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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친구 현빈, 장동건 벗었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을 하려 하자 현빈의 주위 사람들이 모두 말렸다고 한다. 장동건과 비교될 뿐이며, 잘 해야 본전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드라마 초반엔 그렇게 흘러갔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미 신화가 된 영화 속 장동건의 이미지와 비교되는 것은 현빈에게 상당히 불리했다. 그 압도적인 이미지와 누가 싸울 수 있다는 말인가?


처음부터 안 되는 싸움이었는데,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그 지는 싸움을 자초했다. 드라마 초반부 4회 동안 영화 <친구>와 똑같은 장면을 지속적으로 배치했던 것이다. 그 결과 영화 <친구>와 드라마 <친구, 우리들이 전설>이 뒤죽박죽으로 뒤엉킨 이도저도 아닌 작품이 돼버렸었다.


이것은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들었으며, 영화를 안 본 사람들을 정신 사납게 했다. 또, 극을 장악해야 할 주연들을 영화 캐릭터 흉내나 내는 아류로 격하시켰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도 매력이 부각될 수 없었다.


현빈이 불쑥 나타나 이미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했던 ‘니가 가라 하와이’, ‘마이 묵었다 아이가’를 했는데, 여기서 무슨 비장미를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코미디 취급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었다.


작품 스스로 불러들인 장동건과 유오성의 그림자가 작품 전체와 주연배우들을 덮어버려서 전혀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이 제대로 보일 수 없는 상황, 그 속의 배우도 제대로 인지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때까지는 현빈이 장동건의 저주에 먹히는 듯했다.



- 허약한 캐릭터 -


<친구, 우리들의 전설>의 문제는 또 있었다. 극 초반부에 도무지 감정을 이입할 대상을 찾을 수 없었다. 여러 친구들의 이야기가 정신 사납게, 그러면서 관조적으로 흘러가는 동안 시청자는 마치 흘러간 그때 그 시절 다큐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드라마를 봐야 했던 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라서 드라마다. 드라마가 없으면 다큐지 드라마가 아니다. 드라마의 핵심은 인물이 엮어내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인물이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지나가는 아저씨면 안 된다. 보는 이의 감정을 깊게 몰입시키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런 인물이 겪는 드라마틱한 사건들, 그 속에서 아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혹은 성공하는 것. 그것에 시청자가 함께 공감할 때 드라마는 성공한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 초반부엔 그런 인물이 없었다. 그런 허약한 캐릭터인 상태에서 엎친데 덥친 격으로 신화적인 선배 배우들의 그림자까지 덮어썼으니 드라마가 잘 될 턱이 없었다.



- 현빈의 역전 -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4회를 넘기면서 영화 장면을 삽입하는 복잡한 구성을 버렸다. 이때부터 비로소 독자적인 드라마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그려지지 않았던 ‘친구들’의 이야기가 천천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의 이야기 속에서 현재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살아나고 있는 것이 현빈이다. 영화 속에서 장동건은 멋있기는 했지만, 유오성에 비해 감정을 이입시키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자기 친구에 대한 피해의식, 공격성 같은 것들 때문에 유오성보다 작은 인물로 그려졌었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에선 현빈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그가 가졌던 꿈, 그가 겪었던 좌절, 그의 상처, 이런 것들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현빈이 맡은 캐릭터를 구현해나가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보는 이는 현빈의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시키게 되는데, 여기엔 현빈의 역할이 지대하다. 현빈은 상처를 감춘 반항적인 눈빛, 허허로운 고독과 아픈 희생의 이미지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를 로맨스가이의 대표주자로 만들었던 그 예쁜 미소(나는 그 미소를 싫어했었다)의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기존의 선입견을 지운 상태에서 장동건의 공격적인 동수가 아닌, 현빈의 상처 입은 동수를 새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장동건의 그림자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장동건의 동수는 장동건의 동수고, 현빈의 동수는 현빈의 동수일 뿐이다. 영화 속에서 장동건이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면, 현빈은 마음을 아프게 하는 캐릭터를 그려가고 있다.


처음부터 <친구, 우리들의 전설>이 영화를 재현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랬다면 불필요한 전설 속 이미지와의 비교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 <친구, 우리들의 전설>는 영화의 부록이 아니라 독자적인 작품으로 안착한 느낌이다. 그리고 현빈은 그 작품 속에서 자기 자리를 확고히 구축했다.


요즘 한국인은 <친구, 우리들의 전설>처럼 칙칙한 분위기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큰 성공은 불가능할 걸로 보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현재와 같은 냉대는 너무 하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그렇게 무시하기에는 지나치게 훌륭한 만듦새를 보여주고 있다. 연기자들의 연기도 상당하다. 게다가 현빈은 점점 멋있어지고 있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충분히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