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이 추석 극장가의 승자로 떠올랐다. 아주 오락성이 강한 작품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보는 묵직한 정통사극의 느낌이 각별하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에 관객의 관심이 고조됐다.
명-청 줄타기를 하던 광해군을 서인이 몰아내고 인조를 세웠다. 이들이 청을 배척하자 청은 군사를 보냈다. 정묘호란이다. 조선은 상대가 되지 않았고, 결국 청과 강화했다. 이때 화의를 주장했던 이가 바로 최명길이다. 청군이 돌아간 후 사림은 최명길을 공격했고, 최명길은 중앙정계를 떠나 경기도 관찰사로 물러나게 된다.
서인 정권은 정묘호란 이후에도 청을 배척했다. 기이한 건 서인의 태도다. 실력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일전불사를 외쳤다. 정묘호란 때 양국의 실력차가 확인됐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청이 이미 수군을 확보해서 강화도 피신의 유효성이 사라졌는데도 그런 정보수집조차 안 하고 말로만 전쟁이었다. ‘입안보’라고나 할까? 청은 다시 침공했고 무인지경으로 달려 한양에 도달했다. 얼마나 빨리 왔던지 인조는 도성을 빠져나가지도 못했다. 바로 영화의 배경인 병자호란이다.
이때 최명길이 목숨을 걸고 청의 진영으로 가 시간을 끌었다. 영화는 이 대목에서 시작한다. 최명길이 시간을 끄는 사이 인조와 신하들은 동쪽으로 피신해 남한산성으로 들어간다.
영화는 남한산성에서 인조와 신하들이 벌이는 논쟁을 보여준다. 청과 싸워야 한다는 신하들과 협상해야 한다는 최명길의 대립이다. 놀랍게도, 싸울 힘이 없는데도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룬다. 그들은 최명길을 용골대의 자식이라며, 역적으로 몰아붙인다. 결국 항복한 인조는 청 황제 앞에서 무릎 꿇는 치욕을 당한다. 이때 화의를 주장한 최명길은 조선 후기 내내 매국노 최급을 받았다. 척화파 김상헌은 대로(大老)로 추앙받았다. 최명길은 호란 후에 ‘환향녀’를 옹호했다가 사대부의 공격을 받았고, 인조가 소현세자빈 강씨를 죽이려 할 때 반대하기도 했다. 최명길의 후손들은 결국 서인 주류 노론이 아닌 소론으로 나아갔다.
역대 추석 최대 흥행작인 ‘광해, 왕이 된 남자’(12,319,542명)에 이어 명청교체기를 다룬 사극이다. 두 작품에서 모두 이병헌이 청과 협상하려는 비주류 지도자로 등장한다. ‘광해’는 개봉 4일째에 100만을 넘어섰는데, ‘남한산성'은 단 이틀 만에 100만을 넘어 이병헌이 이병헌을 이겼다는 말이 나온다. 명청교체기 작품들이 이렇게 흥행하는 것은 그 시기가 현재 우리에게 닥친 위기국면에 시사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묻지마 강경론이 득세했던 조선처럼 한국에서도 무조건 강경론이 득세한다. 북한과 대화하려는 지도자는 ‘종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영화 속에서 현실적으로 무력했던 강경론처럼, 한국에서도 2대에 걸친 보수정권의 강경론이 북핵 폭주에 무력했다. 영화 속에서 백성들이 죽어나갈 것이 뻔한 상황에서 일전불사 주장이 나오는데, 우리 현실에서도 수많은 국민이 죽어나갈 상황인데도 전쟁론이 나온다. ‘말(대화)의 길’이 끊어질까 염려한 최명길은 내부의 공격으로 위기에 처하고, 대화의 끈을 놓지 말자는 문재인 대통령은 안보 위기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진다. 서인은 ‘재조지은’ 때문에 명나라에만 충성하고, 한국에선 6.25 때 나라를 살려준 미국의 깃발을 내세우고 시위가 벌어진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주로 보는 2040 세대는 명청교체기에 관심을 가져왔다. 광해군이나 최명길 같은 신중하고, 유연하며, 실용적인 자세가 위기일수록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관점은 영화 속에서나 우리 현실에서나 소수다. 국민 다수는 ‘화끈한’ 강경론을 선호한다. 척화파의 강경론에 호응했던 선비들처럼 말이다. 그럴수록 비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광해’나 ‘남한산성’ 같은 영화에 열광한다.
사실 ‘남한산성’은 최대한 척화파 입장에서 그려진 작품이다. 인조가 합리적인 지도자로, 척화파인 김상헌이 백성을 생각하는 따뜻한 인물로 그려진다. 무작정 주전론이 아니라 김상헌에게 나름 합리적인 전략이 있었던 것처럼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인조는 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는 소현세자를 내쳤다. 김상헌은 백성들이 죽어나가든 말든 주전론을 외쳤다. 또, 영화 속 김상헌의 전략은 근왕군에 대한 기대였는데 실제 근왕군은 청군 앞에서 그야말로 무력했기 때문에 그 전략을 합리적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영화가 애써 광해군 반대편에 공을 들였지만 공감이 어려운 것이다. 그 시대의 특성이다.
이런 점에서, 명청교체기는 어떤 식으로 그리던 명분론을 넘어선 유연한 대화, 전쟁이 아닌 협상 쪽에 무게중심이 실린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요즘 같은 위기국면에 대화를 주장하는 쪽에서 관심을 갖는 것이다.
영화를 주로 보는 젊은 세대는 2012년에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지지하며 유연하게 대화하는 지도자를 원했지만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올해엔 ‘남한산성’이 가벼운 오락사극이 아님에도 관람열풍이 벌어졌다. 하지만 올해라고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2012년과 달리 문재인 후보가 대권을 잡긴 했지만, 안보 부분에선 여전히 ‘친미 대북 강경론’ 여론이 주류다. 영화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주화파는 가시밭길을 걷는다.
'드라마 영상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 드라마, 지상파 어떡하지? (0) | 2017.12.22 |
---|---|
황당한 이판사판, 왜 욕 덜 먹나 (0) | 2017.12.01 |
도둑놈 도둑님, 검사가 도둑님을 잡아준다면 (0) | 2017.11.04 |
사랑의 온도, 여자짓은 서현진 효과로도 못 살려 (0) | 2017.10.20 |
란제리 소녀시대, 응답하라 시리즈를 넘어선 지점 (0) | 2017.10.12 |
조작, 아르곤, 기자드라마의 불만족 (0) | 2017.09.21 |
‘다시 만난 세계’, 다시 만난 아침드라마 (0) | 2017.08.31 |
학교 2017이 발암인가, 현실이 발암인가 (0) | 2017.08.24 |
택시운전사, 광주가 21세기에 천만 넘긴 황당한 사태 (0) | 2017.08.21 |
언니는 살아있다는 진짜 워맨스일까 (0) | 2017.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