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자들을 전면에 내세운 SBS ‘조작’이 시청률 12.4%라는 나름 준수한 성적으로 종영했다. 또다른 기자 드라마 tvN ‘아르곤’도 시청률 3% 정도로 순항중이다. 박근혜-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은폐된 진실에 대한 욕구가 커졌고, 진실을 전해주는 언론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것이 이런 드라마들의 편성과 인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조작’에는 이명박 국정원 블랙리스트 이후 TV 출연을 못했던 문성근이 나와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기대했던 것보다는 호응이 덜 했다. 영화 ‘내부자들’에 엄청난 반향이 나타난 후 사회물에 관심이 집중됐었다. 검찰비리를 통해 사회 문제에 접근한 드라마 ‘비밀의 숲’도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그런 흐름 속에서 언론 문제를 조명한 ‘조작’과 ‘아르곤’에도 큰 기대가 모아졌지만 만족할 정도의 화제성을 만들어내지는 못한 것이다.
‘조작’이 차라리 ‘내부자들’처럼 박근혜-최순실 사태 전에 등장했다면 과거 ‘모래시계’처럼 큰 호응을 받았을 것이다. ‘모래시계’는 그 전까지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광주민주화운동과 권력층의 비리를 표현해 신드롬을 일으켰다. 지금 ‘모래시계’ 수준의 사회적 묘사가 드라마에 등장한다고 해서 그때처럼 호응이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엔 시기가 중요한데, ‘조작’은 박근혜-최순실 사태 이후에 등장한 것이 문제였다.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은 원래 ‘내부자들2’을 기획하려 했으나 포기했다고 한다. 박근혜-최순실 사태를 보고 현실 이상의 스토리를 상상할 자신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웬만한 시나리오보다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더 놀라웠다. 최근에 드러나는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의 행태도 그렇다. 연예인 소속사 세무조사에, 연예인 악플에, 연예인 합성사진까지 만드는 국정원의 모습을 어느 작가가 상상할 수 있을까? 현실이 웬만한 상상을 뛰어넘어버렸다.
일련의 정치적 사건이 드라마를 보는 국민의 눈높이를 높인 셈이다. 적당한 수준의 권력층 비리 묘사로는 이 눈높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제 모든 작가는 박근혜-최순실 사태 및 이명박 정부 국정원과 경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바로 직전에 방영된 ‘비밀의 숲’도 문제였다. ‘비밀의 숲’이 보여준 치밀한 묘사도 시청자의 눈높이를 높였다. 그전 같으면 찬사 받았을 작품도 이젠 시시하다는 평을 들어야 할 조건이 됐다.
‘아르곤’은 ‘조작’에 비해 치밀하고 진중한 묘사로 호평을 받고는 있다. ‘아르곤’엔 ‘이대로 가면 방송국이 또 불타는 날이 올지 몰라. 뉴스가 권력의 대변인이 되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진실을 알리지 않는 방송국에 시민이 분노했었다. 지금도 그렇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해괴한’ 일을 벌이는 동안,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언론은 무얼 했느냐는 시선이 따갑다. 그 기간 동안 ‘기레기’라는 말이 보편화됐고 ‘조작’은 기레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조작’, ‘아르곤’ 모두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그동안 언론이 왜 국기문란 사태를 제대로 전해주지 못했는지를 정면으로 그리지 않고 변죽만 울리는 묘사로는 국민을 만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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