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2017’은 KBS의 대표적인 청소년 드라마 시리즈 ‘학교’의 2017년 버전이다. ‘학교’ 시리즈는 그동안 장혁, 최강희, 배두나, 김래원, 하지원, 이요원, 이동욱, 조인성, 임수정, 공유 등 많은 신인들을 배출해왔다. 2002년 이후 휴지기를 갖다가 ‘학교 2013’으로 부활해 이종석과 김우빈을 대세 배우 반열에 올려놨다. 그 후 ‘후아유-학교 2015’에 이어 올 여름 2017년 버전이 방영되는 것이다.
배우와 설정이 계속 바뀌었기 때문에 정식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 드라마 현실에선 보기 드물게 하나의 브랜드로 여러 편을 이어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기대가 모아졌다. 하지만 시청률 4퍼센트대로 반응이 신통치 않다. 작품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요즘 시청자를 답답하게 하는 캐릭터를 암을 유발한다고 해서 ‘발암’ 캐릭터라고 하는데, 여기엔 발암 캐릭터와 발암 설정이 하도 많아 작품 자체가 통째로 발암 드라마인 것 같은 느낌이다. 적어도 전반부까지는 그랬다.
가상의 사립고에 다니는 학생들의 이야기다. 학교는 학생들을 성적과 부모 재산으로 차별하고, 유력자의 자식들은 벌써부터 성인의 갑질을 흉내 낸다. 중견 교사들은 이미 의욕을 잃고 그저 기계적으로 직장-학교에 출근한다. 그 속에서 젊은 교사가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려 하지만 무력할 뿐이다. 이때 엑스라는 의문의 존재가 나타나 학교를 조롱하면서 조용했던 학교 사회가 흔들린다는 설정이다.
가상의 학교를 통해 학교 현실을 우화처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엑스라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등장시켜 판타지적인 재미를 첨가했다. 우울한 분위기로만 가지 않으려는 제작진의 선택일 것이다. 제작진은 ‘학교 2017’이 역대 학교 시리즈 중 가장 밝은 작품이 될 거라고 했다.
과거 청소년 드라마는 그저 밝고 유쾌한 분위기였다. 이에 반해 1999년에 등장한 ‘학교’ 시리즈는 학생들의 현실적 고민과 학교 내부의 문제를 다뤄 공감을 얻어냈다. 휴지기 이후에 등장한 ‘학교 2013’은 학교를 거의 ‘지옥의 묵시록’ 같은 공간으로 그렸다. 이 작품과 ‘후아유-학교 2015’는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것처럼 답답한 분위기였다. 계속 그렇게만 갈 수는 없기 때문에 ‘학교 2017’은 밝음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 현실이 밝음으로 포장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대한민국 학교는 이미 ‘발암’적 공간이 돼버렸다. 과거 ‘얄개’시리즈가 표상했던 낭만적인 학교 풍경은 2000년 즈음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 시리즈는 바로 그 시기의 불안한 학교 분위기를 그렸다. 그후 대한민국 학교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국민들이 조기유학이란 이름으로 자식을 해외로 탈출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황폐한 학교 분위기가 학생들을 황폐하게 만들어 왕따, 학교폭력, 청소년우울증 등이 심화됐다. ‘학교 2017’이 그리는 성적 서열에 의한 차별, 사립학교의 불투명한 운영실태, 유력한 학부모와 교장에 휘둘리는 학폭위, 학생 노력보다 부모 재산이 더 중요한 입시 풍경, 비정해진 아이들 정서 등이 모두 우리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억지로 밝은 분위기를 낸 것이 공감 받긴 어려웠다. 아무리 판타지로 포장해도 학교 실태를 그린 이상 답답해질 수밖에 없어서 결국 발암 드라마행이다. 대한민국에서 학교 드라마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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