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는 요즘 보기 드물게 성공한 멜로드라마다. 한때 드라마나 영화판에서 멜로 전성기가 펼쳐지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도 물론 ‘사랑타령’의 위력은 여전하지만, 미니시리즈에선 사랑에만 집중하는 작품이 드물어졌다. 사랑할 때 하더라도 강력범죄나 사회부조리 등의 소재가 꼭 함께 한다. 아니면 재벌2세가 등장하는 한류 신데렐라물이거나. 현실적 멜로에 집중하는 작품은 보기 힘들다. 수지와 김우빈의 KBS ‘함부로 애틋하게’는 모처럼 선보인 정통 멜로였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런 멜로 퇴조기에 성공을 거둔 멜로드라마가 tvN ‘또 오해영’이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서현진이 일약 멜로퀸으로 떠오르며 뒤늦게 전성기를 열었다. ‘사랑의 온도’는 바로 그 서현진을 캐스팅해 화제를 모았다. 케이블 채널에서 뜬 사람을 지상파가 캐스팅하는 게 하나의 패턴이 된 느낌이다. 9~10% 수준 시청률로 비교적 성공적인 초반 성적표가 나왔다.
사람들은 서현진 효과라고 했다. 보통은 남주인공이 작품의 간판이다. 여배우의 입지가 좁아지는 걸 많은 이들이 한탄했다. 멜로물의 퇴조가 여배우의 퇴조로 이어졌던 것이다. 서현진은 멜로드라마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여배우로서 ‘작품을 멱살 잡고 끌고 가는’ 간판의 위상에 올랐다.
전략은 같다. 서현진이 보통 사람 이현수로 나온다.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화려한 미인도 아니며, 부자 부모도 두지 못한, 왠지 억울하게 나이만 먹은 듯한, 그렇다고 최악의 조건은 아닌 그런 보통 여자. 그러면서 순종적이기보단 자의식이 강하고 사회적 활동에도 분명한 의지를 갖는, 술 먹고 종종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정도로 인간적인 허점도 있는 평범한 사람이다. 보통의 여성 시청자들이 동일시할 수 있는 캐릭터인 것이다. ‘또 오해영’ 때도 비슷한 역할이었다. 이런 인물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것이 서현진의 특징이다.
공감과 동일시로 시작한 다음 대리만족의 판타지를 제공한다. ‘사랑의 온도’ 남주인공인 온정선(양세종)은 한류 신데렐라 드라마에 나오는 백만장자도 아니고 특별한 초능력도 없지만, 여성들이 현실에서 ‘이런 사람과 한 번 연애해봤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법한 역할이다. 연하의 훈남 요리사로 여자친구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준다. 요즘 초식남들처럼 이리저리 재지 않고, 어장관리도 하지 않고, 사랑에 직진이다. 그런 사람과의, 현실 어딘가에서는 가능할 것도 같은 사랑이야기. 물론 그것이 ‘내 현실’이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초반 호응이 컸는데 중반에 문제가 생겼다. 시청자를 짜증나게 하는 악녀 캐릭터가 나타났다. 현실적인 멜로에 굳이 악녀를 배치해야 했을까? 게다가 ‘남자짓’, ‘여자짓’이라는 단어가 등장해 시청자를 기함하게 했다. 남성 앞에서 울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여자짓이라고 표현됐다. 여자는 징징대고 의존하는 존재다? 그동안 여성을 주시청자로 하는 로맨스 설정이 여성에 대한 편견을 오히려 강화해온 측면이 있었다. ‘사랑의 온도’도 그 전철을 밟는 걸까? 이제 중반이다. 지금부터라도 조심해야 따뜻한 사랑의 온도로 기억되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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