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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1박2일 미운털 박히다



 어찌된 일인지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1박2일> 이야기다. 공공의 적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다. 프로그램의 기가 너무 세서 그런가? 원래 기가 센 ‘놈’이 돌도 많이 맞는 법이다. 강호동 목소리가 너무 커서일까? 아무튼 동네북이 돼버렸다.


 유선관 편이 방영된 직후에는 바로 인터넷 뉴스에 ‘<1박2일> 가학성 논란‘을 다룬 기사가 몇 편이 떴다. 아무리 광속도의 21세기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논란이 일어나서 순식간에 언론에 반영될 수 있나?


 이건 처음부터 작심하고 꼬투리를 잡겠다는 태도로 프로그램을 봤다라고밖에 볼 수 없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디 있나? 작심하고 털면 다 나온다. 우왕좌왕 질주하는 ‘집단 리얼버라이어티’의 경우엔 더 그렇다. 검열관의 마음으로 보면 뭐든지 걸린다.


 <개그콘서트>에 온갖 꼬투리를 잡아 고발하려고 혈안이 된 ‘소비자고발’ 코너가 있다. 거기서 고발자인 황현희는 ‘어디 한번만 걸려봐’라며 상대를 노려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심정으로 <1박2일>을 노려보는 것 같다. <1박2일>팀 방송해먹기 힘들겠다.



- 그렇게 가학적이었나? -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가학성 논란이 기사화되는 것 보고 엄청난 사태가 벌어진 줄 알았다. 나중에 보니 그 수위가 그렇게 경악할 정도로 대단하진 않았다.


 외부 게스트들을 잔뜩 모아놓고 위험한 게임을 시킨 것도 아니고, 곱게 살던 탤런트나 아나운서를 오지에 데려다 놓고 육식 동물과 어울리게 한 것도 아니었다. <1박2일>팀은 야생과 고생을 표방하며 오랫동안 팀웍을 다져왔다. 여태까지 하던 고생의 연장선상으로 봐줄 만한 수위였다.


 물론 한 겨울에 계곡물에 들어가게 한 것이 그리 잘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공분을 살 만한 ‘만행’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직접 보니 다리 정도만 담궈도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분위기가 폭주해버린 결과 온 몸이 다 잠겼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걸 가지고 욕하는 건 좀 그렇다. 다만 사람이 다칠 수도 있는 행동만은 현장에서 냉철하게 제어해달라는 지적 정도는 할 수 있겠다.



 <개그콘서트> ‘달인’ 코너도 주인공이 온갖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며 모두가 웃도록 하는 설정이다. 하지만 가학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이 코너는 모든 평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상하게 <1박2일>은 미운털이 박혔다.


 음식을 놔두고 게임을 하며 폭력 설정이 난무한 것도 가학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것도 그렇다. 폭력이 잘 하는 짓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일반적인 설정이기도 하다. 과장되게 치고받는 걸로 웃기는 건 코미디의 오래된 관습이다. <개그콘서트>에서도 장동민이 등장하자마자 한 대 때리고 시작하는 코너가 사랑받고 있다. 주성치가 엽기적으로 얻어맞는 코미디 영화들은 평자의 찬사와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다.



 폭력이 일상화되고 희화화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렇더라도 이것을 비판하려면 코미디의 일반적인 경향을 논해야 한다. <1박2일>만 똑 떼어내 큰일 난 듯이 비난하려면 이 프로그램이 유난히 특별한 폭력성을 보였어야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밥을 굶기면 밥 굶긴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밥을 잘 먹으면 해이해졌다는 비난 기사가 나온다. 밥 가지고 게임하면 먹는 것 가지고 장난한다는 비난이 나온다. 어쩌라고? 여럿이서 <1박2일>을 너무 몰아붙이고 있다.



- 촬영태도에 문제가 있었나? -


 유선관 편이 방영된 후엔 <1박2일>팀의 촬영자세도 문제가 됐다. 조용한 사찰 옆에 있는 유서 깊은 유선관에 가서 제작진이 소란을 떨었다는 것이다. 유선관은 떠들썩한 유흥시설이 아닌데 프로그램에서 너무 가볍게 소개되는 바람에 오히려 폐를 끼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픈카까지 타고 설레발을 떨며 가서 고즈넉한 곳을 전쟁터로 만들어버렸으니 눈살이 찌푸려질 만하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도 특별히 문제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가벼운 건 예능의 원래 특징이고, 떠들썩한 건 <1박2일>의 개성이고, 촬영장을 전쟁터로 만드는 건 대규모 촬영팀의 일반적인 속성이다. 수많은 카메라, 수많은 스텝, 수많은 기자재가 동원된 왁자지껄 코미디 소동극 촬영으로 시끄러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전 국민이 보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 됐으니, 해당 장소가 당분간 시끌벅적한 명소가 되는 것도 정한 이치다. <1박2일>이 특별히 뭘 잘못했다고 하기 힘들다.



 물론 모든 게 원래부터 그렇다는 걸로 제작진의 무례가 정당화될 순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정도’다. <1박2일>이 과연 도를 지나친 무례를 범했는가?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나도 과거에 일정 규모의 촬영팀과 촬영을 다닌 적이 있다. 아무리 조심하려 하고 삼가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제작팀은 반드시 폐를 끼치게 되어 있다. 구조적으로 그렇다. 특히 무조건 재미있는 그림을 뽑아내려는 예능 제작팀은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자기들이 뽑아낼 ‘재미’만 중요할 뿐이다. 그 어떤 배경, 그 어떤 초대손님도 재미를 위해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대대적으로 홍보할 의사가 없고, 조용한 것을 선호하는 분은 절대로 이런 류의 대규모 촬영팀에게 촬영을 허락해선 안 된다. 또, 촬영팀은 당연히 허락받지 않은 곳에 막무가내로 몰려 들어가 촬영해선 안 된다. <1박2일>팀이 허락도 안 받고 몰려갔다면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미리 허락받았다면, 일반적인 흐름대로 진행됐다고 봐야 한다. <1박2일>이 무슨 기물을 파손한 것도 아니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큰 소리로 떠들었을 뿐이다. 이것조차 안 된다면 애초에 촬영을 허가하지 않았어야 할 일이다.


 세상엔 촬영팀이나 제작팀인 것이 무슨 벼슬이나 되는 양 안하무인인 사람이 분명히 있긴 하다. <1박2일> 제작진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사실이 있다면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코미디 소동극 리얼 버라이어티로서의 일반적인 속성을 가지고 갑자기 무슨 특별한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비난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1박2일>을 통해 많은 국민들에게 땅끝마을 해남의 아름다운 풍광이 비쳐졌다. 그럼 그것으로 의의가 있는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은 교양 다큐가 아니다. 재미가 절대적인 목표다. <1박2일>이 웃기는 와중에 부수적으로 우리 국토의 풍성함을 국민들에게 체감하게 하는 것은 반길 일이지, 왜 시끄럽게 했느냐고 따질 일은 아니다. 그렇게 도끼눈을 뜨고 보면 점점 더 소극적으로 안전지향의 제작방향으로 갈 것이다. 그 경우 손해 보는 건 결국 시청자다.


 부산 사직구장에서의 일도 끊임없이 되새김질 된다. 대중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구단이 이벤트 차원에서 인기 오락프로그램의 촬영을 허가한 것이 어째서 그렇게 두고두고 비난받아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현장에서의 시행착오는 일단 지적이 됐고, 다음부터 잘 하면 된다. 다음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때 비난해도 늦지 않다. <1박2일>이 절대선은 아니지만, 유독 미운털이 박힐 만큼 크게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다. 너무 몰아붙이는 건 아닌가?