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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맨땅에헤딩 정윤호, 속이 시원했다

 

<맨땅에 헤딩>을 보며 속이 다 시원했다. 최근 방영되는 청춘드라마들에 비해 <맨땅에 헤딩>은 발군이었다. <맨땅에 헤딩>이 대단히 훌륭한 것이 아니라, 다른 청춘드라마들이 워낙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청춘드라마는 월화엔 <드림>, 수목엔 <아가씨를 부탁해>가 방영되고 있다. 둘 다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다. 다행히 <드림>에선 손담비가 화살받이 노릇을 하고, <아가씨를 부탁해>에선 윤은혜가 화살받이 노릇을 하기 때문에 비난의 화살이 퍼지지 않을 뿐이지, 양쪽 다 작품 자체가 어이없는 수준이다.


무엇보다도 <맨땅에 헤딩>은 배우들의 연기와 이야기 전개가 모두 시원시원했다. <드림>과 <아가씨를 부탁해>는 답답하고, 밋밋하고, 맺고 끊는 게 딱 부러지지가 않는다. <아가씨를 부탁해>는 웃음 포인트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되고, 두 주인공이 알콩달콩하는 느낌을 줘야 하는 대사도 답답하기 그지없어서 몰입이 힘들다. <드림>은 시종일관 짜증내며 소리만 질러대는 주인공과 우물우물하는 또 다른 주인공 때문에 답답하다.


<맨땅에 헤딩>은 웃어야 할 때, 주인공들의 감정이 고양될 때, 뭔가 야릇할 때, 각각 분명하고 시원시원하게 딱딱 끊어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됐다. 웃길 듯 웃길 듯 안 웃기는 <아가씨를 부탁해>에 비해, <맨땅에 헤딩>은 웃음포인트에서 확실하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작품이 대단히 훌륭한 건 아니었지만, 최근 청춘드라마들이 워낙 지지부진했었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을 보는 동안 속이 다 시원했다.



- 정윤호의 맨땅에 헤딩 성공적이다 -


드라마 제목도 <맨땅에 헤딩>이지만, 정윤호에게도 이 작품은 맨땅에 헤딩이다. 가수로서 정극 연기에, 그것도 대뜸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돌 가수가 대뜸 드라마 주연을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은 상당하다.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더구나 최근 가수배우들에 대한 시선이 안 좋다. 잘못하면 도매금으로 넘어갈 수 있다.


월화엔 월화 화살받이인 손담비가 원 없이 욕을 먹고 있으며, 수목엔 윤은혜가 못지않게 욕을 먹고 있다. 성유리는 수목 화살받이인 윤은혜 덕분에 상대적으로 욕을 덜 먹지만,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윤호가 끼어든 것이다.


정윤호가 한두 번만 우물우물해도 발연기의 표본으로 전시되면서 융단폭격을 맞을 형세였다. <맨땅에 헤딩>이 시작하기 전에 ‘정윤호 연기력 논란’이라는 카피부터 뽑아놓고 드라마를 시청한 기자들이 상당수였으리라.


하지만 정윤호는 우려했던 것보다는 안정되고 생기발랄한 연기를 선보였다. 중간에 불안한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무리 없었다. 대사를 치는 것도 시원시원했고, 몸개그의 가능성도 엿보였다.


대사 치는 게 불안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드라마 주연의 연기를 대견해하는 것에 비애가 느껴지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만큼 최근 청춘드라마에서 연기불안이 너무 심했던 것이다. 당장 <맨땅에 헤딩>과 경쟁하는 <아가씨를 부탁해>엔 윤은혜와 정일우가 버티고 있다.



스포츠 선수와 에이전트라는 면에서 같은 설정인 <드림>과 비교해도 그렇다. <드림>에서 주진모는 예전의 우물우물하는 모습을 다시 보여줘 답답하기만 하다. 고주원이 <왕과나>를 침몰시키고, 이태곤과 손태영이 <연개소문> 전반부에 재앙을 부를 때 선보였던 답답한 대사치기를 요즘 <드림>에서 주진모와 손담비가 재현하고 있다. 여기에 비하면 정윤호의 대사치는 모습은 시원시원했다.


선수 캐릭터인 김범과 비교해도 정윤호가 맡은 캐릭터가 훨씬 활기차고 매력 있었다. 김범의 캐릭터는 짜증을 유발하는 성격이어서 F4 김범의 명성을 한 순간에 앗아갔고, 게다가 그 캐릭터와 김범과의 싱크로율도 낮아서 김범의 존재감이 대추락하고 말았다. 자기가 주연인 드라마가 망하고 있는데 욕은 손담비가 다 먹을 만큼 존재감이 사라진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정윤호의 캐릭터는 훨씬 나았고, 그 캐릭터와 정윤호와의 싱크로율도 괜찮았다.


다른 배우들도 괜찮았다. 아라는 특유의 귀여운 매력을 잘 보여줬다. 이윤지도 맡은 역할을 안정적으로 해냈다. 모든 젊은 배우들의 연기가 불안하지 않은 청춘드라마가 모처럼 나타난 것이다.


물론 드라마가 아마추어 배우라고 할 수 있는 가수들 천지가 되는 것엔 불만이다. 수목드라마는 이제 아이돌 대전의 전장이 됐다. 윤은혜와 성유리가 격돌하던 장에 정윤호가 끼어들어 아이돌 출신 배우 3파전이 벌어진 것이다. 어이없는 구도다. 그건 그거고, 어쨌든 그 속에서 정윤호는 시원시원했고, <맨땅에 헤딩>은 확실히 돋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