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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신해철, 그는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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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이 신해철 1주기 특집으로 진행됐다. 그가 남긴 노래를 후배들이 부를 때 유가족과 관객이 함께 눈물 흘렸다. 시청자 중에서도 눈물 흘리며 TV를 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신해철의 작품들이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 명곡인지 다시금 확인시켜준 자리였다.

 

신해철은 단지 인기곡을 많이 남긴 스타 가수에 그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한국 가요사에 전무했으며, 어쩌면 불행히도 후무할 것으로 예측되는 독보적 뮤지션이었다. 사랑타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주류 가요계에서 그는 보기 드문 성찰적 가사를 선보였다. 이번 <불후의 명곡>에서 불린 노래들만 봐도 그렇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민물장어의 꿈>의 도입부다.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 참 자아를 찾으려는 열망을 담았다. 노래에 이런 뜻을 담는 뮤지션이 물론 많겠지만, 신해철은 주류 스타라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주류 가요계에선 이런 성찰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데뷔 시절부터 삶의 의미에 천착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홀로 걸어가네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1989 -

 

이렇게 사색적인 청춘 스타가 나타난 것도 기적이고, 그런 사람이 스타로 받아들여진 시대도 기적이었다. 물론 그가 만약 화려한 스타의 길을 걸으며 가사만 이런 식으로 썼다면, 단순한 식자의 겉멋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신해철은 자신의 인생으로 진정성을 증명했다.

 

그는 대학가요제 스타로 화려하게 데뷔한 후, 꽃미남 청춘 가수 컨셉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안녕>,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재즈카페> 등 엄청난 히트곡이 쏟아졌으며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동시에 받는 보기 드문 성취를 이뤘다. 이 컨셉 그대로 활동했으면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대스타의 길을 편하게 갔을 것이다.

 

신해철은 그 비단길을 버리고 가시밭길로 들어섰다. 넥스트라는 밴드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 밴드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밴드는 경제적 궁핍과 동의어라고 보면 된다. 그는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나마 대중적인 록발라드 류로 타협하지도 않았다. <그대에게>처럼 행사곡으로 사랑받을 신나는 노래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무겁고 성찰적인 록음악을 거침없이 시도했고, 난해한 프로그레시브 록에 성찰적 가사를 얹어 전대미문의 경지로 나아갔다. 한편으론 폭 넓은 음악적 실험을 주저하지 않아 한국에서 일렉트로닉 장르를 선취하기도 했다.

 

 

신해철이 독보적인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활동을 하면서도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서태지 혁명은 댄스, 흑인음악, 록음악 등으로 이뤄졌는데 이후 댄스와 흑인음악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신해철은 서태지 혁명 중에서 비대중적인 부문인 록음악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90년대 한국 대중음악 르네상스의 한 축을 이뤄냈다. 신해철이라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90년대는 훨씬 가난했을 것이다.

 

그는 사랑 받는 스타가 아닌 시대와 불화하는 길을 선택했다. 연예인의 사회적 발언이 인기에 치명타란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파열음을 냈다. 그런 그에게 악플은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다. 그가 했던 발언들에 대한 동의여부와 별개로, 온몸으로 시대를 살아내고 그 치열함을 음악에 담아낸 뮤지션의 존재에 대해선 그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 주류 가요계에 워낙 희귀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천경자 화백은 남들이 좋아할 만한 보기 좋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 설사 보기 부담스러운 그림이라 할지라도 끊임없이 자신만의 길을 성찰하며 화풍을 개척해온 것에 자부를 가진다고 했다. 바로 신해철도 그런 예술의 고투를 견뎌낸 사람이다. 천경자 화백도 신해철도, ‘홀로 걸어간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존재가 희귀하기 때문에 그가 감당하고 있는 한국 가요계의 지평이 너무나 소중하다.

 

음악적 실험으로나 가사에 담긴 성찰적 의미로나, 우리 주류 가요계에 신해철이란 사람이 실재했다는 건 정말 믿기 어려운 기적이다. 5~9인조 아이돌 천하가 돼버린 이 신한류시대에 돌이켜보면 더욱 그렇다. 신해철 같은 뮤지션이 한국 주류 가요계에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사람을 스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풍성한 시대가 우리에게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비관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신해철의 빈 자리가 크고, 90년대가 아련하게 다가온다. 부디 신해철의 다양한 음악들을 방송사들이 더욱 많이 조명해주길 바란다. 그래야 후배들이 요즘 인기가요에선 받을 수 없는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신해철이 전무만 하고 후무한 존재는 되지 않도록,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의 치열함이 뒤를 잇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