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 영상 칼럼

남자이야기 김강우, 소름끼치는 놈을 그려냈다

 

<남자이야기> 지난 주의 주제가 박용하의 이야기였다면, 이번 주의 주제는 김강우였다. 극중에서 악역인 채도우의 이야기가 이번 주 3회에서 전면에 부각된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김강우가 드디어 몸을 일으킨 셈이다. 지난 번 박용하의 이야기가 박용하 개인이 아닌 박용하를 둘러싼 상황, 특히 쓰레기만두의 기막힌 상황에 의해 부각된 측면이 있다면, 이번 김강우의 이야기는 온전히 김강우 자신의 힘으로 생동감을 만들어냈다. 뭐랄까, 그전까지 평면이었던 화면이 김강우가 몸을 일으킨 순간 입체로 변했다고나 할까?


이 드라마에서 김강우는 ‘또라이 악당’을 연기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사이코패스다. 극중에서 김강우는 돈 그 자체다. 사이코패스가 인간적인 감정과 거리가 먼 것처럼 김강우는 인간적인 어떤 것과 거리가 멀다. 그는 오로지 숫자만을 표상한다. 수익 극대화의 와중에 사람이 상처 받고 죽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여전히 인간다움이 남아있다. 그것은 분노와 사랑이다. 재벌 친구가 극중에서 그를 모욕하자 분노한다. 사이코패스라면 그 분노를 적립해두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기계적으로 ‘처리’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분노를 그냥 표출하고 만다. 자기 회사 건물에서 친구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이다. 그 자신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에게 남아있는 사랑은 어머니를 대리하는 동생을 향한 것이다. 동생 역시 그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다닌다. 하지만 그는 동생을 제지하지 못한다. 동생 앞에서만큼은 그는 피가 흐르는 인간이다.


악마성에 균열을 일으키는 이런 인간다움들은 그를 파멸로 이끌 것으로 보인다. 돈, 숫자 그 자체였던 인간을 그린 영화인 리들리 스콧 감독의 <아메리칸 갱스터>에서 주인공 댄젤 워싱턴은 딱 한번 인간다운 행동을 한다. 기계에게는 없는 과시욕을 보인 것이다. 그것이 몰락의 기점이 됐다.


김강우는 자신에게 파멸을 가져다 줄 것이 뻔한 인간다움을 여전히 간직한 불완전 사이코패스다. 악마는 악마인데 위태로운 악마라고나 할까. 그는 절대악이며 동시에 약한 인간인 존재를 연기해야 하는 것이다.


드디어 몸을 일으킨 김강우는 자신이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증명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무조건 냉정함으로만 일관하거나, 혹은 악마라고 해서 무조건 공격성으로만 일관했다면 평면적이었을 것이다. 김강우는 냉담함과 분노, 약자에 대한 경멸 등이 뒤섞인 정서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예컨대 재벌 친구를 지하로 끌고 내려가 폭행하는 장면에서도,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동하며, 동시에 타인의 고통이나 정서 혹은 삶 그 자체에 둔감한 ‘또라이’가 화면에 제대로 그려졌던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거나 신경질적으로 보임으로서 1차원적으로 분노를 표출했던 드라마 초기 박용하와는 다른 복합적이고 차가운 분노였다.


이런 복합적인 성격의 표출은 극중에서 김강우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래서 정말 놀랍게도 착한 주인공보다 나쁜 악당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생각 이상으로 돌출한 남자 캐릭터로서 <내조의 여왕>엔 ‘태봉씨, 윤상현’이 <남자이야기>엔 김강우가 자리매김한 것이다.



주인공보다 무감정 사이코패스 악마역의 김강우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이것은 물론 초반부에 시종일관 신경질적으로만 보였던 주인공에 비해 김강우가 캐릭터의 복합성을 생생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다.


소지섭의 마법같은 ‘간지’가 추가됐다면 김강우의 캐릭터는 상당히 파괴적일 뻔했다. 김강우에겐 그런 간지의 아우라는 없다. 김명민이 연기력으로 쌓아올린 카리스마도 없다. 여태까지 주연을 종종 맡긴 했었지만 이렇다 하게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준 적도 없다.


이번 주에 김강우는 <남자이야기>라는 드라마 속에서 몸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그의 배우 인생 자체에서도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일반 대중의 뇌리 속에 김강우라는 존재를 각인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김강우의 연기력과 이 배역을 표현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까지 쫓아다녔다는 그의 노력으로부터 나온 것일 터. 우리는 다시, 배우를 한 명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