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 영상 칼럼

찬란한유산, 한효주와 이승기 진화하기 시작하다

 

다음이 궁금해 일주일이 기다려지는 드라마가 오랜만에 나타났다. <찬란한 유산>이다. 주말드라마라서 무시하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우연한 일로 오월 초중반에 처음 보게 됐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때가 한효주가 드라마틱한 비극을 겪으며 극을 고조시키고, 또 이승기의 할머니가 한효주를 만나며 역시 드라마틱한 전개를 이어가던 시점이었다.


드라마틱이라고 표현한 건 예컨대 한효주는 잘 사는 집 엄친딸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천애고아에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이승기 할머니는 사장이었다가 사고를 당해 가난뱅이 기억상실증자로 전락했다가 다시 기억을 되찾는 엄청난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진 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 극적인 진폭과 빠른 전개는 <찬란한 유산>을 상당히 재밌는 드라마로 만들었다. 주중 미니시리즈 뺨치는 주말드라마가 탄생한 것이다.


초반의 극적이고 빠른 전개는 오월 중순경에 일단락되고 , 그다음부터는 한효주가 이승기의 집에 들어가 살며 회사생활하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때부턴 초반처럼 사람의 얼을 빼놓는 엄청나게 극적인 사건들이 터지지 않았다. 이야기가 서사적 격변에서 소소한 일상 모드로 전환된 것이다.


- 흥미를 잃지 않다 -


이때부터 잔잔하게 쭉 갔으면 흥미도가 더 폭발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찬란한 유산>은 큰 사건이 없이도 효과적으로 극의 흥미를 이어갔다.


이 기간 동안 이승기의 심경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대단히 극적으로 그려진 건 아니었지만 회를 거듭하며 미묘하게 변화해가는 이승기의 모습은 극에 대한 몰입도를 조금씩 심화시키는 데 충분했다.


극 초반 눈물의 여왕이었던 한효주는 이 대목에 이르러 곧고 밝은 성품을 지닌 캐릭터로 진화했다. 이것은 한효주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변화하는 남자 주인공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여자 주인공. 즉, 주인공이 둘 다 입체적이고 활력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주인공들의 매력은 바로 작품의 매력으로 이어졌다. 작품 자체가 이미 진부한 주말드라마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데, 주인공들의 매력까지 더해졌으니 흥미도가 점입가경으로 상승했다. 드디어 이번 주에 이르러선 다음 주가 기다려지는 드라마가 됐다는 것을 실감했다.


- 한효주 몸을 일으키다 -


그동안 한효주는 수동적인 캐릭터였다. 계속 영문도 모르고 당하기만 했던 것이다. 당하면서 때론 눈물 흘리고, 때론 밝게 웃으며 어려움을 헤쳐 나갔던 것이 여태까지의 한효주였다. 6월 1일 12회에서 한효주에게 드디어 능동성이 생겼다.


그건 두 갈래의 새로운 갈등구조를 만들었다. 첫째, 자기 새어머니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여태까지 당하기만 했던 한효주가 드디어 새어머니와 대결하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한다.


둘째, 이승기 할머니의 유언이 정확히 공표됐다. 또 한효주는 자신이 그 유언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건 한효주와 이승기 집안, 그리고 회사 중역 간의 갈등구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는 걸 의미한다.


한효주가 두 개의 전선을 감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비극으로 인한 눈물의 여왕에서 시작해, 그다음엔 그 속에서 다양한 매력들을 보여주다가, 이젠 상황 자체를 이해하고 스스로 그 구성에 동참하는 능동적인 캐릭터로의 변화다. 능동성을 잘 표현한다면 향후 캐릭터의 매력은 더 강해질 것이다.


- 요즘은 찬란한 유산이 최고 -


남자주인공 이승기는 나쁜 남자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평면적인 캐릭터였다가 최근 복잡한 성격의 캐릭터로 변하고 있다. 가수출신이라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이승기는 이런 변화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12회에서 이승기는 드디어 한효주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깨달으며, 기타를 손에 잡았다. 성격의 대전환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나쁜 남자는 나쁜 남자인데, 목석이 아니라 교차하는 애증으로 괴로워하며 변화하는 나쁜 남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승기의 매력을 극대화할 것이다.


절대 악인 김미숙은 극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야멸치게 자기 이익을 챙기며 어떤 상황에서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유들유들함은 정말 얄밉다. 김미숙이 얄밉게 보이면 보일수록 극은 재밌어질 것이다. 12회에선 김미숙의 딸까지 악녀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인해 한효주와 김미숙 모녀와의 대결구도가 더 선명해졌다.


한국 여성들이 아주 좋아하는 <모래시계>에서의 이정재 캐릭터. <찬란한 유산>엔 절대 순정남 배수빈이 있다. 배수빈 캐릭터의 매력도 시청자의 몰입도를 유지시키는 데 일조한다.


극적인 구도와 빠른 전개,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들까지. <찬란한 유산>은 재미있는 작품의 모든 것을 갖춰나가고 있다. 코믹 코드는 없지만 그 빈자리는 휴머니즘 코드가 채운다. 재미의 면에서 봤을 때 <찬란한 유산>이 요즘 드라마들 중 최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