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이 개봉 18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정도면 놀랄 만큼 성공한 것이기도 하고, 기대에 조금 못 미치는 것이기도 하다. 놀랄 만큼 성공했다는 것은 한 사람이 터널 안에 갇힌다는 단조로운 이야기로 600만이나 넘어선 것이 놀랍다는 의미이고, 기대에 조금 못 미친다는 것은 올 여름 시즌이 쌍천만 흥행이 터질 호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천만 고지가 버거워보인다는 의미다.
‘터널’을 만든 김성훈 감독도 한 사람이 터널 안에 갇히는 이야기로는 대흥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비록 혼자 표류했지만 섬을 탐험하기라도 했다. ‘터널’에선 시멘트 더미 속에 한 사람이 갇힌 채로 2시간을 끌고 가야 하는데,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똑같은 재난 상황이라도, 좀 더 대규모로 블록버스터에 걸맞는 액션이 펼쳐지고 수많은 인간군상이 등장했다면 ‘부산행’에 이어 천만 흥행이 터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올 여름 시즌은 더위와, 한동안 한국 영화를 제대로 못 봤던 관객들의 에너지까지 겹쳐 한국 영화 대박의 절대 호기였다.
하지만 ‘터널’은 단조롭고 답답하게, 딱 한 사람이 갇히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여름 시즌의 흥행 에너지를 제대로 터뜨리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감독 자신이 ‘터널’의 약점을 제일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굳이 한 사람만 갇히는 이야기를 영화화했을까?
그래야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갇혔을 경우 구조 여론이 당연히 비등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면, 단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손해를 감내할 수 있을까?
단 한 명일 때 우리 사회가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극명히 드러낼 수 있다. 그 한 명을 통해 영화 ‘터널’은 우리에게, 인간 존엄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인간의 존엄함은 절대적인 가치다. 이것은 양적으로 숫자가 늘어난다고 달라지는 가치가 아니다. 한 명보다 열 명이 열 배 존엄한 것이 아니란 뜻이다. 한 명이든 열 명이든,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존엄하다.
과거 봉건사회에선 인간을 존엄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왕이나 귀족만 존엄했다. 근대 시민사회로 넘어오면서 모든 인간이 존엄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한 인간 존엄성의 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를 통해 우리 사회가 봉건사회에서 얼마나 시민사회로 잘 진화했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 ‘터널’은 바로 이 지점을 찍었다. 단 한 명. 단 한 명의 생명을 대하는 우리 공동체의 자세를 물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 존엄성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각종 갑질 논란, 가습기 살균제 사건, 폭력 철거 등 인간을 우습게 여기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시민사회가 되기 위해선 아직도 갈 길이 먼 것이다.
‘한국은 인간 존엄성이 지켜지는 사회입니까?’ 바로 이것을 묻기 위해 하정우는 혼자 갇혀야 했다. ‘터널’이 천만 흥행을 포기하고 선택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 시민사회의 현 주소를 성찰하게 했다. 올 여름 흥행 영화의 가장 큰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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