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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김연아에게 고대정신팍팍? 웃긴다

 

황당한 사건이 너무 자주 터진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기수 고려대 총장이 6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에서 "(김연아 선수의 선전은 내가) 고대 정신을 주입시킨 결과이며 고대가 김연아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과대망상도 이런 과대망상이 없다.


이 총장은 또 "작년 4월 내가 직접 편지를 써서 학교 관계자를 통해 훈련지인 캐나다 밴쿠버에 보냈다"며 "당시 김 선수의 모친과 김 선수가 `가고 싶은 대학이었는데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고 화답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직접 김 선수와 통화를 하며 앞으로 21세기를 살아갈 지도자는 민족정신과 개척정신, 승리에 대한 확신 등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며 "고대 정신을 팍팍 집어넣은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또 "여러분도 보셨겠지만 경기하는 모습이 고교생 때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 ... 개척 정신을 주입한 결과였으며, 고교 3학년 때 교사가 시켜서 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가. 이를 봐서 고대가 김연아를 낳았다고 한 것"이라고 했단다.


이게 대학에 갓 입학한 학생을 두고 대학 총장이 할 말인가? 경박해도 너무 경박하다.


고대는 지난 3월 30일에도 김연아가 우승하자 바로 일간지에 `민족의 인재를 키워온 고려대학교, 세계의 리더를 낳았습니다!'라는 광고를 실어 국민적 비웃음을 산 적이 있다. 세계적인 선수 하나가 나타나자 그것을 득달같이 자기자랑에 이용하는 이 엄청난 기민함. 생색내고 자랑하고 싶어 미치겠나보다. 이것이 과연 지성의 모습인가?


- 고대정신이 뭔데? -


이 총장은 같은 날 토론에서 기여입학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건물을 건립한다든지 학교 발전에 공헌한 집안의 자녀를 수학능력이 검증될 경우 입학시키는 제도가 필요하며 자율화가 되는 2012년 이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라고 한 것이다.


건물 건립이나 학교 발전에 공헌한 집안? 뭘 이렇게 복잡하게 돌려 말하나. 간단하게 말해 부잣집 자식 아닌가. 수학능력이야 웬만한 수준의 지능이면 다 통과되는 것이니, 결국 웬만한 부잣집 자식이면 돈 받고 입학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은 학벌이라는 이름의 유사신분제 사회다. 학벌은 한국인에게 평생 동안 붙어다니는 신분 표지와 같다. 그것 때문에 학생들이 자살까지 해가며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잣집 자식에겐 돈만 받고 그 학벌 표지를 그냥 주겠다고? 조선시대 때 국가가 돈 받고 과거에 합격시켜주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봉건사회 조선조차도 이런 주장을 공개적으로는 못했다.


고려대는 고교등급제 파동으로도 유명해진 학교다. 또 이전엔 학교 등록금이 천만 원이 넘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이젠 기여입학제?


돈 없이 자식 키우는 국민들에게 못 박는 짓이다. 이래놓고 ‘개척정신’? 뭘 어떻게 개척하나? 있는 집안 자식은 16차선 대로를 달릴 때, 없이 태어난 죄로 소달구지 타고 가다가 주저앉는 사회에서 무슨 개척정신이 생기나?


그렇게 어려운 관문을 뚫고 대학에 들어가봐야 등록금이 올라가면 모두 빚쟁이 신세다. 없는 집 자식은 채무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아무 일이라도 해 빚부터 갚아야 한다. 등록금 걱정 없는 집안 청년만 자신의 의지대로 자기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것이다.


고교등급제를 하면 개척이고 뭐고 원천적으로 없다. 선배들 시험성적으로 학교 등급이 갈려 그것이 내 앞길을 규정하는데, 내가 할 개척이 뭐가 있나? 등급제로 잘리고 기여능력으로 잘리고, 그렇게 없이 사는 국민을 배제하면서 ‘민족정신’? 소가 웃는다.


- 교육이나 잘 하고 교육자랑을 하던지 -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고통의 근원에 불과하다. 지나친 선발 탐욕으로 입시경쟁과 사교육비를 유발하며, 입시파동으로 수많은 학부모들을 절망케 한다. 동시에 엄청난 등록금을 걷어 학교재산을 불리면서도 그것을 학생복지나 교육력 향상에 쓰지 않는다는 비난을 당하고 있다.


고등학교까지 한국 학생들의 경쟁력은 세계 2위 수준이다. 대학까지 평준화 된 핀란드가 세계 1위고, 한국이 2위다. 한국의 대학들이 하는 일은 세계 2위 수준의 학생들을 선발해 2류 인재로 전락시키는 일이다.


이 정도라면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일류 사립대들은 2000년대로 접어든 이후 수많은 입시파동과 사교육팽창의 근원지 역할을 해왔다. 자숙하며 교육 내실화와 학생 복지 향상에 힘을 기울여야 할 때인 것이다. 하지만 도무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든 입맛에 맞는 학생을 선발해 학교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골몰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더니 김연아라는 선수가 입학하자, 그 학생을 교육시킨 적도 없으면서 온갖 생색은 다 내고 있다. 광고내용도 김연아를 앞으로 잘 지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김연아를 낳았다는 것이었다. 교육을 하는 것엔 관심이 없고, 선발한 학생 자랑으로 학교를 과시하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이야말로 꼴불견 아닌가.


* 꼴불견 : [명사] 하는 짓이나 겉모습이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우습고 거슬림.(다음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