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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한효주는 생생한데 황정민은 밋밋하다

 

<그바보>가 훨씬 좋아졌다. 계속 ‘죽상’하고 있던 김아중이 드디어 웃기 시작하며 극의 분위기가 화사해졌다. 또 결정적으로 김아중의 마음이 움직이면서 판타지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일반인에게 다가온 어마어마한 행운이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타지의 힘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히 강력하기 때문에, 판타지가 작동할수록 극에도 활력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전히 결정적인 것이 부족하다. 김아중이 ‘엄청난 행운’을 표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는 여기서 더 반복하지 않겠다. 이 문제는 김아중이 ‘죽상하는 이웃집 처녀’에서 화사한 처녀, 황정민에게 의지하는 가녀린 처녀 캐릭터로 전환함에 따라 조금 나아지기도 했다.


죽상하는 이웃집 처녀는 모든 남성이 꿈꾸는 판타지와 어울리지 않지만, ‘화사하게 웃으며 나에게 의지하는 가녀린 아가씨‘ 는 남성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다. 김아중이 이런 존재가 됐을 때, 황정민에게 다가온 김아중이 판타지스러운 대박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김아중은 조금 변화했는데 황정민의 캐릭터가 변화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밋밋하다. 이러면 잔잔하고 흐믓한 착한 드라마라는 칭찬은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인기를 얻긴 힘들다.


- 한효주는 팔딱팔딱 뛰는데 황정민은 늘어져있다 -


<찬란한 유산>의 한효주와 <그바보>의 황정민에겐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바보스러울 만큼 착하다는 것.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극단적 착함이다. 황정민은 아무 대가 없이 자기 인생에 치명적인 해가 되는 가짜 결혼까지 해가며 김아중을 도우려 하고, 한효주는 아무 대가 없이 자기도 엄청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길바닥에 쓰러진 행상 할머니를 모셨다. 판타지니까 가능한 착한 캐릭터다.


하지만 둘 사이엔 차이가 있다. 한효주는 입체적인데, 황정민은 평면적이다. 황정민은 시종일관 허허허허, 허허허허, 아무 변화가 없다. 액센트도 없다. 처음부터 끝가지 한 가지 톤으로 간다.


반면에 <찬란한 유산>에서 한효주는 마냥 순둥이가 아니다. 착한 건 기본이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호호호호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울었다가, 활짝 웃었다가, 때론 화를 낸다. 단호할 땐 단호하다. 절절함과 밝음과 굳은 의지가 쉴 새 없이 교차하며 맥 빠질 틈을 주지 않는다.


캐릭터가 입체적인 것이다. 팔딱팔딱 뛰는 생동감이 있다. 두 배우의 연기력을 비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캐릭터의 특성이 다르다는 얘기다. 한효주의 캐릭터는 극에는 활력을 한효주에게는 매력을 부여하고 있는데, 황정민 캐릭터는 극을 잔잔하게만 만들고 있다.


이전 글에서도 황정민이 마냥 순둥이로만 가는 건 작품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걸 지적했다. 주연 캐릭터 둘 다에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했었는데, 김아중은 조금씩이라도 변화하고 있지만 황정민은 계속해서 밋밋할 뿐이다. 덕분에 김아중의 변화가 생뚱맞은 이벤트가 돼버렸다.


- 설득력이 필요하다 -


죽상하고 있던 김아중이 갑자기 황정민에게 마음을 열며 발랄한 아가씨로 변신했는데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다. 황정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착하다는 이유로 갑자기 좋아하게 된다? 이건 설득력이 없다.


물론 김아중의 화사한 모습과, 황정민에게 다가온 엄청난 판타지를 즐기는 선에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착하고 잔잔한 것에 흐믓해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폭발적 인기를 위해선 캐릭터의 입체적인 매력과 함께 설득력 있는 구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핵심은 이것이다. ‘도대체 왜 당대 최고 인기스타가 우체국의 말단 무능 왕따 순둥이 직원이며 촌스러운 황정민을 좋아하게 되는가?’ 이 물음이 해결돼야 한다. 그래야 구성에 설득력이 생긴다.


같은 판타지를 표현한 <스타의 연인>에서 유지태는 시종일관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에 따라 작품은 실패했다. <노팅힐>은 별다른 설정이 없이도 휴 그랜트라는 배우 자체가 여성의 로망이기 때문에 판타지가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스타의 사랑>에서 초난강은 휴 그랜트같은 본원적 매력이 없었다. 그래서 초난강에게 인간적인 강인함, 자부심, 정신적인 가치, 후지와라 노리카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서 판타지에 설득력을 불어넣었다.


황정민도 휴 그랜트가 아니다. 그런데도 단지 바보처럼 착한 것 하나로만 밀어붙이고 있다. 이러면 판타지에 설득력이 안 생기고 극도 밋밋해진다. 황정민의 캐릭터도 한효주처럼 좀 더 입체적인 것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러면서 김아중을 변화시킬만한 황정민만의 가치와 힘이 제시되어야 한다.


어리버리 답답이 순둥이 무능력자 착한 바보남 캐릭터로는 극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김아중의 변화를 납득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황정민만의 가치와 힘이 표현되면서 김아중이 좀 더 대스타로서의 존재감을 표현해낼 때, <그바보>는 성공의 길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