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 영상 칼럼

막장드라마에 반드시 있는 것들

 



1. 멋진 왕자님과의 로맨스


 요즘의 막장드라마는 1차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이고, 도식적이고, 후안무치한 통속 오락물이다. 주요 시청자들은 여성이다. 말하자면 여성을 위한 ‘욕망충족기계’이며 ‘오감자극기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이 욕망하는 궁극적인 대상이 제시된다. 바로 남자다.


 남자도 보통 남자여선 안 된다. ‘극단적이고, 자극적이고, 도식적인’ 왕자님 캐릭터가 ‘후안무치’하게 노골적으로 등장해야 한다. <조강지처 클럽>에서 오현경의 새 남자였던 이상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이상우의 극중 이름은 ‘구세주’였다. 이혼녀에게 어느 날 다가온 ‘꽃미남 총각 구세주’.


 막장드라마는 대체로 주부 대상의 결혼생활 관련물이다. 그러므로 ‘아줌마’들이 전면에 등장하는데, ‘구세주 왕자님 캐릭터’는 그 아줌마들을 마치 처녀처럼 대하며 지고지순한 로맨스를 나눈다. 요즘엔 <아내의 유혹>의 민건우다. 그가 구은재(장서희)에게 바치는 사랑은 눈물겹다.


 꽃미남, 매너, 능력, 몸매, 부자, 체력이 이 구세주 캐릭터들의 공통점이다. 마님을 위한 변강쇠 하인 캐릭터에서 진일보한, 보다 판타지에 가까워진 아줌마용 캐릭터다. 철저히 남성을 위해 등장하는 <007> 본드걸의 아줌마용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쾌락만을 위한 본드걸에 비해 막장드라마의 왕자님은 결혼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섹스어필보다 로맨스가 더 강해졌다.


 이것은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섹스보다 로맨스를 더 갈구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흔히 아줌마를 제3의 성이라고 한다.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 섹스보다는 로맨스가 아줌마를 보다 더 여성으로 느끼게 한다. 즉, 왕자님 캐릭터는 여성이고자 하는 한국 아줌마의 욕망을 반영한다.


 막장드라마의 처녀-하이틴 버전이 <꽃보다 남자>다. 여기에선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남학생-남자‘, 구준표가 등장한다. 막장드라마답게 노골적으로 자신이 왕자님이라고 드러내놓고 다닌다. 그런 왕자님이 ‘보통 여학생-여자’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한다. 구준표의 세 친구는 덤이다. 막장의 세계엔 왕자님이 그득하다.


2. 백조가 된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


 아줌마의 욕망은 남성을 통해서만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멋진 왕자님을 얻으며, 동시에 자기 자신도 멋지게 변신해야 한다. 특히, 자기가 변신한 모습을 그동안 자기를 구박했던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꼭 보여줘서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이 많이 하는 상상이다. 지금 나를 무시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해줘야지. 내가 멋지게 변하면 날 무시했던 사람들이 모두 후회하겠지? 이런 식의 아이같은 상상. 시청자의 1차원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막장드라마는 이런 상상을 유감없이 200% 그려낸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정말 놀랍게도, 누가 봐도 촌티가 줄줄 흐르던, 사회활동 능력도 없던, 무시와 구박만 받던 순해빠진 아줌마가 어느 순간 화사한 캐리어우먼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성격도 갑자기 똑떨어진 앙칼녀로 변한다. 만인이 우러르는 능력에, 외모를 갖추고 남한테 한 마디도 안지고 또박또박 말대답하는, 특히 전 남편과 전 시어머니에게 눈 똑바로 뜨고 쏘아대는 앙칼녀로 말이다.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는 이 변신이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구느님’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러자 전 남편은 이 변신한 전 부인에게 쩔쩔 매고, 전 시어머니는 전전긍긍한다. 특히 전 남편의 새 부인은 나의 변신한 모습 앞에 처절하도록 초라해진다. 아줌마들의 통쾌한 상상!


3. 나쁜 엄마, 나쁜 남편, 나쁜 사람


 막장 드라마는 복잡하거나 우아해선 안 된다. 철저하게 1차원적인 구조에 극단적인 대립이 생명이다. 그러기 위해선 악당이 확실히 나빠야 한다. 미묘한 캐릭터는 막장 드라마에 금물이다. 주인공의 독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악당은 확실히 악해야 한다.


 주인공이 대체로 여성이기 때문에 나쁜 역할은 남편과 시어머니의 몫이다. <조강지처 클럽>에서 남편의 이름은 ‘한원수’였다. 원수같은 남편. <아내의 유혹>에선 원수같으면서도 찌질한 남편이 나온다.


 시어머니가 가장 큰 희생양이다. <조강지처 클럽>에서 나화신의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잘못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들을 위해 그녀를 내친다. <아내의 유혹>에 나오는 시어머니는 비현실적인 만큼 뻔뻔하다. <너는 내 운명>에서 새벽이 시어머니도 악명 높았다. 그 외 주부 대상 통속극에서 수많은 중견 여배우들이 악랄한 시어머니로 이름을 떨쳤다. 박원숙, 장미희 등이 대표적이다.


 꼭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아니더라도, 정말 나쁜 사람이 등장해 극단적인 구도를 형성한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캐릭터는 <에덴의 동쪽>의 신태환과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다. 악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들이며, 이들의 트레이드 마크는 ‘고함’이다. 그래야 시청자의 오감을 자극할 수 있으니까. 이들의 악행에 비하면 <꽃보다 남자>에 나오는 왕따, 납치, 집단폭력 등은 애교로 느껴진다.


4. 복수와 권선징악. 선은 승리한다? 아니, 내가 승리한다!


 <에덴의 동쪽>이 복수 부문으로 특화된 작품이다. 대체로 주인공을 괴롭히던 사람들은 처절히 몰락한다. 새벽이를 구박하던 시어머니는 백혈병이라는 도식적인 방법으로 응징 받았다. <조강지처 클럽>의 한원수는 빈털터리에 실직자 신세가 됐다. 요즘은 <아내의 유혹>에서 응징절차가 진행중인데, 얼마 전엔 결국 신애리가 불치병에 걸리게 될 거라는 보도까지도 나왔었다.


 과거의 복수는 선과 악의 대립에서 선이 승리하는 구도였다. 요즘엔 악이 몰락하는 것은 맞는데, 그것이 꼭 선이 승리하는 것인지가 애매해졌다. ‘우리 편’도 상당히 악랄한 술수를 쓰기 때문이다. <아내의 유혹>은 공공연히 ‘악 대 악’의 구도를 표방한다. 그래야 대립이 더 극단적이고 자극적이 된다.


 어차피 1차원적인 판타지이므로, 모든 욕망을 다 표현한다는 차원에서도 주인공은 악랄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인공은 바로 ‘나’이므로 무슨 수단을 쓰든 용서가 된다. 내가 변신해, 내가 승리한다는 판타지다.


5. 상상초월


 이 판타지를 자극적으로 그리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설정들이 전개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바람둥이 집안, 상상을 초월하는 부잣집, 상상을 초월하는 치정극, 상상초월의 독기 등이다. 소소한 불륜이나 출생의 비밀, 폭언 등은 일상으로 깔린다.


 <에덴의 동쪽>, <너는 내 운명>, <꽃보다 남자> 등에선 작품 완성도나 배우 연기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었다. ‘발연기’란 유행어도 나왔다. 하지만 이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설정 때문이란 지적이 제기됐었다. 그런 설정을 잘 표현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는 얘기. 그런 지적에 동의할 순 없지만, 그런 평자들이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설정들이 쏟아지는 것이 막장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