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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소녀시대굴욕 팬클럽만 욕하고 끝인가


 드림콘서트에서의 소녀시대 텐미닛 침묵 사태가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침묵공격에 동참했던 팬클럽들은 집중포화를 맞았다. 팬클럽 파시즘, 소녀 파시즘 등의 말도 나왔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면 문제가 있다. 아이들만 욕하고 지나칠 일이 아니다.


한국 가요계가 멀쩡히 잘 굴러가고 있는데 일부 몰지각한 팬클럽이 돌출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소녀’들의 성격이 특이해서 발생한 일이 아니란 뜻이다. 이건 구조적인 문제다.


 최근에 ‘팬덤’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이 말은 한국가요계에서 팬클럽의 위상이 격상되면서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 팬덤이라고 하면 옛날부터 있었던 팬클럽보다 더 적극적이고 대형화하고 조직적인 팬클럽과 그 팬클럽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통칭하게 된다.


 팬이 단순 수용자에서 적극적인 행위자로 변신해가는 과정은 평론가나 매체에 의해 긍정적으로 해석됐다. 서태지 팬클럽이 가장 좋은 팬덤을 보여준 사례로 인용된다. 요즘 유행하는 ‘집단지성’과 비슷한 논리다. 대중이 피동적 위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딴에는 좋은 일이다.


 대중의 적극성은 동시에 대중파쇼의 위험성을 항상 내장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집단지성’ 논리가 유포되면서 함께 진행된 것이 반지성주의, 인터넷 군중 패권의 등장이다.


 팬클럽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보다보면 그 그림자를 놓치게 된다. 90년대에 ‘팬덤’이라는 말을 유포시키며 수용자의 진화에 환호만을 보낸 이들도 소녀시대 굴욕 사건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어느 날부터인가 팬클럽은 공포가 되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출연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인터넷 악플과 아이돌 팬클럽이다. 업계 사람도, 기자도, 평론가도, 동료연예인도 아이돌 팬클럽을 두려워한다. 팬클럽은 새로운 권력이 되었는데 이번 ‘드림콘서트’에서 패권을 과시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소녀시대를 집단 공격한 팬클럽의 행태를 문제 삼았다. 1차적으로 팬클럽이 잘못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런 구조를 만든 것은 어른들이다.


 오빠부대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조용필의 등장 이후다. 서태지가 나온 후 오빠부대는 더욱 강해졌다. HOT가 등장한 이후부턴 오빠부대의 폭주가 시작됐다. 기획사들은 그 오빠부대의 구미에 맞는 아이돌들을 계속해서 ‘기획, 판매’하기 시작했고 방송사는 그런 가수와 오빠부대의 열광을 손쉽게 프로그램 제작에 이용했다.


 기획사 아이돌과 오빠부대의 괴성이 판을 치는 가요계를 일반 국민은 떠나갔다. 그러자 방송사는 더욱 더 오빠부대만이라도 잡아야 했다. 기획사는 팬클럽을 이용해 마케팅을 했다. 한국 가요계가 ‘기획사 아이돌 - 오빠부대 - 방송사’ 트라이앵글로 구성된 ‘그들만의 나라’가 됐다.


 가요 시상식이 팬클럽 인기투표식으로 진행되고 결국 강한 팬클럽을 가진 가수가 승리했다. 일반 국민은 그런 한국가요계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갔고, 그럴수록 팬클럽의 독점적 권력이 강화됐다. 슈퍼주니어 팬클럽은 ‘오빠들을 위해’ 기획사 주식을 사 회사경영에 직접 개입하려는 시도까지 하게 된다. 드림콘서트 사건은 이런 맥락 속에서 벌어졌다.


 팬클럽의 괴성에 취해 손쉽게 장사를 한 한국음악산업계가 부메랑을 맞은 사건이었다. 외국인도 보는 대형 콘서트에서 당한 망신이다. 한국이란 나라의 음악계가 몇몇 팬클럽의 담합으로 좌지우지 될 수 있는 ‘안습’의 상태란 것이 폭로됐다. 음악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고 살벌한 패싸움만 남은 공연장. 다른 가수를 향해 칼을 가는 음악팬.


 깜짝 놀랐다는 듯이 집단침묵한 팬클럽을 욕하고, 소녀시대는 그 팬클럽에게 사과를 하고, 그렇게 해서 조용히 잊어버릴 일이 아니다. ‘기획사-팬클럽-방송사’라는 ‘그들만의 나라’를 깨진 않고선 대중음악의 발전이 요원하다.


 여기서 팬클럽은 가장 작은 부분이다. 팬클럽의 ‘인성’이나 ‘태도’를 꾸짖어 변화될 구조가 아니다. 방송사와 기획사가 먼저 괴성을 동반하지 않는 다양한 음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양성이 생기면 특정 집단의 패권은 저절로 사라진다.


 아이들을 때리는 것으로 사태를 넘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른들이 잘 해야 한다. 먼저 좋은 음악을 공급하고 그 다음에 수요자 탓을 하는 게 순리다. 아이들 모아놓고 아이돌만 보여주면서 누굴 탓하나.


 방송사와 기획사가 만들어놓은 기형적인 시장에서, 기형적인 팬클럽이 태어났고, 그들이 기형적인 행동양태를 보였는데, 맨 마지막 단계만 욕하는 건 이상하다. 도마뱀꼬리자르기 같다.


 팬클럽에게만 매우 호통치고 잊혀진 사건이 되는 것 같아, 평소 가요계에 유감 많았던 사람으로서 한 마디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