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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개그콘서트가 폭주하는 이유

 

 <개그콘서트>가 제3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패밀리가 떴다>와 함께 예능 시청률 1,2위를 다투는 중이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예능의 제왕이 된 이후 이런 광경은 오랜만이다.


 하지만 이것이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개그 프로그램의 중흥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개그콘서트> 홀로 폭주하고 있다. <웃찾사>나 <개그야>는 물론 <코미디쇼 희희낙락>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독야청청, 군계일학의 원맨쇼다.


 방송3사 예능에도 <개그콘서트> 출신들이 전방위적으로 투입되고 있다. 최근 MBC <무한도전>이 후배 양성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면서 흘러나온 명단에 <개그콘서트>의 장동민, 박휘순이 들어있었다. <무릎팍 도사>에서도 <개그콘서트> 출신의 유세윤이 활약한다. 심지어 <개그야>에서도 <개그콘서트> 멤버인 박준형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SBS도 예외는 아니다. 주말 예능인 <골드미스가 간다>에서 신봉선이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신봉선은 박미선과 함께 최고의 여자 MC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샴페인>에서는 메인MC자리까지 꿰찼다. 예능에 초대되는 개그맨 손님으로도 <개그콘서트> 출연자들이 압도적이다. <개그야>나 <웃찾사>에 출연하는 젊은 개그맨들이 중요한 비중으로 예능에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개그 프로그램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유행어도 당연히 <개그콘서트>의 몫이다. ‘영광인 줄 알아 이거뜨라~’, ‘미친 거 아냐?’, ‘선배님~’, ‘니들이 고생이 많다’, ‘누구?’, ‘그건 니 생각이고’,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있는데~’, ‘난 ~할 뿐이고’,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독해~’, ‘쌈싸먹어’, ‘안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우쥬 플리스 닥쳐줄래?’, ‘100프롭니다’, ‘참 쉽죠잉~?’.


 한다하는 유행어들이 모두 <개그콘서트>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러기도 쉽지 않다. 반면에 <개그야>나 <웃찾사>는 궤멸이다. 존재감이 사라져버렸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개그콘서트>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 속이 시원하다 -


 요즘 드라마 중에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내조의 여왕>이다. <내조의 여왕>과 <개그콘서트>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통렬함이다. 둘 다 현실에 기반한 웃음을 전해준다. 한국사회에서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부조리를 적나라하고 과장되게, 그러면서도 너무나 그럴듯하게 그려 보여 짜릿한 자극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현실의 한 단면을 통렬히 묘사해주면 시청자는 속이 시원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최근 <개그콘서트>의 ‘독한것들’이라는 코너에서 묘사된 것을 통해 자녀의 흡연사실을 알게 됐다는 학부모의 경험담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었다. ‘독한것들’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행동을 정확히 집어내 표현하며 그것을 비웃는 내용이다. 비웃는 정도가 너무 강해 막장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들의 심리나 행동을 통렬히 묘사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관객으로부터 ‘아 그래! 맞아, 맞아!’ 이런 감탄사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여성의 외모를 비하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으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통렬함의 마력이다.


 통렬하기 위해선 철저히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허공에 붕 뜬 요정들의 얘기로는 통렬한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없다. <내조의 여왕>이 단지 웃긴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은 건 아니다. <내조의 여왕>에는 현실의 애환이 담겼다. 그 속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통렬히 야유했기 때문에 원톱 드라마로 떠오를 수 있었다.


 <개그콘서트>도 현실적이다. 반대로 <웃찾사>는 트렌디하다. <개그콘서트>가 전체적으로 구질구질한 느낌이라면 <웃찾사>는 화사하고 쿨한 느낌이다. 개그코드도 <웃찾사>가 훨씬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사람들 취향에 부합한다. <웃찾사>에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이용진, 이진호 등의 개그는 인터넷 세대가 아니면 공감하기 힘들다. 트렌디하고, 쿨하고, ‘패셔너블’한 <웃찾사>는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벗어난 요정들의 이야기 같다. 이것은 아무런 공감도, 통렬함도 줄 수 없다. 현실의 애환도 느낄 수 없다.


 <개그야>도 말장난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요즘 <개그야>는 젊은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은 자사 예능 프로그램들을 패러디하고 있다. 오리지널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게 아니라, 묻어가기로 기존 예능 프로그램의 팬층 속에 안주하는 것이다. 이것이 <개그야>가 공중파 3사 개그 프로그램 중에 가장 존재감이 박약한 이유다.



- 2009년을 강타한 ‘분장실의 강선생님‘ -


 2009년, 대한민국은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마력에 빠져있다. 이것은 안영미, 강유미 등의 여자 개그맨들이 어처구니없는 분장을 하고 분장실에서 벌이는 소동극이다. 한국은 여기에 꽂혔다. 주요 예능 프로그램에선 방송사를 막론하고 ‘분장실의 강선생님’에 나오는 유행어를 들을 수 있다.


 이 코너야말로 위에 언급한 <개그콘서트>의 특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코너는 기본적인 설정에서부터 현실풍자로 시작한다. 개그맨 선배가 분장실에서 어처구니없는 분장을 하고 앉아 분장으로 웃기지 말라고 후배들을 훈계하는 장면이 이 코너의 기본적인 모티브다.


 여기에는 한국사회 특유의 라인문화에 대한 야유가 나타난다. ‘강선생님’의 줄을 타려는 기회주의자 안영미와 듬직한 대선배처럼 굴다가도 PD의 캐스팅 발언에 바로 후배들을 배신하고 달려가는 강선생님. 그 밑에서 찍소리도 내지 못하는 새카만 후배들.


 이 설정은 <내조의 여왕>에서 나오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다. <내조의 여왕>에서 내조는 바로 ‘무한 아부’였다. 김남주가 무한 아부의 대가로 나온다. 그는 강자에겐 약하고 강자의 위세를 빌려 약자에겐 과시적으로 군다. 그러면서 출세에 목을 맨다. 이 적나라한 묘사와 후안무치함에 한국인은 박장대소했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에서 무한 아부의 대가로 나오는 이는 안영미다. 이것으로 인해 안영미는 가장 ‘핫’한 개그맨으로 부상했다. 윗사람에겐 ‘선배님~’하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아랫사람들에겐 ‘똑바로 해 이거뜨라’라며 거만을 떤다. 강선생님이 한 마디하면 그것을 열 배로 부풀려 공감을 표시하며 간사하게 군다. 어디에나 있는 얄미운 2인자를 통렬하게 묘사했다.


 인류역사에서 이런 2인자는 너무나 익숙한 존재다. 철저한 서열, 라인 문화인 한국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인간형이다. 이것을 과장되면서도 통렬하게 묘사해줌으로서 열광적인 갈채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현재 단지 웃기는 것 그 이상을 원하고 있다. 현실을 통렬히 야유해주며 삶의 애환을 생생하게 담아내면서도, 그것이 칙칙함으로 흐르지 않고 경쾌한 웃음을 던져 줬을 때 한국인은 반응한다. <개그콘서트>는 그런 시류를 정확히 잡아냈다. 이것이 폭주기관차가 되어 홀로 질주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