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이하 군주’)는 큰 관심을 받으며 시작됐다. 제목부터가 군주였다. 대선 국면과 맞물려 이상적인 지도자의 리더십을 그려나갈 거란 기대였다. 과거 선덕여왕이 덕만과 미실의 권력투쟁을 통해 올바른 리더십에 대한 화두를 던져 호평 받았다. 그 후엔 뿌리 깊은 나무가 세종과 밀본의 투쟁을 통해 리더십을 그렸다. ‘군주가 그 맥을 이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군주는 물을 장악한 세력에 맞서는 세자의 이야기다. 조선 시대 청계천 주변엔 건기에도 마르지 않는 몇 개의 샘터가 있었는데, 각각 소유주가 있어 철저히 관리됐다고 한다. 작가는 이것을 실마리로 조선의 물을 장악한 편수회라는 조직을 상상했다. 대목을 우두머리로 하는 편수회가 물을 장악하고 정치권을 좌지우지하자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세자(유승호)는 이에 목숨 걸고 맞서며 애민군주로 성장해간다.

 

이것은 상당히 현재적인 의미가 있는 설정이다. 현대의 이슈인 민영화 논란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는 독점재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제작진은 기획의도에서 절대 돈의 가치로 다뤄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라고 했다. 드라마가 그런 가치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 또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을 얼마나 박진감 있게 그리는가에 따라 명작이 탄생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기대를 받았던 것인데,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처음엔 편수회와 왕의 투쟁이 전면에 등장하며 무난하게 출발했다. 왕도 절대 선인이 아니라, 선대왕을 시해한 역적이지만 동시에 편수회의 발호를 억제해 국가기강을 바로 세우려는 의인이기도 하다는 입체적 설정이었다. 이렇게 복합적인 캐릭터의 등장은 극의 품격을 높인다. 왕이 죽은 후 도피한 세자가 일반 민초의 자리에서 권력을 키워나가며 투쟁을 준비하는 지점까지는 애초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이 등장했다. 바로 사랑이다. 세자는 사랑밖엔 난 몰라라며 사랑꾼으로 변신했다. 백성이나 국가에 대한 사랑이면 괜찮다. 하지만 세자의 사랑은 한 여인만을 향했다. 왕울 죽이고, 대신들을 중독시켜 허수아비로 만들고, 물 한 동이 훔쳤다고 백성을 때려죽이는 편수회를 놔두고 한 여인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 편수회가 여인을 인질로 잡자 제 발로 들어가 독을 마신 것이다. 여기서 세자의 대의가 무너졌다. 세자에게 백성과 국가란 한 여인만도 못한 존재였다. 주인공인 세자의 대의가 무너지자 극의 의미도 함께 무너졌다.

세자만 사랑꾼이 아니다. 세자 대신 새로운 왕이 된 가짜 왕도 세자의 여인에게 목숨을 건다. 편수회 수장의 딸은 세자에게 목숨을 건다. 4각 사랑꾼 대폭발이다. 이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권력투쟁은 소꿉놀이로 전락했다. 편수회의 핵심 무기는 치밀한 전략의 세자가 아니라, 세자를 사랑한 수장의 딸이 제 손으로 없앴다. 세자는 이렇다 할 역할 없이, 그저 특이체질 덕분에 독을 마시고도 살아나 군주가 될 판이다. 한때나마 군주에 쏟아졌던 기대는 코미디가 돼버렸다. ‘해를 품은 달이나 성균관 스캔들처럼 제목을 지었으면 이런 혼선이 없었을 것이다. 제목을 군주로 했기 때문에 기대와 내용의 불일치가 생겨버렸다. ‘군주가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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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