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조의 여왕>이 은근히 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선을 넘지는 못한다. 산정상에 오를 듯, 오를 듯하면서 미끌어져내린다. 뭔가 부족한 느낌. 딱 2%다. 2%가 부족하다.


구성으로만 보면 <내조의 여왕>은 상당한 가능성을 갖췄다. 이 드라마는 불황 민생 공감형 코미디극이다. <개그야>나 <웃찾사>처럼 허공에 붕 떠있는 트렌디형 개그보다, <개그 콘서트>같은 민생 공감형 개그가 먹히는 시대다. <내조의 여왕>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내조의 여왕>은 잘 하면 2009년형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될 수 있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최진실은 무능력한 남편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부 역할을 맡았다. 드라마 초반부에 최진실은 남편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며, 비겁한 수단까지 써서 돈을 버는 캐릭터를 소화했다. 그 비겁한 수단이란 병원에 가서 아픈 척을 하는 것이었다.


<내조의 여왕>에서도 김남주는 남편 뒷바라지를 헌신적으로 하며, 병원에서 아픈 척해 돈을 벌려 한다. 캐릭터의 성격이 비슷하다. 나이 먹은 스타 여배우의 귀환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김남주가 최진실처럼만 하면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만큼 강렬한 인상을 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김남주는 그때의 최진실에 비해 확실히 2% 부족하다. 아주 아닌 건 아니다. 열심히 한다는 것이 느껴지고, 잘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의 최진실처럼, 뭐랄까 끝까지 가는 느낌이 없다. 최진실이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오줌을 참으며 괴로워하는 장면은 폭소를 유발했다. 김남주가 굴욕당하는 장면은 웃기기는 한데, 그때처럼 폭발적이지 못하다.


생동감이 조금 부족하다고 할까? 거듭 말하지만 김남주가 못하는 건 아니다. CF퀸으로서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는 충분히 찬사를 받을 수 있다. 단지 아쉬운 것이다. 이 드라마의 설정이 내장하고 있는 가능성이 말이다. 김남주가 한번만 더 선을 넘는다면 이 드라마는 폭발적이 될 것이다.


오지호는 언제나 그렇듯이 2% 부족한 모습으로 주역을 받쳐주고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주역 부부가 모두 2% 부족한 상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김남주 원톱 드라마이니(제목도 여왕 아닌가), 김남주의 분투가 요구된다.




- 50% 부족한 조연 부부 -


조연인 이혜영, 최철호 부부는 50% 부족하다. 최철호야 배역의 성격상 워낙 존재감이 없으니 그렇다고 쳐도, 이혜영은 김남주의 맞수로서 드라마의 한 축을 감당해줘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너무나 실망스럽다. 이혜영의 대사는 너무 가라앉아서, 마치 과거에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가라앉은 대사로 일관하다 스포트라이트를 수양제에게 헌납한 젊은 날의 연개소문을 보는 듯하다. <왕과 나>에서 고주원도 비슷한 연기를 선보여 드라마를 무덤으로 끌고 갔었다. 이혜영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 이혜영은 생동감 있는 연기를 보여준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왜 <내조의 여왕>에선 잔뜩 짓눌려 움직이는 시체처럼 대사를 치는지 모르겠다. 이혜영에게 좀 더 생기가 생겨야 드라마에도 활력이 부가될 것이다. 이혜영에게 자신감과 힘을 요청한다.


- 매력치 150%를 보여주는 허사장 부부 -


한갓 장식물 정도로 여겨졌던 사장 부부가 은근히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허사장 부인으로 나오는 선우선은 드라마를 심심하지 않게 한다. 대단한 수준으로 치고 나오는 건 아니지만 처음에 무시했던 것에 비하면 150%다.



허사장역의 윤상현이야말로 이 작품으로 발견된 배우다. 윤상현은 <크크섬의 비밀>에서도 나왔었는데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 작품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고 있다.


네티즌이 윤상현이 기무라 타쿠야 같다고들 하던데, 난 <크크섬의 비밀> 때부터 윤상현이 와타베 아츠로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웬지 분위기가 비슷하다. 와타베 아츠로는 <사랑하고 싶어*3>에선 ‘찌질한 캐릭터’로 전혀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케이조쿠>와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기이한 매력을 발산했었다.



윤상현도 <크크섬의 비밀>에서 ‘찌질한 캐릭터’로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하다가, <내조의 여왕>에서 훈남 흑기사 캐릭터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까칠하게 굴면서도 은근히 김남주를 도와주는 부자 사장 캐릭터가 네티즌에겐 구준표 시즌 2로 보인 것 같다. 떡볶이를 먹으면서 김남주를 쳐다보던 그윽한 눈빛은 확실히 매력적이었다.


극을 지탱할 만한 엄청난 연기를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캐릭터의 매력과 배우 자신의 매력이 사장 역할에서 맞아떨어졌다. 그 결과 김남주 부부와 이혜영 부부가 함께 등장할 때 가장 불꽃이 튀어야 할 작품에서, 김남주 부부와 허사장 부부가 각각 따로 접촉할 때 관심도가 상승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김남주와 이혜영이 함께 있을 때보다, 김남주와 허사장이 함께 있을 때 더 흥미가 느껴지는 것이다.


시청자가 허사장에게 감정이입할 경우 김남주를 오지호의 품으로 보내기 위해 드라마가 고생 좀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허사장은 허사장이고, 김남주와 이혜영의 분투가 요구된다. <내조의 여왕>이 조금만 더 분발해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2009가 되길 바란다.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