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초반대 시청률에서 은인자중하던 <내조의 여왕>이 <꽃보다 남자>가 끝나자마자 단박에 20%대 시청률로 치고 올라가며 드라마퀸에 등극했다. 현재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내조의 여왕>이다.


 <꽃보다 남자>가 방영중일 때부터 같은 시간대에 맞붙었던 <자명고>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일부 매니아의 지지조차도 없는 것이다. <자명고>는 방영 전부터 <내조의 여왕>과 서로 방영을 연기하며 치열한 기싸움을 벌였었다. 뚜껑이 열린 후 결과는 <자명고>의 KO패다. 김남주의 내조 신공에 자명고는 울리지 않았다.


 <꽃보다 남자>의 후속인 <남자 이야기>는 일부의 열정적인 지지를 획득하는데 성공했으나, 대중적인 차원에서의 시동이 안 걸리고 있다. 수목드라마로 가면 대체로 지지부진한 장세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소지섭 혼자 고군분투하는 <카인과 아벨>은 기대만큼의 화제를 모으지 못하고 있으며, <돌아온 일지매>는 저주받은 걸작으로 끝을 봤다. 통속극 <미워도 다시 한번>의 존재감도 미미하다. <아내의 유혹>은 정신병자 민소희의 등장 이후 삼천포로 먼 여행(돌아올 수 없는?)을 떠났다.


 결국 <내조의 여왕>이 현 시점에선 한국 드라마계의 원톱으로 우뚝 선 것이다. 원톱이라고 하기엔 존재감이나 화제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이 경쟁적으로 무너지며 <내조의 여왕>을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받쳐줬다. 보름달은 아니고 샛별 정도인데, 하늘이 너무 어두우니 혼자 빛을 발하는 형국이다.



- 막장 속에서 피어난 한 떨기 꽃 -


 그동안의 막장 드라마들이 너무 무거웠다. <아내의 유혹>은 말할 것도 없고, <내조의 여왕> 전작인 <에덴의 동쪽>도 칙칙하기로는 둘째라면 서러울 지경이었다. 그때 혜성같이 등장한 트렌디 막장 <꽃보다 남자>는 그 경쾌함과 화려함으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여전히 막장 코드였다.


 <내조의 여왕>은 순수하게 경쾌함과 코믹이다. 더 가벼워지고 더 밝아졌다. 이 드라마에서 악당은 인생을 건 원한을 갖고 있지만, 그 복수라는 것이 여타 막장 드라마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다. 납치, 살인 같은 건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그 자리를 채운 건 경쾌한 웃음이다.


 <내조의 여왕>의 느낌은 마치 무거운 음식들을 포식하다가, 상큼한 과일 한 조각을 먹었을 때의 청량감과 같았다고나 할까? 막장의 독기 어린 자극에 시청자들이 지쳐갈 때 <내조의 여왕>은 그야말로 기막힌 타이밍을 잡았다. 진인사대천명. 이건 천운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정말 운이 좋았다. 복수 막장에서 트렌디 막장을 거쳐, 코믹 주부극으로 점점 가벼워지는 추세를 선도한 셈이 됐다.


 경제불황에 지친 시청자들은 현실을 잊게 해주는 강한 자극 혹은 가벼운 웃음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크게 보면 이 두 개의 코드가 순환하며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막장 드라마의 대환란이 시작되기 직전에 대단한 화제를 뿌렸던 작품이 바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었다. 그 경쾌하고 코믹했던 스캔들 이후 막장 대환란이 이어지다가 정확히 일 년 만에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과 너무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코믹 주부극 <내조의 여왕>이 강호를 평정한 것이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2008년 3월부터 4월까지 방영됐었고, <내조의 여왕>은 2009년 3월부터 4월에 걸쳐 방영되고 있다. 정말 공교롭다. 혹시 꽃 피는 계절 봄이라는 계절 변수가 작용했을까? 글쎄, 거기까지는 단정 짓기 힘들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부터 막장 대환란을 거쳐 <내조의 여왕>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공통점은 아줌마 파워라고 할 수 있다. 예능에선 남성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들도 많은 화제를 뿌린다. 물론 최근에 남성 예능 프로그램인 <명랑 히어로>가 격침당하고 아줌마 예능 프로그램인 <세바퀴>가 부상한 사례도 있긴 하지만, 예능에선 상대적으로 아줌마나 여성의 영향력이 약하다.


 하지만 드라마는 여성의 왕국이다. 그곳에서 <내조의 여왕>이 (찌질하긴 하지만) 꽃남 남편과 훈남 ‘태봉씨’의 보좌를 받으며 왕좌에 오른 것이다. 마치 일 년 전에 최진실이 꽃남 송재빈과 훈남 장동화의 보좌를 받으며 여왕이 됐던 것처럼.


 <내조의 여왕>엔 민생 코드도 추가됐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당시보다 불황이 심화됐기 때문일까? <내조의 여왕>은 주부 코믹극이면서 동시에 민생 코믹극이기도 하다. 민생을 반영한 것은 작품성에 대한 호평으로 이어졌다.


 극중에서 최근 불륜 코드가 등장하자 시청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한 것은 ‘비 막장 민생 코믹’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것을 방증한다. 어쨌든 현재까지 이 경쾌하고 유쾌하며 민생을 반영한 주부 이야기는 <에덴의 동쪽> 시청자들의 상당수를 계승하며, <꽃보다 남자> 시청자의 일부를 흡수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 김남주와 윤상현의 부상 -


 <내조의 여왕>의 성공에서 배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당대의 여성 톱스타의 드라마 재기작이었던 것처럼, <내조의 여왕>도 여성 CF 퀸의 드라마 재기작이다. 그때는 최진실, 현재는 김남주에게 드라마의 무게중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제목에서부터 ‘내 생애’라고 하며 주부 여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웠었고, 이번에도 ‘여왕’이라며 주부 여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김남주는 성공적으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수행했다. 최진실의 경우엔 넘치게 수행했었다. 최진실이 120%였다면, 김남주는 90% 정도랄까? 공통점은 둘 다 웃기게 망가져준다는 데 있다. 최진실이 더 생동감 있게 망가지긴 했지만 그건 1년 전 이야기일 뿐이고, 현재 시청자들은 김남주의 망가진 모습에 즐거워하고 있다.


 김남주는 CF를 통해 형성됐던 도회적이고, 이지적이고(CF에선 문제를 자신과 상의하라고 당당히 외쳤었다), 세련된 이미지를 전복하려고 작심한 것 같다. 그렇게 기존의 이미지가 망가질수록 환호는 커져갔다.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연말 수상은 예약한 것으로 보인다.


 훈남 ‘태봉씨’ 윤상현의 부상은 정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예상 못했던 다크호스의 부상은 ‘되는 집구석’의 공통점이다. 마치 <패밀리가 떴다>에서 생각지도 않게 박예진이 떴던 것처럼. 윤상현은 <크크섬의 비밀>에서 ‘찌질남’ 캐릭터를 소화하며 무관심의 냉대 속에 있었지만, <내조의 여왕>에서 흑기사 훈남 캐릭터를 맡으며 구준표 시즌2로 떠올랐다.


 <내조의 여왕> 팬들은 현재 막장의 흑바다에서 솟아오른 경쾌하고 유쾌한 주부 민생 코믹극을 환영하며, 그 속에서 발견된 이 두 배우에게 박수를 쳐주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