중 최대 성수기인 여름시장이 문을 여는 시점이라 다른 대작들과 상영일정관리를 해야 하는 판에, 넷플릭스가 이렇다 할 협의도 없이 개봉일을 통보한 것에 휘둘릴 수 없다는 게 극장주들 입장이다.
기존 업계에게 낯선 타자이며 신참자인 넷플릭스가 엄청난 대작을 들고 나타나 업계를 흔드는 것에 대한 불쾌감과 불안감이 보이콧으로 표출된 상황이다. 넷플릭스 등 신참자의 습격이 이번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상황을 염두에 둔 기싸움의 측면도 있다. ‘옥자’를 본보기로 삼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극장들의 상영 거부가 넷플릭스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의 궁극적인 목적은 ‘옥자’의 극장 개봉이 아니라 자신들 업체의 홍보와 가입자 유치다. 극장주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바람에 큰 이슈로 비화했고, 이것은 고스란히 넷플릭스의 홍보 효과로 이어졌다.
거의 전 지구적 홍보다. 일단 칸영화제에서 프랑스 극장주들이 ‘옥자’ 등 넷플릭스 제작 영화에 반발해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그후 봉준호 감독의 모국인 한국에서 극장주 보이콧이 일어나며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됐고, 이 소식을 미국 매체들이 전하면서 미국에서 한번 더 홍보가 됐다. 영화 한 편 제작으로 엄청난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극장주들이 넷플릭스를 도와줬다.
반면에 우리 극장주들에겐 별다른 소득이 없다. 관객들이 우리 극장주들을 질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기업 멀티플렉스야말로 스크린을 독과점하며 영화 생태계를 위협하는 주범인데, 그들이 생태계 운운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난이다.
메시지가 아무리 좋아도 메신저의 신뢰성이 떨어지면 공감을 얻지 못한다. 국무위원 인사 청문회장에서 아무리 도덕적인 질타를 가해도, 그 말을 한 사람이 기득권 국회의원일 때 네티즌이 실소를 머금게 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대기업 멀티플렉스는 왜 자신들이 우리 관객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지 이번 일을 계기로 고민해봐야 한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위협은 멀티플렉스 측의 엄살만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회사다. 미국 최대 대여점 체인이었던 블록버스터에서 비디오를 빌렸다 연체료 폭탄을 맞은 리드 헤이스팅스가 연체료를 없애겠다며 만들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블록버스터를 파산시켰다. 넷플릭스의 경쟁력은 빅데이터 분석이다. 회원의 취향을 분석해 그에 맞는 추천작을 제시한다. 넷플릭스가 제시하는 추천작을 소비자가 볼 가능성이 75%에 달한다. ‘넷플릭스는 당신보다 당신 자신을 더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넷플릭스의 자신감이다.
미국에서도 넷플릭스 보이콧 등 잡음이 있었지만 넷플릭스의 성장을 막지 못했다. 미국 증시를 이끄는 첨단산업주들인 'FANG'은 페이스북(Facebook), 아마존(Amazon), 넷플릭스(Netflix), 구글(Google)을 의미한다. 넷플릭스가 세계 최고 IT주 반열에 오른 것이다.
넷플릭스는 단순히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는 데서 벗어나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도 빅데이터 분석이 들어간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제작했고 드라마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후 자체 제작을 확대하는 가운데 한국의 봉준호 감독 작품까지 제작하게 된 것이다. ‘옥자’의 제작비는 약 600억 원으로 우리로선 상상도 못할 거액이지만, 넷플릭스 제작 예산 약 6조 원의 1%에 불과하다. 넷플릭스는 한국 드라마까지 제작할 예정이다. 미국의 대형 IT기업들이 영상 플랫폼, 콘텐츠 격전에 속속 참전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이러니 불안한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인터넷 동영상이 발전해도 극장을 위협하진 못할 것이다. 극장의 크기 자체가 압도적인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기존 제작사들만이 아닌 다양한 신기술 업체가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기 시작하면 일선 제작사 입장에선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여러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기술발전은 언제나 기존 구조를 변화시켰고 그때마다 인류는 저항했지만 딱히 성공적이진 않았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정보통신혁명이 인간 사회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중이다. 영상업계도 예외일 순 없다. 이번 ‘옥자’ 보이콧 사태는 그런 변화에 대비해 우리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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