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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비밀의 숲이 말하고 싶었던 것

 

비밀의 숲이 막을 내렸다. 근래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준 수작이다. 황시목 검사가 특검으로 지목되며 막을 내렸기 때문에, 2탄 제작도 기대해봄직하다. 

비밀의 숲의 설계자는 결국 이창준 민정수석으로 드러났다. 그는 검사장 출신으로 재벌의 사위이기도 하다. 검찰, 재벌, 청와대 등 권력의 핵심부를 모두 관통한 셈이다. 그 정도의 인물이 내부고발에 나서야 비밀의 장막이 걷힐 것이라고 작품은 말했다. 

이 작품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주로 이창준 수석의 유언을 통해 전달됐다. 모든 증거를 남겨놓고 죽음을 택한 그는 우리 사회가 적당히 오염됐다면 난 외면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너무나 심각한 상황이라며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대다수의 보통 사람은 그래도 안전할 거란 심리적 마지노선마저 붕괴된 후다. 사회 해체의 단계라고 했다.

 

부정부패가 해악의 단계를 넘어 사람을 죽이고 있다. 기본이 수십수백의 목숨인 상황에서 자신은 검사로서 낮에는 서민들을 구속시키고 밤엔 수천억을 쥐락펴락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이 법망에 걸리지 않도록 해주면서 살았다고 고백했다 

여기까진 있음직한 성찰이다. 하지만 이창준의 마지막 메시지는 너무 원론적이고 지사적이어서 마치 운동권 학생의 치기 어린 구호처럼 들렸다.

바꿔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찾아 판을 뒤엎어야 한다.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누군가 날 대신해 오물을 치워줄 것이라 기대해선 안 된다. 이제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치워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고위층들이 보면 순진한 소리라며 비웃을 지도 모른다. 갑자기 당위적인 주장이 직설적으로 언급돼 지금까지 냉정하게 유지됐던 작품의 품위가 흔들리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 이런 주장을 넣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우리 사회가 심각한 상황에 왔다고 작가는 판단했을 것이다. 그만큼 간절한 메시지였고, 그런 간절함이 있었기에 비밀의 숲이라는 작품을 치열하게 써내려갔을 것이다. 

작년부터 우린 입을 벌려 말하지 않고 손을 들어 가리키지 않는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검찰 출신에 전 민정수석이자 재력가 집안의 사위인 우병우 전 수석만 해도 그렇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캐비넷에서 문건이 나오는 데도 속 시원히 밝혀주지 않는 느낌이다. 제발 핵심부에 있는 사람들이 입을 열어주길 바란다고, 그래야 비밀의 장막이 걷힐 것이라고 작품은 말했다.

 

황시목 검사는 눈을 부릅뜨는 역할을 검찰이 해야 하는데 실패했다며 아직 기회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욱 공정할 것이며 더욱 정직하겠다. 국민에 헌신하겠다라고 했다. 검찰이 정말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이것도 작가의 바람일 뿐이다. 

반성한다며 믿어달라는 서동재 검사는 결국 과거의 행태를 반복했다. 이윤범 회장을 구속시켰지만 이연재가 회장직에 올랐다. 사람이 교체됐을 뿐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다.

 

회장이 구속될 때 우리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져!’라고 하자 황시목 검사는 건조한 어조로 안 무너집니다라고 응수해 통쾌감을 안겼다. 그런데 무너지지 않는 건 대한민국만이 아니었다. 부패 시스템도 무너지지 않았다. 최고위직의 면면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여전히 비밀의 숲이다. 이 장막이 걷히려면 이창준 같은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내부고발을 해야 한다고 작품은 말한다. 그리고 황시목처럼 오로지 법질서와 진실만 생각하는 검찰이 될 것을 촉구한다. 그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비밀의 숲이 앞으로도 견고할 것이라고 여길 터다. 그래서 비밀의 숲’ 2탄이 필요하다. 황시목 같은 검사를 드라마에서만이라도 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