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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허구연의 실망스러운 1박2일 질책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한 말을 했다. 허구연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과거 <1박2일>팀이 사직야구장에 나타났을 때 자신이 왜 그렇게 화를 냈었는지를 설명했다.


난 유명한 예능프로그램이 야구장에 나타나 이벤트를 벌이는 것을 보며 야구 홍보 된다고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야구인이 왜 그렇게 화를 내나 이상했었다.


일반적으로 허구연이 그렇게 화를 낸 이유는 <1박2일>팀이 시청자와 야구팬들에게 폐를 끼쳤고, 야구경기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돼왔다. 이런 이유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수긍할 수 있다.


야구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랄까? 예능 프로그램이 경기 도중에 야구 경기장에 나타나 경기장을 연예인들이 짓고 까부는 장으로 만든 것에 대한 불쾌감.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애호가로서 야구경기가 예능의 도구로 전락한 것을 보는 불편함. 이런 것이라면 나름 정당한 생각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차원에서는 <1박2일>이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것도 당연하다.



- 실망을 준 허구연 -


하지만 허구연이 <무릎팍도사>에서 말한 이유는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그는 야구팬이나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를 거론한 것이 아니라, 정말 엉뚱하게도, 정말 놀랍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들의 기득권을 1차적으로 거론했다.


MBC가 그때 경기의 중계권을 샀으니, 자기들 ‘나와바리’였는데 왜 KBS 프로그램이 남의 ‘나와바리’에 침범했느냐는 논리였다.


이건 MBC와 KBS라는 이해당사자가 만나 자기들끼리 할 얘기지, 시청자 앞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1박2일>팀을 보며 분노했던 국민들이 기껏 MBC라는 일개 방송사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 그랬단 말인가? 이건 국민들의 순수한 분노에 대한 모욕이다.


일개 방송사의 이해관계 따위와 국민은 관계가 없다. 허구연이 정말 자기들의 이익이 침범당한 것에 대한 짜증으로 그날 방송을 했다면, 국민에게 사죄할 일이다.


허구연은 이어서 MBC 중계팀이 <1박2일> 팀 때문에 곤혹스러워 했다는 말을 했다. PD가 자신에게 곤란함을 호소했다는 말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쩌라고? MBC 중계팀이 KBS 예능팀 때문에 곤란하건 말건 그것이 국민과 무슨 상관인가?


국민에게 중요한 건 그 쇼가 즐거운가 즐겁지 않은가이고, 야구의 입장에서 중요한 건 그 쇼가 야구의 저변확대에 도움이 됐는가 아닌가일 뿐이다. 허구연은 이런 관점에서 말을 했어야 했다. MBC 중계팀의 짜증은 자기들끼리 삭힐 일이다.


허구연의 논리를 적용하면, 만약 MBC의 예능팀이 MBC의 관리 하에 같은 행동을 했을 경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무한도전>은 되고 <1박2일>은 안 된다? 여기엔 국민의 입장이 빠져있다.


허구연은 철저히 방송사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함으로서 차라리 안 하니만 못한 말을 한 셈이 됐다. <1박2일>의 쇼를 보며 허구연이 야구인으로서 ‘공분’을 느꼈다고 생각했었는데, <무릎팍도사>를 보니 ‘짜증’에 불과한 것이었다. KBS 쇼 보여주기도 싫었고, 왜 자기들 밥그릇에 젓가락 얹어놓나 짜증이 났다는 수준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얘기한 롯데가 져서 문제라는 것도, 롯데라는 일개구단의 이해관계일 뿐이다. 실망이다.



- 과도한 중계권 독점 욕심 -


허구연은 자신들이 중계권을 샀음을 강조하면서 남의 방송사가 사전에 협의도 없이 끼어든 것이 부당하다고 했다. 하지만 <1박2일>은 경기 중계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1박2일>은 예능 프로그램이고 해당 구단과 협의 하에 이벤트를 벌였을 뿐이다. MBC는 <1박2일>팀이 경기장에서 밥을 지어먹든 잠을 자든 중계나 하면 된다. 허구연이 중계권의 개념을 너무 포괄적으로 독점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물론 그 이벤트가 짜증을 유발했으면 국민에게 질타당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더라도 중계권하고는 상관없는 문제다.


중계권의 독점을 향한 경쟁이라든가, 스포츠 경기의 포괄적 상품화는 현대 스포츠의 병폐 중 하나다. 현대 스포츠는 점점 일거수일투족,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상품이 되면서 거대자본의 상업주의, 미디어의 상업주의와 결합하고 있다.


한국 방송사들의 중계권 독점을 향한 탐욕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한국인은 현재 인구나 경제규모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중계권료를 지급한 해외 스포츠 경기를 보고 있다. 국내 방송사들이 중계권을 독점하기 위해 과당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미국여자골프의 경우 미국 방송사보다 한국 방송사가 훨씬 더 많은 중계권료를 내고 있다.


방송사가 중계권을 꼭 독점해 다른 방송사를 물 먹이겠다는 아집을 벌이고 서로 공조하면 더 적은 돈을 지불할 수 있고, 남은 돈을 방송발전을 위해 쓰면 시청자들이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허구연이 보여준 중계권에 대한 집착은 한국 방송사의 중계권 독점에 대한 욕심을 떠올리게 해 보기 좋지만은 않았다. 반면에 <1박2일>은 촌스럽고 순박했다. <1박2일>은 상업주의와 독점적 이윤논리가 판을 치는 현대 스포츠에, 너무나 순진하게도 70년대식 낭만적 스포츠 관념대로 복잡한 상업적 이해관계 조정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다.

 

‘스포츠 경기? 해단 구단 허락 맡고 가서 찍으면 되는 거 아냐? 우리는 중계방송이 아니니까 중계문제는 우리랑은 상관없겠지.’


순박하고 상식적인 생각이다. 현대스포츠에는 바로 이런 순박함과 상식이 필요하다. 너무 과도하게 모든 것을 상품화하려 하고, 이윤원리로 재단하려 하고, 자본끼리 독점하려 경쟁을 벌이면 스포츠의 순수성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허구연이 독점적 기득권을 강조하기보다, 좀 더 ‘널널한’ 모습을 보였다면 좋았을 뻔했다. 그게 스포츠도 그렇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살맛나게 만들어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