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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인순이를 이해할 수 있다


 

 인순이는 졸지에 네티즌의 공적이 됐다. 파렴치범에게 쏟아지는 악플 이상으로 많은 악플이 인순이 기자회견 기사에 달렸다. 이런 논리다.


 ‘인순이는 유명한 대중가수다. TV에도 나오고 고액 출연료의 공연도 한다. 대중의 인기도 얻는다. 대중가수로서 돈과 화려한 명예를 다 움켜쥐고 클래식하는 사람들이 서는 무대까지 차지하겠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왜 가난한 순수음악의 무대까지 빼앗으려 하나?’


 인순이는 욕심 많고, 개념 없는 비호감 연예인으로 매도되고 있다. 평생 쌓아온 이미지가 한 순간에 무너져내렸다. 안타깝다. 인순이가 그렇게 특별히 나쁜 사람일까? 지금까지 드러난 일만 보면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김장훈 등 가수 동료들은 인순이에게 동조했다. 가수협회장 송대관은 기자회견에 배석해 자신도 세종문화회관으로부터 석연치 않은 이유로 대관을 거절당했다며 인순이를 옹호했다. 송대관은 자신이 대관을 거절당한 사건에 대해 “그 수치감과 절망감은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로 인한 허탈감과 비애는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들은 차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그들의 이기심 때문일까? 아니다. 인순이의 주장이 처음 터져 나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예술의 전당의 권위주의를 탓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객관적이고 분명한 개념이 없었다. 이런 애매한 상황 속에서 누적된 피해의식이 폭발한 것이다.


- 인순이가 느꼈던 것 -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같은 무대에 서고 싶은 것은 가수로서의 인지상정이다. 그런 마음을 갖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할 수 없다. 문제는 그 마음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졌다는 데 있다. 대관 신청했다가 탈락하고 조용히 넘어갔으면 사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순이가 반발해서 사건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의 핵심은 ‘반발’에 있다. 과연 무엇이 그런 반발을 불러일으켰는가?


 송대관이 지적한 것은 답답함이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왜 그 무대에 못 서는지, 어떤 사람은 서고 어떤 사람은 못 서는 것인지 규정이 확실하다면 좋겠다.” 세종문화회관에 대관 신청을 한 것이 퇴짜를 맞았는데, 그 객관적인 이유를 알 수 없어 굴욕감이 비애로까지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가수가 ‘딴따라‘라고 천대 받았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가수로서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을 것이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배제될 때 차별이라고 느끼는 건 이 세대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인순이도 자신이 탈락한 객관적인 기준을 가르쳐달라고 요구했었다. 처음엔 예술의 전당 측의 입장이 석연치 않았었다. 내가 만난 취재팀도 취재결과 공연장의 대관 기준이 모호하다고 증언했다. 이런 것이 ’반발심‘을 키워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예술의 전당은 나중에 입장을 분명히 했다. 클래식을 하는 곳이므로, 인순이만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 가수는 아예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처음부터 이런 원칙을 분명히 고지하고, 지켜왔다면 대관 소동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애매한 태도가 화를 불렀고, 대중가수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반발심을 초래했다. 인순이가 살아온 시대를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그가 분노했던 건 당연하고, 송대관 등이 동조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인순이를 탐욕스런 연예인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 모두에게 개념이 없었다 -


 공연장 ‘개념‘ 문제도 그렇다. 인순이는 ‘한국 최고의 공연장인 예술의 전당에 대중가수가 설 수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예술의 전당을 ‘한국 최고의 공연장’이라고 한 것이 포인트다. ‘한국 최고 클래식 공연장’이 아니라, 그냥 ‘한국 최고 공연장’이다. 그렇게 알고 있었던 거다. 일반인들도 과거엔 그렇게 알았었다.


 우리나라는 대중음악을 위한 공연장 시스템이 없다. 그냥 공연장이라는 이름으로 전체가 통합되어 그 정점에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이 있는 걸로 암묵적인 상태에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순수음악 공연시스템 따로, 대중음악 공연시스템 따로 발전한 나라가 아니다.


 예술의 전당은 ‘모든 예술을 포괄하는 최고의 공공공연장’이라는 인식과 ‘클래식공연장’이라는 인식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클래식만의 배타적인 전문공연장이라는 것은 공지된 바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수가 예술의 전당을 선망하는 건 당연하다. 이제 와서 인순이에게 욕심이 많다고 몰아붙이는 건 너무하다.


애초에 인순이가 대관 신청할 때 ‘여기는 클래식만 합니다’라고 왜 알려주지 않았나? 예술의 전당은 지금까지 순수한 예술의 장이라기보다 문화적 권위의 상징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모호한 상황 속에서 권위주의적 차별을 느낀 건 당연했다. 이제라도 분명히 원칙을 밝혔으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안 생길 것이다. 인순이 사건은 ‘개념‘이 공유되지 않은 가운데 발생한 해프닝이라고 봐야 한다.


- 공연장 인프라도 없이 한류 자랑하나? -


 인순이가 순수예술 공연장까지 차지하려 한다며 비난했던 논리는 원칙적인 차원에서는 맞는 얘기다. 여기가 대중음악을 위한 공연인프라가 충분히 발달되어 있고, 가수 인생의 정점에 영광스럽게 설 수 있는 유서 깊은 공연장이 멀쩡히 있는 데도, 엉뚱하게 클래식 전용 무대에 가서 연주자들 쫓아내고 강짜를 부리고 있다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러므로 이 논리를 현실에 적용하고 싶다면, 그래서 인순이를 비난하고 싶다면 일은 간단하다. 대중음악 공연인프라를 건설하고, 순수음악 대중음악 사이에 공식적으로, 객관적으로 선을 쭉 그은 연후에 비난하면 된다.


 한국 대중음악 공연장 인프라의 열악함이 지적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김장훈, 김건모, 이승환 모두 이런 문제를 지적했었다. 신해철, 이문세 등은 아예 직접 작은 공연장을 꾸리는 시도까지 한다. 일본은 작은 곳부터 대규모까지 대중음악 공연장 인프라가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나라 대중 가수들은 캠퍼스와 체육관을 전전하며 공연해야 한다.


 얼마 전에 내한한 일본 가수의 공연도 한 체육관에서 진행됐다. 그곳에 다녀온 취재팀을 만났는데 음향과 시설이 콘서트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뒤떨어져 보는 자기들이 창피함을 느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시설을 갖춘 전문 공연장에 대한 열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한 클래식 전공자는 대중가수가 성악하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하려면 마이크 끄고 하라고 야유했다. 그럼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할 땐 체조복 입고 하고, 역도경기장에선 마이크 대신 역기 들고 해야 하나?


 인순이에 대한 감정적인 비방으로 풀릴 일이 아니다. 한류를 그렇게 팔아대는 나라라면 국가가 나서서 공연장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요즘 경기진작용으로 삽질하고 도로 뒤집는 데 풀리는 재정의 일부만 끌어와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국가재정은 무의미한 삽질이 아니라 문화 등 산업과 지식능력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데 써야 한다. 그 속에서 대중가수가 스스로의 음악행위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면 순수음악계와 공연장 다툼은 벌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