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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MBC 강호동은 당연하고 SBS는 유재석이 당연하다



아고라에서 MBC연예대상에 항의하는 청원들이 진행중이다. 유재석이 아닌 강호동에게 대상이 간 것에 승복을 못하는 것 같다. 강호동 수상이 그렇게 놀라운 사건이었을까?

중요한 건 임팩트다. 뭐니 뭐니 해도 세상만사 한 방인 것이다. 옳건 그르건 그게 인간이라는 동물의 심리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도 청계천 한 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경제개발 한 방 때문에 그렇게 오래 간다. 물론 한 방도 한 방 나름이다. 청계천에 이은 대운하 한 방은 약발이 안 먹히고 있다. 만약 대운하 사업이 경부고속도로만큼 성공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에겐 불후의 한 방이 될 것이지만, 현재로선 암울해보인다.


어쨌든, 한 방이다. 성공적인 한 방.


로또가 한 때 엄청난 열풍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다. 한 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홀할 정도의 당첨금이 전 국민을 들뜨게 했다. 당첨확률같은 건 중요치 않다. 그 액수를 잘게 나눠 확률을 높이면 오히려 대중의 관심은 식는다. 한 방에 해당하는 액수일 때 인간은 열광한다.


그래서 성실한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한다. 이승엽이 국제대회에서 한 방에 영웅이 될 때, 꾸준히 타율을 올렸던 사람들은 그늘에 가렸다. 야구에서 스타가 되는 건 한 방이 있는 타자, 4번타자다. 타율왕보다는 홈런왕이 뜬다. 타율은 SES가 더 높았지만 홈런은 핑클이 쳤다. 그래서 핑클이 더 강렬하게 기억된다. 인간세상이 그렇다.


- MBC, KBS 강호동의 한 방 -


MBC에서 강호동은 <무릎팍도사>라는 한 방을 날렸다. <무한도전>도 한 방은 한 방이지만 임팩트가 약했다. <무한도전>은 올해 타율은 유지했지만 홈런을 못 날렸다. 작년에 이어 올해 또 대상을 받으려면 지난 번의 것을 훨씬 뛰어넘는 강렬한 충격을 줬어야 했다. 투수로 치면 퍼펙트게임이나 최소한 노히트노런 정도. 하지만 올해 <무한도전>는 선방한 정도다. 승리투수는 승리투수지만 ‘끝내주지는’ 못했다는 느낌이랄까.


유재석에겐 <놀러와>도 있었지만 이건 로또 당첨금의 원리와 같은 거다. <무한도전>+<놀러와>의 산술적 합이 <무릎팍도사>보다 크다고 해도, 심리적으로는 한 방보다 존재감이 작게 느껴진다.


게다가 유재석은 이미 두 번이나 MBC에서 대상을 받았기 때문에 올해의 연이은 선방은 대상이 아닌 공로상에 어울리는 성격이 됐다. 두 번을 뛰어넘어 세 번째 수상이라는 신천지를 개척하려면 한계선을 파괴할 만한 강렬한 힘이 필요했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임팩트는 없었다.


<무릎팍도사>의 임팩트는 시청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 토크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한 것이 그 파괴력의 근원이다. 위상뿐만 아니라 포맷도 신천지다. 과거식 토크쇼와는 전혀 다른 강호동만의 토크쇼다. 이렇게 새 장을 여는 사람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MBC 연예대상이 강호동에게 가는 것은 당연하다.


KBS에서 강호동은 <1박2일>이라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한 방을 날렸다. 이것은 관심이 집중되는 주말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거둔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군다나 MBC와 SBS의 주말 리얼 버라이어티를 모두 유재석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KBS에서 강호동의 입지는 특별하다.


유재석의 <해피투게더>는 3할대 이상의 타율로 팀을 이끌었지만, <1박2일>만큼의 홈런타자는 아니었다. 또 <무릎팍도사>처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만한 무언가를 개척한 것도 아니다. 주말예능이라는 격전지에서 MBC, SBS의 유재석에게 버금가는 홈런을 친 강호동을 다시 유재석이 누르기엔 임팩트가 약했다. 그러므로 KBS 연예대상이 강호동에게 가는 것도 당연하다.


이건 강호동이 유재석보다 더 능력이 뛰어나서가 결코 아니다. 구도가 묘하게 이렇게 짜여졌다. 예로부터 운이 좋은 장수를 이길 자는 없다고 했다. 올해엔 강호동이 운이 좋았다.


- SBS 연예대상은 유재석에게 가야 한다 -


유재석은 SBS에서 한 방을 날렸다. 여기선 거꾸로다. 공헌도의 산술적인 합은 강호동이 더 높다고도 할 수 있다. 강호동은 SBS에서 <스타킹>과 <예능선수촌>을 이끌었다. <스타킹>은 <무한도전>을 8부능선까지 추격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또 <예능선수촌>은 주중에 선방하고 있다.


그러나 한 방이 없다. <스타킹>이 만약 <무한도전>을 훨씬 큰 차이로 눌렀다면 얘기가 또 달라질 수 있다. 근소한 차이로 앞선 수준이라면 <스타킹>은 <무한도전>보다 존재감이 약한 데다, 근소하게라도 앞서지도 못했다. 선방한 정도로는 임팩트가 없다.


<예능선수촌>은 시청률이 지금보다 조금 더 잘 나왔다 하더라도 <무릎팍도사>보다 존재감이 약한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자체도 그렇고 프로그램 내부적으로도 그렇다. <무릎팍도사> 내부에서 강호동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예능선수촌>에선 그렇지 않고, <스타킹> 내부에선 더더욱이나 강호동은 임팩트 없는 존재다.


반면에 <패밀리가 떴다>는 강렬하다. 그 프로그램 내부에서의 유재석의 존재감도 강렬하다. 이중의 임팩트다. <패밀리가 떴다>는 주말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SBS의 숙원을 풀게 한 프로그램이다. 유재석은 SBS에서 <일요일이 좋다 - 옛날TV>, <일요일이 좋다 - 기적의 승부사>를 패퇴시킨 끝에 절치부심 기어이 <패밀리가 떴다>를 성공시켰다. 역전 만루홈런이다. 막판에 터진 이승엽의 한 방과 비슷하다. SBS 입장에선 ‘2008년의 한 방 + 누적 공헌도‘까지 따져서 유재석에게 대상에다 감투상까지 얹어 줘야 할 상황이다.


<무한도전>을 이기지 못하는 것도 SBS의 한이지만 그것을 추격한 <스타킹>의 선방은 이미 말했듯이 <패밀리가 떴다>에 비하면 훨씬 존재감이 약하다. 만약 이경규가 <라인업>을 성공시켰다면 SBS 입장에선 유재석과 이경규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동수상도 무리는 아닌 구도다. 그러나 <패밀리가 떴다>만 우뚝 섰다. 그러므로 SBS 연예대상은 유재석에게 가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은 ‘예측’이 아니다. 세상사의 이치에 비추어 볼 때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시상식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으므로 예측은 무의미하다. 다만 유재석, 강호동의 능력과 상관없이 올해 MBC, KBS, SBS 예능의 지형이 이렇게 형성됐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강호동 그랜드슬램 운운하는 기사가 나오던데 그건 안 될 말이다. 만약 그것이 현실화되면 강호동에게 엄청난 안티가 생기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활동도 크게 제약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