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줄을 잘 서야 한다. 줄 중의 줄이 뭔 줄 알아? 탯줄이야.”
MBC ‘도둑놈 도둑님’은 ‘도둑님’을 잡기 위해 ‘도둑놈’이 된 청년의 이야기다. 그는 탯줄을 잘못 잡았다. 독립군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이다. 친일파 자손은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독립군 자손은 3대가 가난하다는 말이 있다. 가난은 가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후손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주지 못하고, 좋은 인맥과 혼맥도 제공해주지 못한다. 특히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가 독립운동을 했던 집안의 후손들은 처참하다. 영주 귀국 독립유공자 후손의 60% 이상이 자신의 계층을 ‘하(下)중의 하’라고 인식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자며느리는 ‘모든 재산을 광복에 바친 것은 후회가 없지만 교육을 받지 못한 자녀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주인공 장똘목은 만주에서 비밀결사활동을 했던 열사의 자손이다. 비밀결사는 일제가 강탈한 우리 문화유산을 모아놓고 지도를 남겼다. 그 지도를 놓고 쟁탈전이 벌어진다. 장똘목의 아버지는 재산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 최하층으로 자라났다. 반면에 비밀결사를 배신하고 일제에 붙은 자들의 자손은 각각 재벌 회장과 검사장으로 승승장구한다. 그들은 비밀결사의 후손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고문하고 살해하며 지도를 찾는다.
천재적인 두뇌와 비상한 운동신경을 가진 장똘목은 도둑이 된다. 재산과 권세로 법망을 넘나드는 ‘도둑님’을 징벌할 방법은 ‘도둑놈’이 되어 직접 그들 성채의 내부로 잠입하는 길뿐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비밀결사의 후손이며 독학으로 검사까지 된 한준희는 이런 장똘목의 생각에 반대한다. 아무리 분노가 치밀어도 법을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으로 강자들을 어찌 할 수 없다는 깨달음에 결국 장똘목과 행동을 함께 한다. 이들은 조상이 남긴 비밀을 알게 된 후 친일파 후손인 재벌 회장, 검사장과 대결하게 된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의미를 담았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도둑놈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하나다. 또 하나는 부자가 법 위에 군림하는 것과 거기에 봉사하는 검찰권력의 문제다. 작품은 친일파 관련 이야기와 재벌 회장 전횡을 집중적으로 그리다가 점점 검사에게 초점을 맞춰갔다. 친일청산 부재로 출발부터 잘못된 가운데 강자들 전횡으로 정의가 무너졌는데 현실 시스템에서 그 부정의를 가능케 한 것이 검사라는 인식이다.
그리하여 검사장에서 검찰총장으로 올라선 윤중태가 악의 축으로 부각됐다. 이런 식으로 검사가 악의 축인 드라마가 많아졌다. SBS '펀치‘, MBC ’파수꾼‘, SBS ’수상한 파트너‘ 등에서 검사가 악당이었다. 하지만 그 현실을 바로 잡는 것도 결국 검사의 몫이다. tvN ’비밀의 숲‘과 이 작품에서 모두 판타지에 가까운 정의파 검사가 악을 물리친다.
검사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지만, 그럼에도 미진한 친일청산으로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한국 사회에 정의의 칼날을 내려칠 주체로 진짜 검사를 호출하는 것이다. 해방에서부터 쌓인 모순구조를 검사가 풀어줄 수 있을 진 의문이지만, 어쨌든 작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은 서민적 염원을 담은 작품이다. 검사가 ’도둑님‘을 잡아주는 세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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